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말에 ‘오염’ 된 김정은, 증거는 이것”…北언어 분석 나왔다

이유정 2026. 5. 22.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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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에 특별수행원으로 동행한 재계 총수들을 겨냥한 이선권 당시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의 ‘냉면 목구멍’ 발언은 북한의 전략적·의도적 언사였다는 분석이 나왔다. 또 남한식 언어 유입을 경계해 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정작 남측 언어를 쓰는 경향도 포착됐다.

북한 정책세미나

한국국가전략연구원(KRINS) 22일 주최한 ‘북한의 언어는 전투적이다’ 정책 세미나에서 박기석 전 북한 김일성종합대학교 연구교수(언어학 박사)는 “북한에서는 언어를 무기로 쓴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태어난 호주 국적자인 박 박사는 김일성대에서 언어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문학대학 연구교수로 14년을 체류했다. 현재는 호주 멜버른에 기반을 두고 남북한 언어와 문화 연구를 하고 있다. 가장 최근 평양 방문은 2023년이다.

그는 “김일성이 제일 먼저 한 말이 ‘언어는 힘 있는 무기’(김일성저작선집)라는 표현”이라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1985년 출간한 과학백과사전출판사 논문지인 ‘공산주의적 인간의 언어 생활 규범’에서는 “원수(적)에 대해서는 예리한 총칼로 되어야 하는 것이 공산주의적 인간의 언어생활”이라고 기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5일 오전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10·4 선언 발표 11주년 기념 민족통일대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이어 그는 “북한이 막말하고 무안을 주는 것은 (일종의) 전략”이라며 대표적인 사례로 2018년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이튿날 옥류관 오찬장의 ‘냉면 목구멍’ 발언을 꼽았다. 이선권은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재계 특별수행원들에게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니까”라며 호통을 쳤다.

박 박사는 “대북제재 위반을 우려해 북한에 투자하지 않는 기업인들에게 의도적으로 모욕을 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당시 북한이 남측 재계 인사들을 의도적으로 홀대한 정황은 또 있었다. 박 박사는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연설한 능라도 5월1일 경기장에 초대받았다. 주석단 인근의 자리를 안내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재계 총수들은 주석단과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앉았다. 박 박사는 “행사를 마치고 일어서서 나오려고 하는데 기업인들이 인민들 속에 갇혀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고 떠올렸다.

이에 박 박사가 북한 당 관계자에게 “동무, 저 선생들은 남쪽에서 세계적인 사업을 하는 대단한 사람들인데 왜 저렇게 구석에 두었느냐”고 묻자, “저희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란 답이 돌아왔다. 좌석 배치 역시 계산된 냉대로 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여사가 남북정상회담 둘째날인 19일 오후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열린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장에 입장한 뒤 환호하는 시민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한편 박 박사는 지난해 출간한 저서 『인사이드 평양』에서 문 전 대통령의 연설 당시 상황을 상세히 묘사했다.

문 전 대통령이 “특유의 경상도 발음으로 목소리를 높여서 연설하느라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고, 옆자리에 앉은 북한 사람에게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느냐고 묻자 “무슨 소리인지 통 알 수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는 것이다. 박 박사는 “경상도 발음을 평안도 사람이 잘 알아듣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기록했다.


남한 뉴스 너무 많이 본 김정은?


북한은 지난 3월 22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평양에서 최고인민회의 제15기 1차 회의를 열고 김정은을 국무위원장으로 재추대했다고 조선중앙TV가 23일 보도했다. 조선중앙TV=연합뉴스
북한 당국은 2023년 1월 평양문화어보호법 제정을 통해 젊은 세대가 남한 언어에 ‘오염’ 되는 것을 차단했다. 그러나 정작 김정은이 남측의 용어에 영향을 받은 정황이 나타났다. 지난해 9월 22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3차회의 연설에서 언급한 “위헌(違憲)” 언급이 대표적이다.

김정은은 해당 연설에서 “우리는 핵보유를 공화국의 최고법에 명기”했다면서 “이제 비핵화를 하라는 것은 우리더러 위헌 행위를 하라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같은 연설에선 “우리가 위헌을 하겠습니까”라는 표현은 재차 등장한다.

이에 대해 박 박사는 “북한에는 헌법이라는 존재가 의미 없으니 위헌이라는 말을 쓸 일이 없다”면서 “북한에서 오신 엘리트 분들에게 여쭤봐도 쓰지 않는다고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계엄 사태 등과 관련한 뉴스를 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이다. 김정은은 비핵화 시도 자체가 헌법에 어긋난다는 점을 강조하려다 남측 용어를 쓴 것이란 얘기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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