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vs 설탕 논쟁 유발…한국 ‘여름 콩국수’가 독보적인 까닭

2026. 5. 23. 11: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박상현의 ‘찰나의 맛’


‘콩파스타’라는 별명을 가진 서울 주교동의 ‘강산옥’ 콩국수. [사진 박상현]
콩을 먹는 민족과 국가는 많다. 하지만 콩으로 두부를 만들고, 콩나물을 키우고, 발효를 통해 장을 얻는 사이클을 가진 나라는 한국·중국·일본 정도에 불과하다. 그리고 두부를 만드는 나라는 콩을 불리고 삶고 갈아서 만든 콩즙을 즐긴다. 곡물가루를 반죽해서 뽑은 면을 즐기는 민족과 국가 또한 많다. 하지만 콜드누들의 종류로 보면 우리나라는 단연 독보적이다.

콩과 차가운 면을 즐긴다는 기호를 합치면 콩국수가 탄생한다. 콩국수야말로 전 세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한국요리의 독보적인 장르다. 우리나라의 콩국수가 왜 이렇게 특별한 음식인지는 일본 교토의 음식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깨달았다.

서울 진주회관·광주 대성콩물 등 유명
교토는 두부가 정말 맛있는 도시다. 교토의 두부가 왜 그렇게 맛있냐고 물으면, 교토 사람들은 한결같이 “물이 좋아서”라고 답한다. 두부 한 모에서 물이 차지하는 비율은 무려 85%. 1㎏의 콩을 가공하기 위해서는 불리고, 삶고, 가는 과정에서 최소 10L이상의 물이 필요하다. 그만큼 콩 맛을 살리는 결정적인 요소가 물이다. 교토의 지하수는 1L당 40~60㎎ 정도의 미네랄을 함유한 연수다. 미네랄 역시 칼슘과 마그네슘이 4:1 정도를 차지하는 이상적인 비율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비율일 때 물은 재료 본연의 맛을 충실하게 살려준다. 참고로 프랑스산 에비앙 생수는 1L당 300㎎ 이상의 미네랄을 함유한 경수다.

그럼 우리나라의 지하수는 어떨까? 국내에서 생산, 판매되는 생수의 미네랄 함량은 1L당 20~60㎎. 대부분이 연수다. 칼슘과 마그네슘의 함량 역시 이상적인 비율을 갖고 있다. 지금이야 대형 관정에서 취수한 지하수를 정수해서 판매하고 있지만, 과거에는 가정과 동네에 있던 우물에서 길어 올렸을 터. 우리나라가 콩국수를 즐기게 된 배경에는 콩의 민족이기도 하거니와 물의 민족이었기 때문이다.

냉면도 밀면도 사시사철 즐길 수 있는 21세기에 음식의 계절이 따로 있겠냐만은, 콩국수만큼은 여전히 계절감을 고수하고 있다. 서울의 대표적인 콩국수 전문점인 서소문의 ‘진주회관’, 여의도의 ‘진주집’처럼 일 년 내내 콩국수를 판매하는 전문점도 있지만 계절 메뉴로 콩국수를 내는 집들은 여전히 여름 한 철을 고수한다. 그래서 콩국수 애호가는 여전히 무더운 여름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서울 주교동의 ‘강산옥’은 평소에는 콩비지백반을 판매하지만 6~8월 석 달은 콩국수만 판매한다. 강산옥의 콩국수 시즌을 기다리기 지루할 땐, 광주광역시로 눈을 돌린다. 중흥동 ‘대성콩물’은 늦봄에서 초가을까지 5개월 정도 영업한다. 광주 사람들은 봄이 되면 대성콩물 영업 개시 일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올해는 4월 20일부터 영업을 시작했다.

콩국수의 시즌이 도래하면 매년 갱신하는 콩국수 한 그릇의 가격에도 관심이 많다. 이를 선도하는 건 언제나 서소문의 진주회관. 5월 현재 가격은 1만6000원이다. 여의도 진주집은 진주회관보다 항상 1000원 낮은 가격을 유지한다. 하지만 안심할 수 없다. 지금까지 관찰한 바에 의하면 진주회관의 콩국수 가격은 주교동 ‘우래옥’의 평양냉면 가격과 연동되어 있다. 즉 우래옥의 평양냉면 가격이 일종의 선행지표 역할을 한다. 현재 우래옥 평양냉면의 가격은 1만8000원. 진주회관의 콩국수와는 2000원이 차이 난다. 본격적인 콩국수 시즌을 앞두고 진주회관이 어떤 선택을 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냉면과 함께 여름 물가 가늠자 역할

콩물이 고운 서울 서소문 ‘진주회관’. [사진 박상현]
광주 중흥동 ‘대성콩물’ 콩국수. 설탕으로 간을 했다. [사진 박상현]

콩국수는 콩을 불리고 삶고 간 다음 면을 말아서 먹는 음식이다. 요리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단순한 음식이다. 하지만 이런 음식일수록 실력 차가 확연하게 드러나고 소비자는 사소한 것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원재료인 콩이 좋아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 대두(백태)가 기본이지만 요즘은 검은 서리태를 사용하는 곳도 늘고 있다. 그리고 이 콩을 얼마나 가느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린다. 진주회관이나 진주집처럼 콩을 극단적으로 곱게 간 것을 선호하는가 하면, 광주의 대성콩물처럼 콩 입자가 씹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의외로 많다. 가수량도 중요하다. ‘콩파스타’라는 별명을 가진 주교동의 강산옥처럼 물을 아주 적게 잡은 콩국수 팬이 있는가 하면, 콩국을 마실 수 없다면 콩국수라 부를 수 없다는 팬도 적지 않다. 면의 굵기에도 이견이 많다. 가늘고 표면이 매끈한 면을 선호하는 파와 표면이 거칠고 폭이 넓어 콩국을 충분히 흡수하는 걸 선호하는 파로 나뉜다. 간을 무엇으로 하느냐도 중요한 요소다. 영남을 중심으로 한 동부권은 소금으로 간을 하고 호남을 중심으로 한 서부권은 설탕으로 간을 한다. 전국에서 몰려든 이주민이 많은 서울은 둘 다 채택하지만, 주류는 소금 간이다.

목포의 ‘유달콩물’ 콩국수. [사진 박상현]
남도 콩국수 3대장 중 하나인 순천 ‘장대콩국수’. [사진 박상현]

콩이라는 작물 자체가 면적당 수확량이 적은 작물이라 평야가 많은 서해 권역에서 특히 발달한 음식이다. 진주회관, 진주집, 강산옥 등 쟁쟁한 스타가 많은 서울. ‘베테랑칼국수’를 비롯해 어딜 가나 평균 이상의 콩국수 만날 수 있는 전주. 광주의 ‘대성콩물’, 목포의 ‘유달콩물’, 순천의 ‘장대콩국수’ 등 걸출한 3대장을 거느린 남도까지. 바야흐로 콩국수 애호가들을 설레게 하는 시즌이 도래했다.

박상현 맛칼럼니스트. 음식의 탄생 배경과 사회적 맥락을 탐구하는 것에 관심 많은 맛칼럼니스트다. 현재 사단법인 부산로컬푸드랩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