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산책]"작가는 기상청이 아니다"…나점수가 아트부산에 세운 바람
신작 '향' 통해 풍속 아닌 시심의 영역 탐구
거래의 속도 속에서 감각의 방향을 묻다
바람은 없었다. 대신 바람을 기다리는 기계들이 서 있었다. 21일 부산 벡스코 아트부산 2026 CONNECT 섹션, 나점수의 신작 '향' 앞에는 검은 삼각대 위로 오래된 계측기 같은 장치들이 올라가 있었다. 그 위에 반투명한 부채꼴 구조, 빗살처럼 뻗은 가는 선, 갈색 입자 더미가 놓였다. 작가는 그 장치 앞에서 작은 축을 손으로 만졌다. 움직임은 크지 않았다. 그래서 더 오래 보게 했다.

관람객이 물었다. "동력원이 뭡니까." 작가는 짧게 답했다. "배터리입니다." 답은 사물의 설명이었지만, 곧 작가론으로 넘어갔다. 나점수에게 이 장치는 바람을 일으키는 기계가 아니었다. 바람을 생각하게 하는 장치였다. 그는 "물리적인 힘의 바람이라면 기상청에서 보도하는 게 낫다"고 했다. 작가는 기상청이 아니다. 그가 말하려는 것은 풍속도, 풍향도 아니다. 바람이 가진 붙잡을 수 없음이다.
작품 제목 '향(向)'은 방향을 뜻한다. 그러나 여기서 방향은 목적지를 향해 직선으로 가는 길이 아니다. 사람의 방향, 자연의 방향, 바람의 방향, 해류의 방향이 서로 겹쳐지는 움직임이다. 작가는 파도가 아래로 내려가 해류가 되고, 다시 올라와 파도가 되는 순환을 말했다. 바람도 밀려갔다가 돌아온다. 출발과 도착보다 중요한 것은 그 사이에서 생기는 감응이다.
나점수는 오래 나무를 다뤄온 조각가다. 끌과 톱으로 나무를 깎고, 표면의 결·균열·거칠기를 남겼다. 그의 조각에서 재료는 개념을 설명하는 소품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간 자리다. 이번 '향'에서도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다만 나무의 표면을 파고들던 손이, 이번에는 움직임의 방향을 세웠다. 기계는 작동하지만 기술을 과시하지 않는다. 선은 흔들리지만 바람을 흉내 내지 않는다. 작품은 바람을 보여주는 대신, 관람객 안에서 바람이 일어나기를 기다린다.

작가는 그것을 '시심'의 문제로 보았다. 시를 쓰는 마음이라기보다, 세계가 먼저 보내는 미세한 신호를 받아들이는 마음에 가깝다. 그는 "자연은 계속 보여주고 있는데, 사람이 감지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사람이 자연을 초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초대하면 응해줘요." 그의 말에서 자연은 멀리 있는 풍경이 아니라, 감각이 열렸을 때 비로소 다가오는 대상이었다.
아프리카에서 만난 한 아이의 이야기도 그래서 길게 미담으로 풀 필요가 없다. 먹을 것이 넉넉하지 않은 아이가 오렌지를 들고 있었다. 작가가 배고픈 척을 하자 아이는 결국 그것을 내주었다. 그는 그 장면을 두고 "아직 망가지지 않았다"고 했다. 생존의 자리에서도 타인의 배고픔에 응답하는 마음. 작가는 자연도 그와 같다고 보았다. 먼저 부르면, 응답한다. 다만 사람이 그 응답을 들을 만큼 느려지지 못했을 뿐이다.

아트페어는 빠른 장소다. 작품은 이름과 가격, 부스와 거래의 언어 속에서 지나간다. 나점수의 '향'은 그 속도를 거스른다. 낡은 기계처럼 보이는 장치, 부채꼴로 열린 선, 가볍게 흔들리는 구조물은 무엇을 설명하기보다 잠시 멈춰 서게 한다. 무엇이 움직였는지보다, 내가 무엇을 감지했는지가 남는다.
나점수는 바람을 만들지 않았다. 바람이 지나갈 자리를 만들었다. 그 앞에 서면 알게 된다. 방향은 늘 바깥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감각이 열리는 순간, 사람 안에서도 바람은 분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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