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장기금리 뛰자 한국도 ‘돈값’ 압박…대출금리 부담 커진다

세계 주요국의 장기 국채금리가 일제히 뛰면서 한국 경제에도 ‘돈값’ 상승 압력이 커지고 있다. 미국 30년물 국채 금리는 2007년 이후 처음으로 5% 선을 넘어섰고, 일본·영국·독일의 초장기 금리도 수십 년 만의 고점권에 올라섰다. 인플레이션 재점화 우려와 주요국 재정적자 확대, 국채 발행 부담이 겹치면서 글로벌 채권시장이 다시 흔들리는 모습이다. 한국도 원화 약세, 국내 채권금리 상승, 대출금리 부담, 외국인 자금 이탈 압력에서 자유롭지 않다.
24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30년물 국채 금리는 5.09%로 2007년 7월 이후 처음으로 5%를 돌파했다. 일본 30년물 국채 금리는 4.03%로 1999년 30년물 발행 이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영국 30년물 국채 금리는 5.64%로 1998년 이후 27년 만에 가장 높았고, 독일 30년물 국채 금리도 3.31%로 2011년 이후 14년 만의 최고 수준까지 올랐다.
장기금리 상승은 단순히 채권시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장기 국채금리는 한 나라가 오랜 기간 돈을 빌릴 때 치러야 하는 비용이다. 투자자들이 앞으로 물가가 쉽게 잡히지 않을 수 있다거나 정부가 빚을 더 많이 낼 수 있다고 판단하면 장기 국채를 사기 위해 더 높은 이자를 요구한다. 그 결과 국채금리가 오른다. 정부가 더 비싼 이자를 내고 돈을 빌리게 되면, 기업과 가계가 빌리는 돈의 가격도 함께 올라갈 가능성이 커진다.
최근 장기금리가 뛰는 직접적인 배경에는 인플레이션 우려가 있다. 중동 지역 불안이 길어지면서 국제유가와 에너지 가격이 계속 오르는 추세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운송비와 생산비를 밀어 올리고, 결국 물가 전반에 부담을 준다. 물가가 다시 불안해지면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리기 어려워진다. 시장이 금리 인하 기대를 낮추면 장기 국채금리는 더 오를 수 있다.
각국의 재정 부담도 장기금리를 밀어 올리는 요인이다. 코로나19 이후 주요국 정부는 경기 부양과 복지, 산업 지원에 많은 돈을 썼다. 여기에 고령화, 국방비 증가, 에너지 전환, 첨단산업 보조금 경쟁까지 겹치면서 앞으로도 국채 발행이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강해지고 있다. 시장에 국채 공급이 많아지면 투자자들은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한다. 쉽게 말해 빌리려는 돈은 많아지는데, 돈을 빌려주는 쪽은 더 높은 이자를 달라고 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 흐름이 한국에도 바로 부담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첫 번째 통로는 환율이다. 미국 장기 국채금리가 5% 안팎까지 오르면 글로벌 투자자 입장에서는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다른 나라 자산을 살 이유가 줄어든다. 달러 자산의 매력이 커지면 원화 같은 비기축통화는 약세 압력을 받을 수 있다. 실제 22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주간 거래 종가 기준 전날보다 11.1원 오른 1517.2원에 마감했다.

원화 약세는 다시 물가 부담으로 이어진다.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원유, 가스, 원자재, 수입 식품을 들여올 때 더 많은 원화를 내야 한다. 수입물가가 오르면 기업의 생산비가 올라가고, 이는 소비자 가격으로 전가될 수 있다. 한국은행 입장에서는 경기가 둔화돼도 금리를 쉽게 내리기 어려워진다. 금리를 낮추면 원화 약세가 더 심해질 수 있고 환율 불안은 다시 물가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통로는 국내 금리다. 글로벌 장기금리가 오르면 한국 국채금리도 함께 오를 압력을 받는다. 아시아개발은행의 아시아본드온라인에 따르면 21일 기준 한국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4.182%로 연초 대비 79.7bp 올랐다. bp는 금리 변동을 나타내는 단위로, 1bp는 0.01%포인트다. 79.7bp 상승은 약 0.797%포인트 오른 셈이다. 한국 30년물 국채금리도 최근 한 달 사이 0.5%포인트 안팎 상승했다.
국채금리가 오르면 은행채와 회사채 금리도 영향을 받는다. 은행도 시장에서 돈을 빌려 대출 재원을 마련하는데 조달 비용이 올라가면 대출금리를 낮추기 어렵다. 주택담보대출, 전세자금대출, 신용대출 금리에 상승 압력이 생길 수 있다는 뜻이다. 이미 고금리 부담을 안고 있는 가계와 자영업자, 중소기업에는 이자 부담이 더 오래 이어질 수 있다.
세 번째 통로는 증시다. 장기금리가 오르면 주식의 매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투자자가 미국 장기 국채만 사도 5% 안팎의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면, 변동성이 큰 주식에 투자할 이유가 약해진다. 특히 반도체, 인공지능(AI), 바이오처럼 미래 성장 기대가 주가에 크게 반영된 업종은 금리 상승에 더 민감하다. 미래에 벌 돈의 현재 가치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글로벌 장기금리 상승이 외국인 자금 이탈과 국내 증시 조정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케빈 워시 신임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취임도 이런 흐름 속에서 주목받고 있다. 다만 이번 장기금리 상승의 핵심은 새 연준 의장 개인보다 글로벌 채권시장의 구조 변화다. 시장의 관심은 기준금리를 언제 내리느냐를 넘어, 연준이 인플레이션 불안과 장기금리 상승을 어떻게 진정시킬 수 있느냐로 옮겨가고 있다. 연준이 물가 안정 의지를 충분히 보여주지 못하면 장기금리가 더 불안해질 수 있고 반대로 금리 인하가 늦어지면 세계 경제의 차입 비용 부담은 더 길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세계 장기금리 상승은 해외 채권시장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환율, 물가, 대출금리, 증시에 동시에 영향을 주는 변수”라며 “미국 장기금리가 높은 수준에 머물면 원화 약세 압력이 커지고, 국내 시장금리와 대출금리도 쉽게 내려가기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가계와 기업 입장에서는 돈을 빌리는 비용이 더 오래 높게 유지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부담”이라고 덧붙였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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