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극으로 만나는 비운의 세자 ‘효명’… 그가 만든 춤, 못 펼친 꿈

장지영 2026. 5. 2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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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문화]
6월 23~28일 국립극장서 공연
순조의 아들, 예악 정치 펴다 요절
그가 만든 ‘춘앵무’ 등 무대서 선봬
국립창극단 단원들이 지난 19일 국립극장에서 신작 ‘효명’의 주요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선 시대에 뛰어난 자질로 기대를 모았지만 요절하는 바람에 왕이 되지 못한 두 명의 왕세자가 있다. 인조의 아들 소현세자(1612~1645)와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1809~1830)다. 효명세자는 대중에게 2016년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박보검의 모델로 친숙하다. 해피엔딩이었던 드라마와 달리 현실에선 효명세자가 22세에 갑자기 세상을 뜨는 바람에 개혁 동력을 잃은 조선은 국운이 빠르게 쇠락했다.

세도 정치 속에 왕권 약화를 겪던 순조는 외아들 효명세자에게 큰 기대를 걸었다. 효명세자가 어릴 때부터 ‘정조의 환생’으로 불릴 만큼 영민한 군왕의 기질을 보였기 때문이다. 순조는 건강을 이유로 18세의 효명세자에게 대리청정을 위임했다. 이에 효명세자는 유교의 근본인 ‘예’(禮)로 나라의 질서를 바로잡고 ‘음악’(樂)으로 백성을 교화해 왕실의 위엄을 회복하고자 했다. 외척인 안동 김씨의 반대파를 등용해 세력 균형을 맞추고 과거를 자주 시행해 인재들을 등용했다. 또한 할아버지 정조처럼 왕릉을 자주 참배해 민심을 살피는 한편 군사 훈련으로 군권을 강화했다.

무엇보다 효명세자가 펼친 예악 정치의 하이라이트는 궁중 연향(잔치)이다. 대부분 아버지 순조와 어머니 순원왕후를 위한 궁중 연향은 단순히 먹고 마시는 행사가 아니라 ‘효’로써 천하를 다스린다는 유교 이념을 담은 고도의 정치 행위였다. 효명세자는 직접 잔치의 총감독이 돼 ‘정재’(呈才)를 23편 만들었다. 정재는 재능과 기예를 귀한 분께 보인다는 뜻으로, 궁중 무용의 대명사처럼 사용된다. ‘춘앵무’ ‘공막무’ ‘가인전목단’ ‘검기무’ ‘첩승무’ 등 유명한 정재는 효명세자가 직접 창작하거나 새롭게 보완 및 수정을 한 것이다. 이 가운데 순원왕후의 40세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만든 ‘춘앵무’는 궁중 정재 최초의 독무다. 꾀꼬리를 상징해 노란색 의상을 입고 화관과 한삼을 착용한 채 화문석(꽃돗자리) 위에서 추는 춘앵무는 오늘날에도 자주 추어진다.

신작 ‘효명’을 위해 춘앵무와 공막무 등 일부 정재를 직접 배운 단원들은 이를 무대에서 선보인다. 연합뉴스


국립창극단이 6월 23~28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효명세자를 소재로 한 신작 ‘효명’을 선보인다. ‘효명’은 인물의 일대기를 따라가는 전형적인 사건 중심의 서사 대신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는 효명세자의 예악 정치에 집중한다. 극 중 무용수 묘묘는 효명세자를 살해하려 궁궐에 잠입했다가 점차 감화되며 갈등하는 가상의 인물이다. 잔치의 대미를 장식할 효명세자와 묘묘의 공막무(검무 계열의 정재) 준비 과정은 작품에 긴장을 고조시키며 이야기의 중심축을 이룬다. 이번 작품을 위해 국립창극단 단원들은 춘앵무와 공막무 등 일부 정재를 직접 배워 무대에서 춘다.

유은선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은 “현재 전해지고 있는 궁중 무용 53종 중 23종은 효명세자가 만들었다. 우리 전통 예술에 대한 효명세자의 기여가 크지만 궁중 무용은 대중에게 여전히 낯설게 느껴진다”면서 “이번 작품을 통해 우리 춤을 창극이라는 틀에서 재밌게 알리는 한편 효명세자가 만들고자 했던 이상적 세계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효명세자 역의 김수인(사진 왼쪽)과 이광복. 연합뉴스


극단 라마플레이를 이끄는 연출가 임지민이 연출을 맡고, 극작가 이만희와 유은선 감독 그리고 임미진이 대본을 공동 집필했다. 효명세자와 묘묘 역으로는 이광복-김소연, 김수인-김우정이 더블 캐스팅됐다. 지난 1월 국립창극단을 떠나 창작자로 나선 유태평양이 작창을 맡고, 이병훈과 김선이 궁중 정재 음악에 현대적 리듬을 더한 음악을 만들었다. 그리고 현대무용을 기반으로 다양한 움직임 작업을 선보여온 김재덕이 안무를 맡았다.

판소리와 함께 어릴 때부터 춤을 배운 효명 역의 김수인은 “궁중 정재는 즐겁지만 넘치지 않아야 하고, 슬프지만 비통하지 않아야 한다고 배웠다”면서 “그런 정신으로 살아갔을 효명세자의 군중 속 고독을 무대에서 표현하고 싶다”고 말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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