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참여성장펀드 ‘완판 행렬’이라는데…한산한 은행 창구, 왜? [가봤더니]
은행권 “지점당 1~2명만 가입해도 마감되는 구조…착시 현상”

국민참여성장펀드 판매 첫날인 22일 오전, 서울 일대 시중은행점포는 금융당국과 은행권이 예고했던 혼잡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한 NH농협은행 지점을 방문하자, 청원경찰은 “고유가 지원금 신청하러 오셨느냐”며 먼저 말을 건넸다. 실제로 대기석을 채운 중장년·고령층 고객 대다수가 정부가 지급하는 ‘고유가 피해지원금’을 신청하러 온 이들이었다.
국민참여성장펀드 자체를 모르는 이들도 있었다. 동작구 인근 우리은행에서 만난 60대 여성 홍모씨는 국민참여성장펀드에 대해 묻자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다”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만기 5년 동안 돈을 묶어둬야 한다는 설명을 들은 뒤에는 “5년 동안 돈을 못 빼면 그냥 주식하는 게 낫지 않겠냐”며 손사래를 쳤다. 홍씨를 비롯해 이날 오전 해당 지점을 찾은 고객 대부분은 고유가 피해지원금 신청이 목적이었다.
신한은행 창신동금융센터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기자가 ‘국민성장펀드’를 문의하자 은행 직원은 현수막을 가리키며 “조기 소진 가능성이 있다”고 안내했으나, 정작 방문 고객들의 관심은 펀드보다 지원금 신청에 쏠려 있었다. 은행에 들어서던 70대 여성 고객 두 명 역시 “국민참여성장펀드 가입 때문에 왔느냐”는 질문에 “나라에서 준다는 고유가 피해지원금을 신청하러 왔다”고 답했다. 하나은행의 한 지점 관계자 역시 “현재 창구에 앉아 계신 분들은 모두 다른 업무를 보러 오신 것”이라며 “국민성장펀드 가입을 위해 방문한 고객은 아직 없다”고 전했다. 한 SC제일은행 영업점의 경우 오전 10시가 넘은 시간에도 “아직 본사로부터 판매 개시 지침이 내려오지 않았다”고 했다.
다만 재테크에 밝은 젊은 층 사이에서는 간간이 대면 가입자가 포착됐다. KB국민은행 창신동지점을 찾은 30대 직장인 A씨는 “신문에서 세액공제 혜택이 좋다는 내용을 보고 직접 가입하러 방문했다”고 말했다. A씨는 이날 해당 지점에서 국민성장펀드 가입 상담을 요청한 첫 고객이었다. 번호표 발급을 담당하던 직원은 “평소 펀드 가입 고객보다 연령대가 확실히 낮은 편”이라며 상품 정보와 절세 혜택에 밝은 30~40대 직장인 중심의 수요를 체감한다고 전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강북 일부 지점은 개점 전부터 문의가 집중돼 현장 직원들이 응대에 애를 먹기도 했다”고 전했다.

오프라인 창구가 조용했던 것과 달리, 비대면 채널에서는 출시 직후부터 폭발적인 수요가 몰렸다. 신한·하나·NH농협·우리은행 등 주요 판매사의 온라인 물량은 오전 중 대부분 완판됐다. 특히 신한은행의 경우, 영업점 창구 접수 개시 이후 약 55분 만인 오전 10시45분 대면과 비대면 한도가 모두 소진됐다. NH농협은행의 경우 배정 한도 자체가 200억원으로 다른 4대 시중은행(450억원)의 절반에 못 미쳐 소진 속도가 더욱 빨랐다. 일부 금융사는 서민형 우선 배정 물량까지 전액 소진된 것으로 파악됐다.
온·오프라인의 온도 차에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은행별 배정 물량은 2200억원이다. KB국민은행은 650억원, 신한·하나·우리은행은 각각 450억원, NH농협은행은 200억원 수준의 한도를 배정받았다. 예컨대 450억원을 배정받은 신한은행의 경우, 대면 채널 배정액은 약 270억원에 불과하다. 전국 영업점 600~700개로 나누면 점포당 평균 5000만원 수준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점당 자산가 1~2명만 가입해도 한도가 소진돼 ‘조기 완판’이 되는 구조”라며 “창구가 한산해 보이는 건 일종의 착시다. 이미 비대면으로 상당 물량이 소진된 데다, 대면 배정액 자체가 워낙 적어 지점이 붐빌 이유가 없다”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도 지난 3월1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억원 금융위원회 위원장의 ‘국민성장펀드 추진현황 및 향후계획’을 보고 받고 “잘 준비하셨는데 국민참여형 펀드는 (3조원이면) 너무 소심한 것 아닌가”라고 짚은 바 있다. 그러면서 “일단 시범적으로 시작하되 5년간 이렇게 할 필요는 없다”며 국민참여형 펀드 규모의 확대를 주문했다.
여기에 대면 가입 절차가 까다롭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필수 상품 녹취, 동의서 작성, 설명 의무 이행 등 법정 절차를 모두 거쳐야 하므로 고객 1인당 최소 50분에서 최대 2시간까지 소요되어 창구 회전율이 낮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국민성장펀드가 첫날부터 기록적인 흥행을 보인 비결로는 ‘절세 혜택’과 정부가 제공하는 ‘안전장치’가 꼽힌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최근 주식시장이 호황하고 성장기업에 대한 지원 펀드다 보니 관심이 쏠린 것 같다”며 “정부 재정이 투자금 전체의 20%를 우선 손실 부담하는 보호 장치도 있다 보니 정부를 믿고 투자한 사람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국민성장펀드는 구간별로 △3000만원 이하 40%, △3000만~5000만원 구간 20%, △5000만~7000만원 구간 10%의 소득공제가 각각 적용된다. 예컨대 전용계좌를 통해 7000만원을 납입하면 최대 1800만원의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 여기에 배당소득 분리과세(9%) 혜택까지 더해지면서 절세에 민감한 고액 자산가와 3040 직장인들이 앱을 통해 빠르게 가입에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가 손실을 보전해 주는 구조도 투자자들의 심리적 장벽을 낮췄다. 각 자펀드에서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정부 재정이 20% 범위 안에서 먼저 손실을 부담(후순위 출자)하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최근 주식시장이 호황이고, 성장기업에 대한 지원 펀드다보니 관심이 쏠린 것 같다”며 “정부 재정이 투자금 전체의 20%를 우선 손실 부담하는 보호 장치도 있다 보니 정부를 믿고 투자한 사람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도 이날 오전 NH농협은행 정부서울청사지점을 직접 방문해 펀드에 가입하며 현장을 점검했다. 그는 “미래 전략산업 성장의 과실을 함께 나누는 투자 기회이자 첨단전략산업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상생 발판이 될 것”이라며 “단기 흥행에 치우쳐 불완전판매가 발생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달라”고 당부했다.
김태은, 최은희 기자 taeeu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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