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 24초 만에 맨홀 솟았다…강남 물난리 재현한 900평 실험장 [르포]

천권필 2026. 5. 22.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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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시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도시홍수 파일럿 실험장에서 침수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천권필 기자

빗물받이가 막히자 왕복 6차선 도로에 물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도로 양옆에 있는 인도 역시 사람이 서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물에 잠겼다.

" 비가 내리면 맨홀과 빗물받이를 통해서 빗물이 우수관으로 유입되는데요. 비로 인해 토사가 유입돼 우수관이 막혔을 때 침수 상황을 재현하는 실험을 하는 중입니다. "
권영화 한국건설기술연구원(건기연) 박사후연구원이 물에 잠기는 도로를 가리키면서 설명했다. 지난 19일 방문한 이곳은 경북 안동시 건기연 하천실험센터 안에 있는 도시홍수 파일럿 실험장이다.

경북 안동시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도시홍수 파일럿 실험장. 사진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이날 처음 공개된 3000㎡ 규모의 이 실험장은 서울 반포천 일대에 있는 왕복 6차선 도로와 인도뿐 아니라 지하 우수저류시설·배수터널, 빗물펌프장까지 그대로 본떴다. 극한호우가 왔을 때 도시에서 발생하는 홍수의 전 과정을 분석하기 위해서다. 비 대신 인근 낙동강 물을 저수지에 저장했다가 월류시키는 방식으로 시간당 최대 175㎜의 극한호우 상황을 재현할 수 있다.


강우량 4배 늘면 침수 속도 6배 증가


2022년 8월 8일 집중호우로 서울 강남역 사거리 도로가 침수돼 있다. 뉴스1
실험장의 모델이 된 서울 강남 지역은 저지대로 도시 홍수가 상습적으로 발생하는 곳이다. 2022년에는 집중호우로 강남 일대가 물바다가 되기도 했다. 특히, 기후변화로 인해 집중호우의 빈도가 잦아지고 강도도 강해지면서 도시 홍수를 방어할 수 있는 인프라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극한호우의 위험성은 실험 결과에서도 확인됐다. 시간당 강우량이 늘어나는 것보다 침수 속도는 더 가파르게 상승했다. 이미 많은 비가 내려 우수관이 절반가량 막힌 상황을 가정하고 시간당 44㎜ 강우 수준의 물을 공급한 결과, 37분 만에 성인의 허벅지 높이인 70㎝ 수위까지 차올랐다.

같은 조건에서 강우량을 175㎜/hr로 늘렸더니 70㎝ 높이까지 차오르는 데 걸린 시간은 6분이었다. 강우량이 4배 늘어난 것과 달리 침수 속도는 6배나 빨라진 셈이다.

김종민 건기연 전임연구원은 “강우 강도가 배수 시설의 설계 한계를 넘어가게 되면 기능이 더 빨리 상실될 수 있다는 뜻”이라며 “강우 빈도 증가에 따라 단순히 우수관의 크기를 늘리기보다는 분석을 통해 더 효과적인 방어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설명했다.


우수관 막히자 24초 만에 맨홀 이탈


경북 안동시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맨홀 실험장에서 맨홀 뚜껑 이탈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인근 맨홀 실험장에서는 맨홀 뚜껑(덮개) 이탈 실험이 진행되고 있었다. 맨홀 뚜껑은 집중호우가 올 때마다 도로 위 흉기로 변한다. 많은 비로 인해 관로 내 수압이 상승하거나, 우수관이 막히면서 빗물이 역류해 맨홀 뚜껑이 이탈하는 사고가 종종 발생한다.

실제 우수관이 90% 막힌 상황을 가정해 실험한 결과 약 24초 만에 20㎏의 맨홀 뚜껑이 ‘펑’ 하는 소리를 내면서 하늘로 솟구쳤고, 곧이어 물기둥이 치솟았다. 건설연은 실험을 통해 우수관의 압력이 0.03바(bar)를 넘었을 때 0.5m 크기 맨홀 뚜껑이 이탈하고, 물기둥도 최대 70㎝까지 상승했다고 밝혔다.

건기연은 실험장에서 분석한 데이터를 도시홍수 예·경보를 위한 수치해석 및 모델 고도화 연구에도 활용할 예정이다. 박선규 건설연 원장은 “이번 도시홍수 파일럿 실험장 구축 및 운영은 기후위기 시대에 실효성 있는 도시 홍수 방어 정책 수립을 위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실험을 통해 검증된 데이터가 국가 홍수 대응 정책과 제도 개선에 핵심적인 근거로 활용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안동=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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