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돈 5000원에 밥상이 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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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옥 기자]
나는 물건에 대한 욕심이 없다. 주변을 보면 주방 그릇을 모으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거실장에 진열해 놓을 미니어처를 모으기도 한다. 하지만 내게는 그릇이나 옷도 꼭 필요한 것만 사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 백화점이나 쇼핑몰에서 쇼핑하는 일도 흔하지 않다. 마트에 가더라도 메모해 간 물건만 사고 곧바로 나오는 일이 다반사다.
친구 집에 가면 이름도 모르는 유명한 그릇들이 찬장 가득 정리되어 있다. 반짝이는 접시와 유리그릇이 보기에도 참 예쁘다. 그 멋진 그릇에 음식을 담아 놓으면 식탁에는 꽃이 핀 듯 아름다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게 이상하게 부럽지 않다. 나에게 그릇은 그저 음식을 담는 도구일 뿐, 그 이상의 의미를 두고 살아오지 않아서다.
우리 집에 있는 그릇들도 대부분 20년 가까이 손때가 묻은 것들이다. 지금 사용하는 그릇 세트는 학원을 하던 2010년 무렵 장만한 것이다. 명절에 선생님들과 기사님들께 선물을 드리려고 샀던 그릇이다. 보통 명절에는 식용유나 생활용품 세트를 선물하곤 했으나, 그해에는 조금 특별했다. 행남자기 공장이 문을 닫는다는 지인의 말을 듣고 미약하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 샀다. 그렇게 산 그릇이 우리 집에도 오게 되어 지금까지 밥상을 지키고 있다.
신기하게 십수 년을 끼니마다 사용해도 닳은 곳 없이 아직 멀쩡하다. 설거지할 때마다 닦아낸 손길 때문인지 오히려 더 반질반질 윤이 난다. 그릇에도 나와 함께 지나온 시간만큼 연륜이 쌓인 것 같다. 그래서 더 오래 쓰게 되고 곁에 두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굳이 바꿀 이유를 찾지 못해서였을 수도 있다. 요즘은 유행이 지나면 멀쩡한 물건도 쉽게 버리고 새로 산다. 하지만 물건 하나에 손때를 묻혀가며 세월을 함께하는 것 또한 삶을 단단하게 지탱해 주는 우리 세대만의 미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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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돈 5000원에 산 나무 도마에 음식을 올리니 요리의 품격이 달라지네요 |
| ⓒ 황윤옥 |
그날 저녁, 남편이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밥상을 차렸다. 수육을 네모나게 썰고 마늘과 고추도 살짝 올렸다. 된장도 한 숟가락 퍼서 나란히 두었다. 그리고 수육에 빠지면 섭섭한 홍어와 생강장아찌도 옆에 올렸다. 분홍빛 생강과 홍어의 색이 나무 도마 위에서 더 또렷하게 살아났다. 새우젓만 종지에 따로 담아내었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상차림이었는데 갑자기 식탁이 유명 식당의 요리처럼 고급스러워 보였다. 식탁에 앉은 남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수육이 담긴 길쭉한 나무 도마를 빤히 바라보던 남편이 말했다.
"와, 오늘은 왜 이렇게 먹음직스럽냐?"
남편은 나무 도마를 살 때는 그런 걸 왜 사냐고 타박하던 사람이었다. 그 한마디에 괜히 웃음이 나면서도 요리사가 된 것처럼 어깨가 으쓱해졌다.
자주 해 먹던 밥상인데도 뭔가 달라 보였다. 격조가 느껴졌다. 정성이 더 들어간 것 같고 보기 좋으니 먹기도 좋았다. 같은 밥상인데도 괜히 더 신경을 쓰게 된다. 음식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지니 그걸 차리는 나를 대하는 마음도 조금 달라진 것 같다.
그날 이후로도 몇 번 더 그 도마를 꺼냈다. 부부의 날을 맞아 사다 두었던 소고기를 구워 다른 반찬들과 함께 올려보았다.
"오늘은 더 근사한 것 같은데."
남편이 싱긋 웃으며 말을 건넸다. 나 역시 근사한 식당에 온 듯한 착각 속에서 밥을 먹었다. 접시를 여러 개 꺼내지 않으니 설거지거리도 줄었다. 접시에 따로따로 담아 차리려면 예닐곱 개는 필요했을 것이다. 이젠 식사 후의 시간이 한결 여유로워졌다. 그동안 밥상을 차리고 치우는 가사 노동의 고단함을 당연하게 여겼다. 작은 도마 하나가 내 일손을 덜어주는 영리한 살림 도구가 되어줄 줄이야. 비싼 그릇은 아니지만, 그 나무 도마 위에 올린 밥상은 어쩐지 식탁을 풍성하게 해 주는 것 같았다.
대단한 변화는 아니다. 여전히 같은 밥을 먹고 같은 반찬을 올린다. 그런데 그 밥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졌다. 작은 나무 도마 하나가 만들어준 마법이다.
여전히 나는 물건을 쉽게 사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5000원짜리 작은 도마 하나가 매일 마주하는 밥상을 이토록 풍성하게 만들어줄 줄은 몰랐다. 거창하고 비싼 그릇이 아니어도 괜찮다. 나를 아끼고 내 일상을 귀하게 여기는 살림의 즐거움은 어쩌면 이렇게 소박한 곳에 숨어있는지도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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