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적 망신 자초한 '스벅 탱크데이', 외신들이 특히 주목한 부분 [임상훈의 글로벌리포트]

임상훈 2026. 5. 22.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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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훈의 글로벌 리포트] 로이터·가디언·알자지라 등 외신이 소환한 국가폭력과 민주화의 기억

[임상훈 기자]

 19일 <로이터>는 "‘탱크 데이’ 판촉으로 여론의 거센 비판 받은 스타벅스 코리아 대표 해임"이라는 기사를 올렸다.
ⓒ 로이터
스타벅스의 '탱크 데이' 논란은 빠르게 국경을 넘었다. <로이터>와 <가디언>, <알자지라>가 이 일을 보도했고, < AFP >와 <블룸버그> 계열 보도는 아시아, 유럽, 북미, 중동과 아프리카 매체로 퍼졌다. 한국의 한 기업 판촉 문구가 이 정도 속도로 국제 뉴스에 오른 일은 흔치 않다.

그 확산에는 스타벅스라는 이름의 무게도 있었다. 세계 어디서나 알아보는 커피 브랜드가 한국 현대사의 가장 아픈 날에 '탱크'를 내세웠다는 사실만으로도 뉴스가 됐다. 신세계 계열이 운영하는 한국법인만 그 무게를 가볍게 여겼다고 말할 수 있을까.

외신이 본 '탱크'와 '탁'은 추모의 언어가 아니었다. 5월 18일의 광주와 1987년의 박종철을 기이하고 불쾌한 판촉 문구 속으로 끌어들인 저급한 상업 언어였다. 세계 언론은 이 말들이 왜 한국 사회를 찔렀는지 설명하기 위해 한국 현대사의 아픈 장면들을 다시 불러냈다. 국내에서 앱 탈퇴, 선불카드 환불, 텀블러와 머그잔 파손 인증으로 이어진 이른바 '탈스벅' 시민 행동도 전했다.

<로이터>는 이 판촉이 "1980년 민주화 시위대에 대한 잔혹한 군사 진압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불러냈다고 썼다. 논란의 핵심도 분명히 짚었다. 5월 18일에 시작된 '탱크 데이'는 광주항쟁 당시 군사정권이 시위를 진압하며 사용한 탱크의 기억을 건드렸고, '탁'이라는 문구는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경찰의 거짓 해명을 떠올리게 했다는 것이다. <로이터>는 이 사안을 대표 해임과 불매 움직임 차원으로만 다루지 않고, 한국 민주주의가 지나온 국가폭력의 기억 속에 놓았다.

<가디언>의 표현은 더 직접적이었다. 가디언은 이 광고가 "민주화 시위대 학살을 환기했다"고 썼고,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은폐 발언을 떠올리게 했다고 설명했다. 또 이 일이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의 우익 성향 논란, 한국 극우의 광주 왜곡 맥락과도 겹쳐 읽히고 있다고 짚었다. 외신이 본 것은 단순한 홍보 사고가 아니라, 국가폭력의 기억을 부적절한 판촉 언어가 건드린 장면이었다.

<알자지라>는 제목부터 이 사건을 "군사 진압을 떠올리게 한 판촉"으로 잡았다. 기사 설명도 "1980년 광주항쟁의 유혈진압을 불러낸 '탱크 데이' 마케팅 캠페인"이었다. 싱가포르의 <채널 뉴스 아시아> 역시 제목에서 '탱크 데이' 캠페인이 "1980년 학살을 환기했다"고 보도했다. 외신의 어휘는 대체로 같은 방향을 가리켰다.

유럽 매체들도 이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프랑스의 <르파리지앵>은 제목에서 "1980년 5월 18일 학살을 떠올리게 한 광고"라고 썼고, 스페인의 <라섹스타>는 광주항쟁을 전두환 군사독재에 맞선 민중 봉기이자 한국 민주주의의 "이정표"로 설명했다. 스페인 경제지 <싱코 디아스>는 <블룸버그> 계열 보도로 이 광고가 "1980년 군사 진압을 환기했다"고 전했다. 한국에서 터진 반응이 외신의 문장 속에서 국가폭력과 민주화 투쟁의 언어로 옮겨진 것이다.

오래된 조롱의 방식
 18일 <가디언>은 "민주화 시위대 학살을 연상시키는 광고로 경질된 스타벅스 코리아 대표"라는 기사를 올렸다.
ⓒ 가디언
외신이 광주와 박종철까지 거슬러 올라간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문제의 말들은 빈 공간에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한국 사회 안에는 5·18을 조롱거리로 낮춰온 혐오의 말버릇이 오래 남아 있었다. 폭동이라는 말, 북한군 개입설, 유공자 특혜라는 말들이 이름을 바꿔가며 떠돌았다. 그 말들은 역사를 따지는 언어가 아니었다. 희생자의 기억을 의심하게 만들고, 국가폭력의 책임을 흐리게 만들며, 고통을 조롱 가능한 소재로 낮추는 말들이었다.

극우는 민주주의의 기억을 정면으로 이기기 어렵다. 그래서 그 기억의 품격을 먼저 떨어뜨린다. 학살을 폭동으로, 희생자를 특혜집단으로, 고통을 농담거리로 바꾸는 방식이다. 기억이 조롱거리로 낮아지는 순간, 국가폭력의 책임도 흐려지고 권위주의의 언어는 다시 숨 쉴 틈을 얻는다.

품격을 떨어뜨리는 데 성공하면, 다음 단계는 쉬워진다. 존엄한 기억은 위선으로 몰리고, 증언은 거짓말로 의심받으며, 애도는 특권의 요구처럼 왜곡된다. 극우의 조롱은 바로 이 지점을 노린다. 민주주의의 기억을 자신들이 다룰 수 있는 낮은 수준으로 끌어내린 뒤, 다시 공격 가능한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런 말버릇 위에서 '탱크 데이'와 '탁'은 단순한 홍보 문구로 들릴 수 없었다. 사람들은 말의 겉모양보다, 그것이 기대고 있는 오래된 조롱의 방식을 먼저 알아봤다. 이번 반응이 빠르게 번진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 문구는 민주주의에 대한 존중의 언어가 아니었다. 5월 18일의 탱크와 1987년의 '탁'을 판촉의 장식처럼 다루는 순간, 그것은 모욕으로 읽힐 수밖에 없는 말이 되었다. 외신이 따라간 것도 바로 그 지점이었다. 왜 이 말이 한국 사회를 찔렀는지 설명하려다 보니, 그들이 도착한 곳이 광주였고 1987년의 조사실이었다.

조롱이 어떤 상처를 밟고 지나갔는지 설명하는 과정에서 역사는 다시 불려 나왔다. 세계 독자에게 '탱크'와 '탁'이 왜 장난으로 들릴 수 없는지 말하려면 그 뒤의 국가폭력과 민주화의 기억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계도 알아듣기 시작했다
 19일 <르파리지앵>은 "'부끄러운 행태': 1980년 5월 18일 학살을 떠올리게 한 광고로 인해 스타벅스 코리아 대표 해임"이라는 기사를 올렸다.
ⓒ 르파리지앵
이번 사건은 부끄럽다. 5·18을 가볍게 다루는 말이 아직 한국 사회 안에 남아 있고, 그 말이 기업의 판촉 언어로까지 흘러들 수 있음을 보여줬다. 민주주의의 기억을 조롱거리로 낮추려는 저급한 시도는 여전히 집요하다.

그러나 그 말은 조용히 지나가지 못했다. 시민들은 그것을 알아봤고, 거부했고, 행동으로 옮겼다. 일상의 소비 공간에서도 5·18의 기억을 함부로 다룰 수 없다는 기준이 작동한 것이다.

더 중요한 장면은 그다음에 있었다. 외신은 이 반응을 한국 내부의 예민한 소비자 분노로 보지 않았다. 광주와 국가폭력, 박종철과 민주화의 기억을 함께 설명했다. 한국 사회가 지키려 한 것이 특정 지역의 과거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라는 점을 세계 언론이 읽어낸 것이다.

광주를 조롱하는 말은 아직 남아 있지만, 광주가 품고 있는 민주주의와 인간 존엄의 가치는 더 넓은 언어로 이해되고 있다. 국가폭력을 거부하는 기억, 희생자의 존엄을 지키려는 감각, 진실을 조롱으로부터 보호하려는 마음은 한국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번 사건의 희망은 거기에 있다. 저급한 말들은 여전히 우리 주변을 맴돌지만, 그 말들이 건드린 것이 무엇인지 세계도 알아듣기 시작했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민주주의와 보편 인권의 언어는 조롱이 가리지 못한다.

조롱은 기억의 품격을 낮춰 공격하려는 얕은 전술일 뿐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존엄은 그 낮은 말들 안에 갇히지 않는다. 세계가 그 모욕의 의미를 알아듣기 시작했다면, 광주의 기억은 더 이상 외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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