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7주기네…" 새벽 버스를 타고 다시 봉하로 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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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5월, 노무현 대통령 서거일이 다가오면 노무현재단 산하 각 지역위원회들은 봉하마을에서 열리는 추도식과 추모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지역 후원회원들과 시민들을 모아 함께 봉하를 찾고 있다.
서울·경기뿐 아니라 전국 지역위원회에서 후원자들이 함께 움직인다. 글쓴이는 대전세종충남 지역위 소속으로, 살고있는 천안아산에서 출발했다. 글쓴이와 같이 전국 각지에서 버스가 출발하며, 참가자들은 새벽부터 이동해 봉하마을에서 추모행사와 문화행사, 참배 등에 함께 참여한다.
이러한 봉하 방문은 단순한 단체 이동이나 관광의 의미를 넘어선다. 노무현 대통령을 기억하는 시민들은 해마다 5월이면 다시 모여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가치를 되새기고 있다. <기자말>
[이수현 기자]
2026년 5월 23일 새벽. 아직 도시가 완전히 잠에서 깨어나기 전, 나는 천안아산 지역 참가자들과 함께 봉하행 버스에 탑승하기 위해 천안시청 수소충전소로 향했다.
이른 아침인데도 사람들은 이미 하나둘 모여들고 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
노란 손수건을 가방에 넣어온 사람들.
조용히 서로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해마다 5월이 되면 사람들은 다시 봉하로 향한다.
이번 일정은 노무현재단 대전세종충남 지역위원회(위원장 이현주) 주관으로 진행되었다.
사전에 참가 희망자를 모집하고,
버스를 섭외하고,
안전보험까지 가입하며
참가자들이 불편 없이 다녀올 수 있도록 세심하게 준비해주었다.
대전, 세종, 홍성 그리고 천안·아산 지역에서도 많은 시민들이 함께했고,
나는 천안지역 책임 운영위원 자격으로 이번 일정에 동행했다.
행사를 직접 준비해본 사람은 안다.
이런 하루는 결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누군가는 자기 시간을 내어 참가자 명단을 정리하고,
누군가는 새벽부터 간식을 준비하고,
누군가는 뒤에서 묵묵히 후원금을 보태고,
또 이름도 남기지 않은 누군가는 참가자들을 위해 손수건 선물까지 마련해두었다.
참 고마운 마음이었다.
세상은 늘 앞에 나선 사람만 기억하지만,
사실 공동체를 움직이는 것은 이름 없이 뒤에서 마음을 보태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우리가 새벽부터 편안하게 버스를 타고,
안전하게 봉하마을에 다녀오고,
간식을 나누어 먹고,
손수건 하나를 기념처럼 받아들 수 있었던 것은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움직인 수많은 손길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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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하마을행 버스 천안아산에서 추모객들을 태우고 봉하로 가는 버스 |
| ⓒ 이수현 |
누군가는 묵묵히 후원금을 보내주고,
누군가는 차량 준비를 돕고,
누군가는 새벽부터 간식을 챙기고,
누군가는 참가자 안전을 위해 보험 가입과 일정 점검까지 맡아주었다.
앞에 나서는 사람보다
뒤에서 조용히 공동체를 떠받치는 사람들이 더 많다.
민주주의도 결국 그런 것인지 모른다.
눈에 잘 띄는 연설과 구호만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시간을 내고,
마음을 보태고,
자신의 몫을 감당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노고 위에서 유지되는 것.
그래서 오늘 봉하마을에서 기억하게 된 것은
한 사람의 대통령만이 아니었다.
그를 기억하기 위해
1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자기 시간과 마음을 내어 함께 길을 만드는 사람들,
그 조용한 연대의 힘이었다.
버스는 천천히 남쪽으로 향했다.
창밖으로는 초여름의 짙은 녹음이 지나가고,
휴게소에는 비 냄새가 희미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창가에 기대어 커피를 들고 멍하니 밖을 바라보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씩 차분해졌다.
누군가는 음악을 듣고 있었고,
누군가는 조용히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봉하마을.
현장에는 이미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시민들로 가득했다.
노란 모자들.
검은 정장들.
그리고 말없이 천천히 걷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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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 후미에서 바라본 추도식 장면 추도식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뒤에서 지켜보는 많은 추모객들의 사진을 찍었다. |
| ⓒ 이수현 |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권양숙 여사와 유가족들이 참석했다.
또 우원식 국회의장,
김민석 국무총리,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한명숙 전 국무총리,
정세균 전 총리,
김동연 경기도지사 등 수많은 정치권 인사들과 시민사회 인사들도 함께했다.
특히 최근에 잇슈가 된 삼성전자 파업 문제 해결 과정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김영훈 노동부 장관의 참석도 눈길을 끌었다.
한명숙 전 총리는 추도사를 통해
'사람 사는 세상'의 가치를 다시 이야기했고,
이재명 대통령 역시 공정과 균형,
그리고 포용의 정신을 이어가겠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하지만 그날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장면은 거창한 연설보다도 아주 조용한 순간 하나였다.
추도식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무대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의 추도사가 이어지고 있었고,
사람들은 숨소리까지 줄인 듯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날아와 무대 뒷편에 앉아있는 내 무릎 위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파란 셔츠와 바랜 청바지 위.
아주 가볍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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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도식행사장 잠자리 추도식 행사장에서 대통령의 추도사가 있을 즈음 잠자리 한마리가 내 무릎에 앉아 같이 추도사를 들었다. |
| ⓒ 이수현 |
나는 괜히 손으로 쫓지 못했다.
수많은 사람들과 대통령의 추도사,
멀리 흔들리던 노란 모자들,
초여름 바람,
그리고 내 무릎 위에 앉은 작은 잠자리.
그 순간만큼은 시간이 이상하게 천천히 흘렀다.
잠자리는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꼭 누군가가
"오늘 여기까지 와줘서 고맙다"
하고 조용히 말을 건네는 느낌 같기도 했다.
봉하마을이라는 곳은 그런 곳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지만,
정작 각자의 마음속에는 말 못할 그리움 하나씩을 품고 있는 곳.
누군가는 눈물을 삼키고,
누군가는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고,
누군가는 그저 말없이 하늘만 바라본다.
그리고 가끔은
그날 내 무릎 위에 내려앉은 작은 잠자리처럼,
아주 사소한 장면 하나가 긴 연설보다 더 오래 사람 마음에 남기도 한다.
누군가는 잔디밭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았고,
누군가는 묘역 주변을 천천히 걸었다.
그날 하늘은 흐렸다가,
잠시 밝아졌다가,
다시 흐려졌다.
마치 사람 마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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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하마을을 찿은 노무현재단 대전세종충남 지역위원회 추모객들 봉하마을을 찿은 노무현재단 대전세종충남 지역위원회 회원들이 같이 사진을 찍었다. |
| ⓒ 노무현재단대전세종충남지역위원회 |
버스 안은 아침보다 훨씬 조용했다.
피곤해서 잠든 사람도 있었고,
이어폰을 꽂은 채 창밖만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다.
차창 밖으로 붉은 석양이 천천히 내려앉기 시작했다.
먹구름 아래로 타오르듯 번지는 붉은 노을.
버스 유리창에는 그 붉은 빛이 길게 반사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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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장밖의 석양 돌아오는 길에 차창밖으로 석양이 비추인다. |
| ⓒ 이수현 |
오늘 하루의 모든 순간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새벽의 출발.
봉하마을의 사람들.
묘역 앞 침묵.
노란 모자들.
이름 없는 후원자들의 손길.
그리고 내 무릎 위에 잠시 머물렀던 작은 잠자리까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민주주의라는 것은 거대한 정치 구호 이전에,
결국 서로를 위해 시간을 내고,
자기 자리에서 작은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들의 마음 위에서 유지되는 것 아닐까 하고.
17년.
짧지 않은 시간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봉하마을로 향한다는 것은,
단지 한 전직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사람들은
각자가 믿고 싶었던 어떤 시대의 가치와 기억,
그리고 아직 완전히 포기하지 못한 마음 하나를 다시 만나러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오늘,
그 길 위에 함께 있었다.
돌아오는 버스 창가에는 붉은 석양이 오래 머물러 있었다.
오래 기억될 하루였다.
노무현재단의 공식행사 영상을 소개한다(링크).
*이수현 / 인문학포럼 마옥당·노무현재단 대전세종충남 지역위원회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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