"분재의 뿌리는 한국에"... 일본 분재대회 휩쓴 남자의 소박한 꿈

진재중 2026. 5. 24.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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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인 100색] 일본 4대 분재대회 석권한 한국 분재 작가, 문치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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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재중 기자]

전남 무안군 해제면 양간로의 한적한 정원. 작은 화분 속에는 수십 년, 길게는 백 년의 세월을 견뎌온 나무들이 고요히 숨 쉬고 있다. 굽게 휘어진 가지마다 시간이 스며 있고, 작은 잎 하나에도 자연의 흐름과 계절의 기억이 쌓여 있다.

그 정원 한가운데서 한 남자가 나무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을 건넨다. 나무의 생김을 다듬기보다 그 안에 담긴 시간을 읽어내려는 사람. 한국 분재의 전통과 철학을 지키며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문치호(53) 한국분재문화연구원(구 해제분재원) 원장이다. 나무와 함께 평생을 걸어온 분재 작가. 자연 속에 스민 한국의 미의식과 삶의 철학을 작은 화분 안에 담아내고 있는 그를, 그의 정원에서 만났다.
▲ 문치호 박사 문치호 작가는 분재와 사람처럼 대화를 나누며 한 그루 한 그루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그의 손길 속에서 분재는 살아 있는 자연의 이야기로 다시 태어난다.
ⓒ 진재중
작가의 얼굴에는 오랜 세월 나무와 함께 살아온 사람만의 편안함이 묻어났다. 하지만 분재 이야기가 시작되자 그의 표정은 금세 진지해졌다.

"우리나라 분재 역사는 3000년이 넘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분재를 일본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가장 안타깝습니다."

문치호 원장이 안타까워하는 것은 단순한 문화 인식의 문제가 아니다. 그는 한국의 자연관과 정원문화 속에서 이어져 온 분재의 뿌리가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백제 시대 정원문화가 일본으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분재 문화 또한 함께 건너갔지만 시간이 흐르며 원류였던 한국의 흔적은 희미해졌고 일본 문화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평생 지켜온 것은 단순한 작은 나무가 아니다. 분재 속에 담긴 한국의 미의식과 자연 철학, 그리고 기다림의 시간을 지켜내는 일이었다. 일본 최고 권위의 분재대회들을 석권한 것도 개인의 명예보다 한국 분재의 존재를 세계에 알리기 위한 과정에 가까웠다.
 자연과 인간의 손길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 숨 쉬는 무안랜드 분재원
ⓒ 진재중
나무와 함께 자란 소년, 아버지를 넘어 자신만의 분재 세계를 만들다

문치호 원장의 분재 인생은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시작됐다. 아버지인 고 문형열 옹은 1960년 해제분재원을 세우며 한국 분재 산업의 기반을 닦은 선구자였다. 어린 문치호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나무에 물을 주며 자랐고 분재는 어느새 일상이자 삶의 일부가 됐다. 군 제대 후에도 그는 다른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사회생활 대신 분재원으로 돌아와 나무와 함께 살아가는 삶을 택했다. 하지만 그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한국 분재계의 거목이었던 아버지의 존재는 늘 가장 큰 벽으로 남아 있었다.

"제가 좋아하는 나무의 소재나 작품 스타일이 아버지와 비슷했어요. 결국 제 작품 세계는 모두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기술과 철학이 들어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영향 속에서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찾기 위해 그는 더 넓은 세상으로 눈을 돌렸다. 서른두 살이 되던 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그는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일본 분재원의 대부분을 직접 찾아다니며 기술과 철학을 배웠다. 여기에 머물지 않고 중국, 대만, 베트남, 필리핀, 유럽 등 세계 여러 나라의 분재 문화를 경험하며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다져갔다. 현장에서 쌓은 경험은 학문으로도 이어졌다. 늦깎이로 공부를 시작한 그는 결국 박사학위까지 취득했고, 지금은 대학 강단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는 국내 최고 수준의 분재 전문가로 자리하고 있다.
▲ 문치호 박사 문치호 작가는 분재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빚어낸다. 한 그루의 나무 안에는 한국의 미의식, 자연 철학, 그리고 오랜 기다림의 시간이 고스란히 스며 있다.
ⓒ 진재중
100년의 시간을 견디는 예술, 그리고 가난의 세월

좋은 분재 한 점이 완성되기까지는 짧게는 50년, 길게는 10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한 사람의 인생이 고스란히 나무 한 그루 안에 스며드는 셈이다. 그래서 분재는 단순한 조형 작업이 아니라 오랜 기다림과 시간을 견뎌내야 하는 예술이다. 하지만 그 기다림의 시간은 곧 경제적 어려움과도 맞닿아 있다. 문치호 원장은 어린 시절 어머니가 막노동으로 생계를 책임졌던 기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작품은 쉽게 팔리지 않았고 나무는 긴 세월을 들여 키워야 했다. 당장의 수익보다 긴 시간을 견디는 일이 먼저였다.

"상업적인 분재를 했다면 돈은 벌 수 있었겠죠. 하지만 좋은 작품은 나오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의 말처럼 분재는 빠르게 소비되는 예술이 아니다. 수천만 원, 많게는 수억 원의 가치를 지닌 작품도 있지만 쉽게 시장에 내놓지 않는다. 문 원장에게 나무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한 가문의 역사와 예술가의 시간이 함께 담긴 존재이기 때문이다.
 분재작품
ⓒ 진재중
평생의 작품을 지역에 남기다

2014년 문치호 원장은 부친인 문형열 옹의 뜻을 이어 평생 정성과 열정을 담아 가꿔온 분재 작품들을 무안군에 기증했다. 당시 기증된 작품은 분재 300여 점을 비롯해 희귀식물 분재, 야생화분, 해송 조경수와 관련 자료 등 모두 1000여 점에 달하는 규모였다. 그의 나눔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2019년에는 직접 제작한 곰솔 분재 작품 등 10종 39점을 추가로 기증했고, 2020년에는 소장 중이던 회화 작품 100여 점을 다시 무안군에 전달했다. 현재 기증 작품들은 무안황토갯벌랜드 분재전시관에 전시돼 한국 분재 문화의 역사와 예술적 가치를 알리는 소중한 자산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에게 분재는 단순히 아름다운 나무를 감상하는 예술이 아니었다. 작은 화분 속에는 한 가문의 시간과 한국 분재의 철학, 그리고 자연을 바라보는 우리의 미의식이 함께 담겨 있었다. 문 원장은 평생 가꾼 작품들을 개인의 소유로 남기기보다 다음 세대가 함께 보고 배우는 문화유산으로 남기고자 했다. 그의 기증은 작품을 내놓는 일이 아니라 한국 분재의 시간을 미래로 이어주는 작업이었다.
▲ 무안황토갯벌랜드 분재전시관 문치호 작가와 부친이 기증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분재문화의 역사와 가치를 보여준다
ⓒ 진재중
일본을 놀라게 한 한국인 작가

오랫동안 세계 분재 예술의 중심은 일본이었다. 그 높은 벽을 넘어 일본 분재계에 강한 인상을 남긴 한국인이 바로 문치호 원장이다. 그는 일본 최고 권위의 4대 분재대회를 모두 석권하며 한국 분재의 이름을 세계 무대에 올려놓았다.

아풍전 내각총리대신상을 비롯해 국풍전, 대관전, 청수전 등 일본을 대표하는 분재대회에서 잇따라 정상에 올랐다. 2016년에는 청수전에서 최고상인 내각총리대신상을 받았으며, 특히 2019년 국풍전에서는 외국인 최초로 국풍상을 수상하며 일본 분재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이 상은 분재계에서 세계 최고의 권위있는 대회로 인정받고 있다.

문치호 원장은 당시를 떠올리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감격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일본이 분재 종주국이라는 인식을 조금이나마 무너뜨릴 수 있었던 시간이었지요."

그의 목소리에는 개인적인 수상의 기쁨을 넘어, 한국 분재가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았다는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일본에서는 "분재 종주국의 최고 권위 무대에서 외국인이 우승했다"는 사실 자체가 화제가 됐다. 하지만 문 원장은 이를 개인의 명예로만 생각하지 않았다. 그에게 수상은 한국 분재의 수준과 가능성을 세계에 알리는 과정이었다. 일본 중심으로 인식돼 온 분재 문화 속에서 한국 분재의 뿌리와 예술성을 증명해낸 상징적인 순간이기도 했다.
 일본 작품상 분재들
ⓒ 문치호
바다를 품은 분재 '수해(樹海)'생명의 흐름을 표현한 '비룡(飛龍)'

전라남도 분재대전에서도 문치호 원장의 작품은 많은 관람객들의 시선을 붙잡았다. 전라남도와 보성군 후원으로 열린 분재대전은 2023년 보성세계차엑스포 기간 동안 한국차문화공원에서 개최됐으며 전국에서 엄선된 대형 분재 작품 120여 점이 전시됐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주목을 받은 작품 중 하나가 문 원장의 섬향나무 작품 '수해(樹海)'였다.

70여 년의 세월 동안 화분 안에서 길러온 이 작품은 여러 줄기가 하나의 몸처럼 이어진 연근형 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세월의 풍파를 견뎌낸 노목의 깊은 기품은 거대한 숲과 바다를 떠올리게 했고 작은 화분 안에 자연의 웅장한 풍경을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결국 작품은 뛰어난 예술성과 완성도를 인정받아 대상을 수상했다.

또한 작품 비룡은 한국분재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하여 국무총리상을 받았으며, 2025년 ABFF(아시아태평양 분재우호연맹 컨벤션)의 대표작으로 선정되어 WBFF(세계분재우호연맹)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한국 분재 예술의 깊이와 겸허한 정신을 세계와 나누며 자연과 인간이 함께 걸어온 시간을 품격있게 증명하는 걸작으로 평가받았다. '비룡'은 굳건하게 뻗은 뿌리와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비틀린 줄기, 그리고 균형감 있는 수관이 조화를 이루며 오랜 시간 자연과 함께 완성된 깊은 조형미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수해(섬향나무 연근형)
ⓒ 진재중
 비룡(소나무 모향목형)
ⓒ 진재중
"반려동물에서 반려식물로"… 10cm 분재에 담은 치유와 일상의 꿈

문치호 원장이 최근 집중하고 있는 분야는 10㎝ 안팎의 초소형 분재, 이른바 '미니분재'다. 그는 분재가 고가이고 관리가 까다로우며 수형 형성 과정도 어렵다는 인식 때문에 일반 대중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취미로 남아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누구나 부담 없이 키우고 감상할 수 있는 형태로 방향을 전환해 가격 부담이 적고 관리가 간편한 소형 분재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작고 친근한 형태의 미니분재를 통해 분재 문화를 일상 속으로 확장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그가 꾸준히 강조해 온 분재의 대중화 철학을 구체화한 시도로 볼 수 있다.

그가 구상하는 분재는 더 이상 일부 애호가의 고급 취미에 머무르지 않는다. 손바닥 크기의 '반려 분재'는 여행지나 일상 공간에서도 함께할 수 있는 생활 속 식물로, 분재의 개념을 확장한 형태다. 그는 이러한 흐름이 반려동물을 넘어 반려식물 문화로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강조하고 있다.

"식물과 대화하고, 식물을 가꾸며 작품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은 정신 건강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문 원장은 특히 분재와 식물 문화가 고령화 시대 새로운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노인들이 식물을 돌보고 가꾸는 일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삶의 활력을 되찾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잘 키운 식물은 작품이 되고, 그것이 새로운 일자리와 경제 활동으로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에게 분재는 단순히 감상하는 나무가 아니다.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고 세대와 삶을 연결하는 생활문화에 가깝다.

"화분이 작아도 나무는 충분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조금만 관심을 주면 됩니다."

그의 꼬마 분재는 5천 원에서 3만 원 정도면 누구나 구입할 수 있다. 값비싼 예술품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함께 호흡하는 나무로 분재를 대중에게 가까이 가져가려는 시도다.
▲ 반려분재 손바닥 크기의 ‘반려 분재’는 여행지나 일상 공간에서도 함께할 수 있는 생활 속 식물로, 분재의 개념을 확장한 형태다.
ⓒ 진재중
"분재 종주국은 대한민국입니다"

문치호 원장은 여전히 말보다 나무를 더 오래 바라보는 사람이다. 그에게 분재는 단순한 취미나 장식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 그리고 시간이 함께 만들어내는 삶의 예술에 가깝다. 그는 지금도 작은 화분 속 나무들을 통해 한국 분재의 가치와 정체성을 알리는 작업을 묵묵히 이어가고 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그는 한국 분재 문화에 대한 바람을 전했다.

"많은 국민들이 분재를 더 가까이에서 사랑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분재의 뿌리가 일본이 아니라 대한민국에 있다는 사실도 꼭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의 마지막 말에는 평생 나무와 함께 살아온 한 예술가의 자부심과, 한국 분재의 미래를 향한 깊은 소망이 담겨 있었다. 긴 세월을 견디며 자라온 작은 나무들처럼 그의 꿈 또한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 문치호 원장 문치호 작가의 분재 작품. 분재는 단순한 취미나 장식을 넘어, 자연과 인간 그리고 시간이 함께 빚어낸 삶의 예술로 자리한다.”
ⓒ 진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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