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치고 찢겨도 전진한 영웅들의 쓸쓸한 은퇴 [개st하우스]

이성훈,전병준 2026. 5. 23. 06:03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생존자 293명 구조…119 인명구조견을 만나다
개st하우스는 위기의 동물이 가족을 만날 때까지 함께하는 유기동물 기획 취재입니다. 사연 속 동물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면 유튜브 '개st하우스'를 구독해주세요.

대구 중앙119소방본부 내 구조견교육대에서 만난 2살 훈련견 말리(왼쪽)와 18년 경력의 김용완 훈련관 모습. 장난기 많고 활발한 성품의 개들이 훈련에 적합하다. 선발된 훈련견들은 이후 2년간 전문교육을 받은 뒤, 인증평가를 통과하면 전국 36마리 뿐인 인명구조견이 된다. 오른쪽은 2023년 튀르키예 지진 피해현장에서 붕대를 감고 생존자들을 찾아낸 인명구조견 토백이 모습. 전병준 기자

“무너진 건물의 잔해나 산사태 속에 파묻힌 조난자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미세한 체취를 맡고 달려온 구조견의 얼굴입니다. 그 촉촉한 혀가 얼굴에 닿으면, 절망하던 조난자는 비로소 구조된다는 희망을 느낀다고 합니다. 다치고 찢길 것을 알지만 한시 빨리 생존자를 구하기 위해 위험한 현장에 뛰어드는 것은 구조견에겐 피할 수 없는 숙명입니다.”
- 18년 차 소방공무원, 김원현 인명구조견 운용관

지난 6일 대구 중앙119소방본부 내 재난훈련장. 축구장 넓이의 야외 훈련장에는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가 날카로운 콘크리트 조각과 철근을 드러낸 채 위험하게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나무야, 찾아!” 김원현 소방관의 지시가 떨어지자, 32㎏의 건장한 구조견 나무는 쏜살같이 건물 잔해를 비집으며 생존자의 냄새를 쫓기 시작했습니다.

지면에 닿을 듯 코를 낮게 박은 채 붕괴 현장을 훑던 나무가 10개의 대피소 중 한 곳 앞에 멈춰 서는 덴 5분도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나무는 ‘컹컹’ 우렁차게 짖으며 소방대원들을 불렀습니다. 생존자를 찾았다는 신호였습니다. 대피소의 철문이 열리고, 지하 3m 깊이에 숨었던 기자가 모습을 드러내자 나무는 마치 조난자를 안심시키려는 듯 다가와 팔을 핥았습니다. 나무를 지휘한 김 소방관은 “잘했다”고 칭찬하며 온몸을 쓰다듬고 닭고기 간식을 건넸습니다.

나무는 전국에 36마리뿐인 119 인명구조견 중 하나입니다. 우수한 지능과 강인한 체력을 갖춘 벨지안 말리노이즈 견종인 나무는 지난 4년간 울산 화력발전소 붕괴사고(2025년 12월), 광주 도서관 건설 붕괴사고(2025년 11월), 무안공항 사고(2024년) 등 대형 재난 현장에 투입돼 매몰된 실종자를 발견하는 큰 공을 세웠습니다.

이런 베테랑 나무에게도 처음은 있었습니다. 4년 전만 해도 운용관(핸들러)의 왼편에 붙어 걸음을 맞추는 기초 각측 훈련조차 버거워하던 견습견이었죠. 담당 훈련관이 던져주는 공과 간식에 정신이 팔린 천방지축 강아지였습니다. 하지만 2년에 걸친 양성 교육을 받고 까다로운 시험을 통과한 끝에 김원현 소방관에게 배정, 함께 현장을 누비며 인명을 구조해왔습니다.


과연 말썽꾸러기 강아지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단 2년 만에 엘리트 구조견으로 거듭나는 걸까요? 개st하우스는 대구 중앙119소방본부 산하 인명구조견센터를 찾아 그 양성 과정을 살펴봤습니다.

2011년부터 양성, 재난현장 누비는 119인명구조견

소방본부에 들어서면 곧바로 3m 높이의 구조견 청동상이 눈에 들어옵니다. 20년간 전국 각지에서 활약하다 무지개다리를 건넌 구조견들을 기념하는 이 추모상 아래엔 그들의 이름과 근무지, 복무기간이 새겨진 명패들이 붙어 있습니다.


구조견은 일찍이 1990년대부터 재난현장을 누볐습니다. 다만 당시에는 정부 차원이 아니라 삼성화재구조견센터, 한국인명구조견협회 등 민간단체가 육성한 민간 구조견이 파견되는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구조견의 활약상이 알려지고 필요성이 커지면서 2011년부터 소방청에서 직접 구조견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이후 현재까지 소방청이 양성한 119구조견 100여 마리는 총 1만 건의 현장에 출동해 생존자 293명과 사망자 395명을 수색·구조하는 성과를 거둬왔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구조견을 양성하는 훈련장, 견사 등의 면적은 중앙119소방본부 전체 시설의 약 30%를 차지할 정도로 그 비중이 큽니다.

“장난기 많아 수색도 잘해요” 천방지축 훈련견 말리

그런 인명구조견 한 마리 육성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선 우수한 훈련견을 선발해야 합니다. 훈련견은 6~18개월령의 래브라도 리트리버와 벨지안 말리노이즈 중 유전 질환이 없고 건강하며 성향이 확실한 개체들로 추려집니다. 이후 하루 2시간씩 최소 2년간 강도 높은 훈련이 진행됩니다. 이런 전문 양성 훈련을 거쳐 기본 복종·장애물 극복·요구조자 발견 및 통보 등 10개 항목의 평가에서 100점 만점에 70점 이상을 획득해야 비로소 정식 인명구조견 자격이 부여됩니다.

훈련견들이 지내는 견사동에는 30개의 개별 견사가 길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한 마리당 6.6㎡(2평) 남짓한 공간엔 냉난방 설비도 완비돼 있었습니다. 훈련견들을 지도하는 김용완 훈련관의 발걸음이 한 철창 앞에 멈추자, 하얀 래브라도 리트리버 한 마리가 반가운지 온 힘을 다해 꼬리를 흔들었습니다. 훈련 6개월 차에 접어든 두 살배기 훈련견 말리였습니다.

김 훈련관이 견사 안으로 들어가자 말리는 벌러덩 배를 뒤집으며 애교를 부렸습니다. 취재진의 카메라가 신기한지 킁킁 냄새를 맡다 입으로 살살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김 훈련관은 “이렇게 호기심 많고 장난기가 있는 개들이 수색 업무에도 적극적이고 출동을 즐길 수 있어 좋은 구조견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야외 훈련장으로 나온 말리에게 이곳은 그저 공을 물어오고 간식을 얻어먹는 놀이터나 다름없었습니다. “가라” 구령이 떨어져도 인솔자의 왼쪽에 붙어 발을 맞추는 초급 각측 훈련을 겨우 따라오는 수준. 보상으로 공을 던져주면 훈련장을 크게 빙빙 돌며 더 놀아달라고 보챘죠. 김 훈련관은 “말리는 아직 천방지축 강아지 티를 못 벗은 친구”라며 “인명구조견이 되려면 1년은 더 걸릴 것”이라며 아빠미소를 지었습니다.

베테랑의 품격…6살 인명구조견 나무의 활약

말리에 이어 6살 인명구조견 나무가 훈련장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김원현 소방관과 함께 수많은 사투를 벌여온 베테랑 구조견은 걸음걸이부터 확연히 달랐습니다.

“가라!”는 구령 소리에 김 소방관의 곁에 그림자처럼 밀착한 나무는 소방관이 갑자기 뛰거나 방향을 급전환해도 마치 자석처럼 붙은 상태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각측 훈련에 이어 수백 미터 밖에서도 인솔자의 지시를 수행하는 고난도의 원격 제어 훈련이 시작되었습니다. 인솔자가 “앞으로, 좌로, 우로” 구령을 보내자, 멀리 떨어져 있던 나무는 마치 리모컨으로 조종한 듯 정확하게 방향을 틀며 사방 100m를 정밀 수색했습니다. 높은 장애물이 가로막아도 “올라가” 지시 한마디에 거침없이 뛰어올랐습니다. 수색을 모두 마친 뒤 김 소방관이 “나무”라고 부르자 쏜살같이 달려와 간식을 받아먹었습니다.


나무의 진가는 고난도 장애물 훈련장에서 더욱 빛났습니다. 본래 개들은 바닥이 흔들리거나 구멍이 뚫려 발을 헛디딜 수 있는 불안정한 환경을 본능적으로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이는 실제 재난 현장에서 가장 흔하게 맞닥뜨리는 환경입니다. 때문에 훈련장에는 흔들다리, 시소, 공중 사다리, 가파른 경사로 등의 시설이 마련돼 있습니다.

김 훈련관은 “교육 1년 미만의 견습견들은 장애물 앞에서 얼어붙거나 도망치듯 빠르게 지나가는 것이 고작”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나무는 흔들다리에서도 차분하게 한 걸음씩 진동을 견디며 천천히 건넜고, 다리 끝에 도달해서도 섣불리 내려가지 않고 자리를 지키며 다음 지시를 기다리는 침착함을 보여주었습니다.

마지막 단계인 재난 대비 훈련에서 나무는 왜 자신이 베테랑인지를 몸소 증명했습니다. 앞서 기자가 직접 매몰자 역할을 했던 바로 그 훈련이었습니다. 축구장 넓이의 거친 콘크리트 잔해 속에서 나무는 흩날리는 미세한 체취를 포착했고, 단 5분 만에 깊숙이 숨겨진 매몰자를 찾아내 짖었습니다. 실제 재난 현장이었다면 위기에 처한 조난자의 생명을 구하는 결정적 순간이었겠죠.

“은퇴 후를 생각하면 막막합니다”… 영웅들의 씁쓸한 노후

재난 현장에서 인명구조견의 능력은 대체 불가능합니다. 인간보다 1만 배 뛰어난 후각으로 매몰자를 찾아내는 탐지 능력은 그 어떤 첨단 기계로도 구현되지 않습니다. 구조 현장에서는 대원 50명분의 인명 수색을 해내곤 합니다.

구조의 골든타임을 지키기 위해 위험천만한 현장으로 가장 먼저 몸을 던지는 건 구조견들의 숙명입니다. 지난 4년간 700여곳 현장을 함께 누비는 동안 김 소방관과 나무의 몸엔 날카로운 유리와 철근에 베인 흉터들이 훈장처럼 남았습니다. 김 소방관은 “꺼져가는 생명을 구하기 위해 일분일초라도 빨리 현장에 뛰어드는 것이 나무의 숙명”이라며 “이런 견생을 스스로 선택한 것도 아닌데, 사람을 위해 매일 헌신하는 나무에게 매일 고맙고 또 짠한 마음뿐”이라고 털어놓았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활약과 헌신에도 불구하고, 은퇴 후 인명구조견들의 복지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사람 공무원에겐 퇴직금이나 연금이라도 나오지만, 구조견들은 은퇴 후 갈 곳조차 확실치 않죠. 구조견들의 돌봄과 입양을 전담하는 정부 부서도 없습니다. 현장을 떠난 은퇴견들은 기존에 일하던 부대에서 동료 대원들의 뒷바라지를 받으며 민간 입양을 기다리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소방청 홈페이지 등에 입양공고는 올라가지만, 실제 적합한 보호자를 찾기 위해 발 벗고 뛰는 것은 함께 고생해 온 동료 소방대원들입니다. 김원현 소방관은 “인명구조견의 은퇴가 임박하면 전국에 28명뿐인 구조견 운용관들이 입양처를 알아보느라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제도의 빈자리를 뜨거운 전우애로 간신히 메우고 있는 셈입니다.

그나마 나무는 운이 좋은 편입니다. 2~3년 뒤 은퇴하면 파트너였던 김원현 소방관이 직접 입양하기로 약속한 상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다수 핸들러의 형편이 은퇴한 구조견을 책임질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지난 5년간 은퇴한 인명구조견 30마리 중 핸들러가 직접 입양한 경우는 단 4마리에 불과했죠. 나머지 26명은 우여곡절 끝에 입양자를 찾아갔습니다.

그나마 최근 농림축산식품부는 은퇴 인명구조견과 군견 등 국가봉사동물을 입양한 가정에 연간 100만원 한도로 의료비와 사료비를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네발 영웅들의 노후 대책이 이제 막 첫걸음을 뗀 셈입니다. 나아가 정부는 은퇴한 봉사동물들의 돌봄과 입양을 전담하는 통합센터 건립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일선 소방관들이 온전히 떠맡아야 했던 은퇴견들의 노후를 국가가 약속대로 온전하게 책임질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이성훈 기자, 전병준 기자 tellme@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