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최대 실적과 선거에 가린 '이 사건', 아빠는 왜 소송 나섰나
<국회에 온 '당신의 이야기'>는 사회적 갈등의 최전선이자 해법을 찾는 공간인 국회에서 생략되고 지워져 온 목소리에 주목합니다. 저마다의 이유를 품고 국회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오마이뉴스 국회 출입기자가 전합니다. <편집자말>
[복건우 기자]
|
|
| ▲ 지난 4월 25일 경북 포항 한 카페에서 만난 정지훈(가명·44)씨가 <오마이뉴스>와 인터뷰 도중 생각에 잠겨 있다. |
| ⓒ 복건우 |
뉴스를 볼 때마다 정지훈(가명·44)씨는 궁금했다. 올 1분기 57조 원 영업이익을 낸 삼성전자가 뉴스를 채우는 동안, 과거 삼성전자 공장에서 일하다 벌어진 자신의 이야기는 왜 뉴스가 되지 못하는지 의아했다. 세상에 알려지고 5년 가까이 결론 나지 못한 '사건' 하나가 있었다.
"답답함이 치밀어 올라 또 얘기합니다. 여야 간 논쟁거리도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국회를 찾고 기다려도 해결되지 않는 사건이 있었다. 아들이 '희귀병'을 앓는다며 아빠가 '산재'를 신청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끝내 승인되지 못해 끝을 기약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정씨는 그렇다고 이야기를 멈출 순 없었다. 이 사건엔 '희귀병'과 '산재'란 단어만으론 담을 수 없는 아들과 아빠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
|
| ▲ 정지훈씨가 어릴 적 아들 동우(가명·18)와 함께 찍은 사진. 희귀질환 ‘차지증후군’이 있는 동우는 안검하수로 왼쪽 눈이 감겨 있다. |
| ⓒ 복건우 |
|
|
| ▲ 정지훈씨가 아들 동우와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찍은 사진. |
| ⓒ 복건우 |
"하하, 어릴 땐 말도 잘 듣고 귀여웠는데." 2008년 5월 14일 세상에 와 '개구쟁이'로 자라난 아들 동우(가명·18)의 사진이 그의 시선을 붙잡았다. 운동회날 손으로 브이(V)를 하거나, 졸업식날 꽃다발 너머로 입술을 삐쭉 내민 모습이었다. 왼쪽 눈은 카메라를 향해 '윙크'하듯 실눈을 떴고, 오른쪽 귀엔 '청각 보조장치(인공와우)'가 부착돼 있었다. 아픈 모습보단 제 얼굴만 한 아이스크림을 손에 쥐고 웃는 아들의 모습을 아빠는 가장 좋아했다.
동우의 병명은 낯설고 드물었다(8천~1만 명당 1명꼴로 발병). '산전 검사'에서도 발견되지 않던 그 병을 짐작할 몇 가지 장면이 '출산 직후' 하나씩 발견됐다. 40주(평균 임신주수) 만에 엄마 뱃속을 나온 동우가 다른 아기들처럼 "우렁차게 울지 못했다"고 정씨는 떠올렸다.
"울긴 울었는데 소리가 약하더라고요. 뭔가 이상하다 싶어 계명대 동산병원에 갔는데 '심장이 안 좋다'는 진단을 받았어요. 외관상으론 왼쪽 눈이 감겨 있었고, 소리에 대한 반응도 별로 없었어요. 젖을 잘 빨지 못해 콧줄로 우유를 주입해 먹였어요."
세상을 제대로 감각하지 못하던 동우는 2011년 '차지증후군'을 진단받았다. 태어난 지 3년 만이었다. 시신경 없이 처진 눈꺼풀은 시야를 가렸고, 귀는 난청 증상을 보였고, 원인 모를 심장병으로 두 차례 수술하는 등 중병을 동반한 희귀질환이었다. 증후군 앞 '차지(CHARGE)'는 여섯 알파벳의 약자였다. C(눈), H(심장), A(후비공), R(발달), G(생식기), E(귀)에 해당하는 무수한 증상들이 10년 넘게 누적된 진단서·소견서에 열거됐다.
2008년 6월 3일(동산병원)
병명(임상적 추정) : 선천성 15번 염색체 이상아, 선천성 안검하수증(좌측), 선천성 방실 결손증, 잠복고환이 동반된 외부 성기 형성부전증, 선천성 난청(의증), 수유 장애
2008년 7월 16일(서울대병원)
병명(최종 진단) : 대동맥 축착, 방실 중격 결손, 승모판 질환
2008년 8월 7일(서울대병원)
병명(최종 진단) : 심방·심실 중격 결손, 폐렴, 무기폐, 왼쪽 청력 상실, 저산소성 허혈성 뇌증, 시각신경 유두 결손, 혈뇨, 고칼슘뇨증, 대동맥협착 등
2014년 3월 6일(동산병원)
병명(최종 진단) : 저신장
진료의 의견 : 상기 환자(동우)는 차지증후군(CHARGE syndrome)이 있으며 양측 난청으로 2012년 10월 9일 우측 인공와우 삽입 시술을 시행했습니다. 지속적으로 언어평가 및 언어치료, 이비인후과 외래 진료가 필요합니다.
|
|
| ▲ 정지훈씨가 오른쪽 귀에 청각 보조장치(인공와우)를 착용한 동우의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
| ⓒ 복건우 |
평균에 미치지 못한 몸은 평범하지 못한 일상으로 이어졌다.
"동우는 인공와우를 차고 있어 비 오는 날 외출을 못 해요. 수영장처럼 물이 있는 곳도 조심해야 하고요. 귀에 이상이 있다 보니 평형기능이 없어요. 보통 사람이면 서너 바퀴만 돌아도 어지러운데 동우는 얼마든 계속 돌 수 있어요. 균형감각이 없으니 두발자전거는 못 타요. 높은 계단을 오를 땐 손을 잡아달라고 내밀어요. 안 그러면 혼자서 뒤뚱뒤뚱하거든요."
그런 동우가, 홀로 자신을 책임질 수 있을까?
정씨는 가끔 자문했다. 동우가 태어나고 18년이 지나도 답을 내리지 못한 질문이었다. 혼자 밥 짓고, 돈 관리하고, 외출할 수 없는 동우가 나이를 먹을수록 과잉행동(자폐 증상의 일부)을 조절하는 정신과 약은 늘어났다. 화가 나 인공와우를 뜯어내 던지던 과거의 동우를 떠올리며 정씨는 언젠가 홀로 남을지 모를 동우의 미래를 걱정했다.
"동우 혼자 살아가기엔 아직 부족한 게 많아요. 소통에 어려움이 있으니 취업이나 사회생활도 쉽지 않아요. 그래서 두려워요. 모든 장애아 부모가 그렇겠지만 아이보다 제가 빨리 죽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요."
|
|
| ▲ 지난 2025년 8월 28일 여의도 국회를 찾은 정지훈씨가 자녀산재법(산재보험법)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해 ’국회는 90일 안에 자녀산재법 개정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
| ⓒ 반올림 |
과거 7년간 다니던 '삼성전자 LCD 사업부(현 삼성디스플레이)'에서의 일이었다.
"최소 일주일에 한 번씩, 이소프로필알코올(IPA) 용액을 보루(천)에 묻혀 설비 닦는 일을 했어요. 소주처럼 알코올 냄새가 엄청 심했어요. 장시간 하면 현기증이 나고 구역질을 하기도 했어요. 구토도 몇 번 했었어요."
정씨는 LCD 사업부에서 안전보건 업무를 담당했고(2004~2006년 탕정캠퍼스), 아내 임신 전후론 자동광학검사(AOI) 설비 유지·보수 엔지니어로 일했다(2006~2011년 천안캠퍼스). 엔지니어로 있을 때 그는 "태아 또는 생식능력에 손상"(안전보건공단 화학물질정보)을 일으킬 수 있는 IPA를 다루면서도 "보호구라곤 니트릴(합성고무) 장갑과 덴탈 마스크 정도밖에 없었다"고 떠올렸다.
동우가 희귀질환을 갖고 태어난 게 정씨는 "운명"인 줄만 알았다. 가족 중 아픈 사람이 있나 찾아봐도 유전적 연관성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 운명을 의심하기 시작한 건 메일 한 통을 받고서였다. 퇴사 뒤 2019년 '삼성전자 반도체·LCD 산업보건 지원보상위원회'에서 보내온 메일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정지훈님의 산업보건 지원보상 심의가 완료됐습니다. 정지훈님은 지원보상 대상으로 지원보상금액 지급을 위해…'
'지원보상 대상'이라니, 정씨는 당황스러웠다. 2019년 지원보상위원회 발족 소식을 접하고 "동우가 아프게 태어난 영향도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신청한 '자녀 질환(선천성 기형)' 보상이 실제 인정된 것이었다. 아들 병의 원인이 사실상 아빠에게 있다는 "확인 사살"에 정씨가 자책하며 말했다.
"마음이 좋지 않았어요. 일시적으로 보상은 받았겠지만, 동우가 아프게 태어난 책임이 저한테 있는 거니까 아내한테도 많이 미안했어요."
정씨는 그럼에도 추측할 뿐이었다. "IPA 용액"의 유해성 때문일까, "식각라인 설비에 들어간 불산"의 유독성 때문일까, "아크릴판에 묻었던 흄(고체입자)"에 노출됐기 때문일까, 언제 어떤 물질이 자신과 아들에게 영향을 줬을지 기억에 의존해 추정할 뿐이었다.
지원보상이 있은 뒤엔 실제 산재 인정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동우의 차지증후군이 산재로 인정되면 동우가 가족 없이 홀로 살아가도 "최소한 삶을 영위할 생계비(요양급여)"를 마련할 수 있을지 몰랐다. 정씨는 2021년 근로복지공단에 '자녀 산재'를 신청했다. 그 뒤로 엄마(여성 노동자)에게만 허락돼 온 자녀 산재를 아빠(남성 노동자)까지 넓히는 '최초의 싸움'이 시작됐다.
|
|
| ▲ 지난 4월 25일 경북 포항 한 카페에서 만난 정지훈씨가 허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 |
| ⓒ 복건우 |
산재를 신청하고 근로복지공단 판단이 나오기까지 3년에 걸친 싸움이었다. 2024년 6월 근로복지공단 서울남부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자녀의 상병 '차지증후군'은 근로자의 업무와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석 달 전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역학조사 결과("자녀의 상병은 업무 관련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를 받은 정씨는 "전혀 기대를 안 했는데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는 결과가 나와 놀랐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하지만 산재 신청은 "불승인"됐다. 심사·재심사 청구까지 기각됐다. '법'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의 경우 현행법상 자녀 산재를 적용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2024년 7월 3일(근로복지공단 천안지사장 '요양급여신청서 처리결과 알림')
"고객님의 경우 법령(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 정한 '임신 중인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부득이 불승인 결정했다."
2024년 12월 9일(근로복지공단 이사장 '심사결정서')
"청구인의 심사청구를 기각한다. (…) 산업재해보상보험 심사위원회 심의 결과 (…) 현행 산재보험법 적용 대상이 아님이 명백해 최초요양 불승인 결정을 한 원처분기관 처분이 타당하다."
2025년 11월 5일(산업재해보상보험 재심사위원회 '재결서')
"청구인의 재심사 청구를 기각한다. (…) 청구인은 법 적용 대상으로 볼 수 없어 원처분기관이 위 법령(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근거해 행한 요양 불승인 처분은 타당하다는 게 우리 위원회 판단이다."
2022년 개정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은 '임신 중인 근로자'가 유해 요인에 노출돼 자녀가 선천성 질환을 갖고 태어난 경우만 업무상 재해로 인정한다. 남성 노동자인 정씨는 해당하지 않는다. 현재 국회엔 산재 인정 범위를 '아빠'까지 확대하는 산재보험법 개정안 3건이 발의돼 있으나(장철민·김주영·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 각 대표발의), 모두 '위원회 심사' 단계를 2년째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
| ▲ 박종길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이 지난 2024년 10월 2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
| ⓒ 국회인터넷의사중계시스템 |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정책실 관계자도 "사회적 논의가 많이 필요한 사안"이라며 비슷한 답변을 내놨다. 앞서 2년 전 근로복지공단은 국회 논의를 따르겠단 입장이었다. 박종길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이 2024년 10월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주영 의원의 질의에 답했다.
김주영 : "공단은 자녀의 차지증후군이 아버지 정씨의 업무와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임신 중인 근로자가 아니었다는 이유로 태아 산재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 이건 입법 미비 아닌가요?"
박종길 : "예,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주영 : "아이가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면 그 자체만으로 부모는 사실 억장이 무너질 겁니다. 이건 부모들한테 이중 고통을 주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동의하시지요?"
박종길 : "예."
김주영 : "(중략) 이사장님께서 입법 미비로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동의하십니까?"
박종길 : "그 부분은 국회에서 좀 논의해 주시면 저희들은 따르겠습니다."
|
|
| ▲ 지난 4월 25일 경북 포항 한 카페에서 정지훈씨가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
| ⓒ 복건우 |
금방 바뀔 줄 알았던 법이 예상과 달리 유지되면서 정씨는 지쳐 갔다. 1인 시위로 근로복지공단을 찾고(2024년 5월), 기자회견을 하러 국회도 갔지만(2025년 8월) 바뀌지 않는 현실에 의욕을 잃어 갔다. 산재 신청 때부터 함께한 조승규 노무사(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활동가)가 마지막으로 설득한 끝에 정씨는 "끝까지 가보자"고 결심했다. 지난 3월 공단을 상대로 한 '요양급여 불승인 처분 취소 소송'이 서울행정법원에 접수됐다.
오는 6월 17일 소송 첫 변론을 앞뒀지만 정씨는 산재 인정 결과가 "법원이 아닌 국회에서 나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수년을 각오하고 시작한 법정 싸움의 결말을 기다리기보단, 이미 국회에 발의돼 논의를 기다리는 법이 먼저 통과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소송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버텨온 것만으로도 많이 지쳤습니다. 국회도 더 못 가지 싶습니다. 그런데 법원 판결을 또 기다리라는 건 너무 가혹한 일입니다. 국회가 하루빨리 법을 바꿔주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산재보험법 개정에 국회의원들이 지방선거의 10분의 1, 100분의 1만이라도 관심 가져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언젠가 동우에게 해주고 싶은 말에 정씨는 한 문장으로 말했다. "동우야, 네가 아프게 태어난 데는 아빠의 영향이 있단다." 이 사건은 아들의 병을 있게 한 아빠의 책임을 밝혀내는 과정이었지만 그 책임에 무관심한 세상이 아빠에게만 책임을 떠넘겨 온 결과이기도 했다. 끝내 주목받지 못한 이 사건을 비로소 끝낼 수 있는 곳에 정씨가 문장을 보탰다.
"국회는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 가족의 칼자루도 국회가 쥐고 있습니다. 국회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윤석열 비상계엄 예측 이후, 협박전화... 신당까지 찾아왔다"
- [안동시장 후보 지지도] 권기창 47.2%,이삼걸 39.3%...오차범위 내 접전
- 볼수록 감탄만 나온다, 신라 석공의 놀라운 상상력
- '삼청태현슥쓱'... 인천 팬들은 정말 괜찮았을까
- 사남매 키우는 전업주부 아빠의 돈 안 드는 '사교육' 노하우
- 40대가 지나면 핸드폰 용량 꽉 차도록 찍는 것
- 김용남 거취, 감찰까지 요구 혁신당... 민주당 "선 넘지말라"
- [오마이뉴스·STI 예측] 경기 추미애 51.5% - 양향자 26.8%
- 무가치함과 싸워 이뤄낸 성장…'모자무싸' 5%대 시청률로 종영
- 스포츠윤리센터, 서울시하키협회 수석부회장 해임사유 전부 기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