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쉬고 있다” 그 말만 믿지 않는다…현장의 신호 읽는 AI

119 신고 전화에서 “환자가 숨은 쉬고 있다”는 말은 그저 안심해도 될 신호일까. 인큐베이터 안 조산아의 불규칙한 호흡은 무엇을 알려주는 단서일까. 사람의 몸과 현장은 상태가 나빠지기 전 신호를 보내지만, 그 신호가 늘 분명한 말로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이창희 고려대 인공지능학과 교수팀이 지난 2월 네이처 계열 인공지능의학전문저널(npj Digital Medicine)에 발표한 119 신고 실시간 통화 AI 연구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신고자가 “의식이 있다”고 말해도 환자가 고령인지, 요양시설에 있는지, 상태가 나빠졌는지, 호흡이 거친지 등을 함께 보면 심정지 가능성을 다르게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팀은 “89세”, “양로원”, “상태가 좋지 않다”, “국수 먹고 숨이 거칠다” 같은 신고 당시 표현의 맥락을 종합해 위험도를 판단하는 모델을 연구했다.
지난 18일 고려대 서울캠퍼스에서 만난 이 교수는 이런 신호를 일종의 ‘시간의 언어’라고 설명했다. 그는 “기계는 고장 나기 전에 반드시 특정 신호를 만들어내고, 사람도 심장이나 기관이 망가지기 전에 어떤 시그널을 보낸다”며 “문제는 그 언어 자체를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간의 언어’ 읽는 시계열 AI

이 교수는 현재 고려대의료원과 함께 시계열AI를 활용해 조산아 호흡 모니터링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조산아는 폐 기능이 약해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벤틸레이터(환자가 숨을 잘 쉴 수 있도록 공기를 넣어주는 인공호흡기)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의 호흡 패턴은 성인처럼 일정하지 않다. 이 교수는 “공기가 들어가는 세기나 호흡을 맞춰주는 주기가 조금만 맞지 않아도 아이들이 힘들어할 수 있다”며 “숙련된 의료진만이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는 영역이지만, 그런 판단이 필요한 순간은 계속 생길 수밖에 없다. AI가 과거 호흡 패턴을 읽어 아이에게 맞는 호흡기 설정을 제안하는 보조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의료진이 AI의 제안을 실제 진료에 참고하려면 단순히 “위험하다”거나 “이 설정이 낫다”는 수준의 답으로는 부족하다. 이 교수는 이를 “정확도 높은 AI”와 “현장에서 쓸 수 있는 AI”의 차이로 봤다. 그는 “정확도가 높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AI가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의료진이 현장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도 함께 제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개별 모델이 현장에서 신뢰를 얻는 단계 다음에는, 이를 여러 병원과 다양한 상황으로 넓히는 문제가 따라온다. 병원마다 환자군과 장비, 기록 방식이 달라 한 곳에서 잘 작동한 모델이 다른 병원에서도 그대로 통한다는 보장은 없다. 이 교수가 최근 주목하는 시계열 파운데이션 모델은 이런 한계를 넘기 위한 시도다. 다양한 의료 시계열 데이터에서 공통 패턴을 파악해 새로운 병원이나 과제에도 적응할 수 있는 AI를 만들려는 개념이다. 의료를 넘어 제조·금융·교통처럼 시간 데이터가 쌓이는 현장으로 확장될 가능성도 있다.
현장형 AI, 관건은 ‘데이터’와 ‘협업’

이 교수는 연구자와 현장이 장기적으로 협업할 수 있는 구조가 갖춰질 때 현장형 AI 연구도 더 큰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봤다. 그는 “한국도 좋은 연구를 하는 교수들이 많아졌지만 임팩트 면에서 다소 부족하다고 평가받는 이유 중 하나가 연구자와 현장이 각개전투로 돌아가기 때문”이라며 “국가AI연구거점처럼 국내외 연구자와 산업계가 함께하는 장기 네트워크가 유지돼야 학계와 현장이 괴리되지 않고, 실제 현장에서 작동하는 AI 연구도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연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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