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목지 콘티북 69신, 그 시작은 "아버지의 '야간 헌팅' 제안이었다"

이선필 2026. 5. 21.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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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장면, 이 사람 - 영화 '살목지'①] "겁이 많다"는 이상민 감독 "컴컴한 저수지 배회하다 큰 영감 얻어"

영화의 모든 장면은 협업의 결과물입니다.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감독의 얘기를 듣고, 그 장면 뒤 숨은 주인공을 만나봅니다. <기자말>

[이선필 기자]

 영화 <살목지>의 콘티북 중. 이상민 감독이 선택한 장면은 69신에 해당한다.
ⓒ 쇼박스
여러 단편영화를 만든 뒤 첫 장편, 그것도 공포영화 장르로 데뷔를 준비하던 이상민 감독은 부친과 함께 '충동적으로' 그곳을 찾았다. 충청남도 예산에 있는 살목지를 소재로 여러 구상을 하던 때였다. 저녁 식사 중 아들의 고민을 감지한 부친은 "같이 가줄 테니 빨리 다녀오자"고 제안했고, 그렇게 컴컴한 저수지 주변을 부자가 배회한 게 이 감독에겐 "큰 영감이 됐다"고 한다.

이 감독의 첫 장편영화인 <살목지>가 지난 4월 8일 개봉 이후 장기흥행 중이다. 현재까지(5월 13일 기준) 동원한 관객 수는 306만 7181명. 이미 손익분기점인 80만 명을 훌쩍 넘겼고, 이 추세면 역대 공포영화 흥행 1위 <장화, 홍련>의 최종 관객 수(314만 명)도 넘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예산군과 수자원공사, 한국농어촌공사 등은 <살목지>를 패러디한 홍보영상을 만들기도 했다.

"거기서 봤던 왕버들 군락, 그리고 어둡고 좁은 길이 눈에 확 들어왔다"고 말하는 이 감독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영화 속 인물들이 물귀신에 현혹되고, 생사를 넘나드는 장면들이 모두 그 왕버들 주변에서 탄생했다. 특히 관객 사이에선 독특한 카메라 구도, 어둡고 좁은 공간을 활용한 연출 등으로 몰입감이 상당했다는 평이 나온다. 지난 4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쇼박스 사옥에서 이상민 감독을 만나 '회심의 장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기자의 장면] 속도감 있는 영화 초반부... 그들은 왜 살목지로 갔나
 영화 <살목지> 촬영 현장.
ⓒ 쇼박스
영화는 저수지 살목지의 로드뷰에 정체불명의 형체가 찍힌 뒤, 재촬영을 위해 그곳으로 향한 한수인 피디(김혜윤)와 그의 팀원이 겪는 끔찍한 일을 그린다. 한번 발 들이면 살아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괴이한 소문이 도는 곳이다. 결국 살목지에 도착한 그들이 하나둘 위기에 빠지는 과정을 영화는 속도감 있게 묘사했다.

영화 초반부. 수인은 회사 대표의 재촬영 지시를 내켜 하지 않는다. 앞서 로드뷰 촬영을 진행하다 행방불명된 선배 교식(김준한) 때문이다. 하지만 대표는 "고객사와 계약대로 하루 안에 꼭 찍어야 한다"며 닦달한다. 마침 휴일이라 촬영 팀원을 모으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어렵사리 모인 5명이 한 차에 올라타고 출발하는 순간, 영화 속 화면은 평면 구도에서 360도 파노라마 화면으로 바뀐다. 이를 통해 마치 인물들이 제자리를 맴도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장면은 영화 후반부 장면과 수미상관을 이루기도 한다. 큰일을 겪고 차에 오른 일부 생존자들을 비웃는 듯 360도 카메라 화면에 잡힌 자동차 후미등이 마치 귀신의 기괴한 미소처럼 묘사되는 것. "콘티 단계 때부터 찍으려 했던 장면이었다"며 이 감독은 "로케이션 촬영(세트장이 아닌 외부 촬영)을 갈 때마다 수차례 실험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제가 평소 구글 어스 로드뷰 보는 걸 좋아했다. 도시보단 시골을 좋아했는데 어떤 나라는 지도가 새파랗기도 하고, 길 자체가 잘 뜨지 않는 나라도 있더라. <살목지>에서 가장 큰 고민이 등장인물들이 왜 그곳에 가려고 할까였거든. 공포영화니까 그걸 우선 설득해야 했다. 그러다가 예산군 살목지의 로드뷰를 보는데 실제로 일부가 끊겨 있었다. 왜 끊겼을까 생각하다가 영화를 아예 로드뷰로 풀기로 했다. 로드뷰용 장비로 재밌는 장면을 보여드릴 수도 있을 것 같았고.

그 장면에서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현실이 왜곡되기 시작할 것이란 느낌도 주고 싶었다. 자동차 후미등 장면도 밤이다 보니 제약이 많아서 시행착오를 좀 겪었다. 그러다 백라이트 조명을 줬는데 후미등이 지글지글 끓는 것처럼 화면에 나오는 게 재밌더라. 영화 초반에 던진 떡밥을 회수한다는 차원에서도 360도 카메라로 찍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 사실 실시간으로 찍은 건 아니고, 보충 촬영과 후반 작업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 감독은 "로드뷰 촬영방식을 빌리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업계 관계자분들을 만나 사용법을 하나하나 배웠다"며 "GPS(위치정보시스템)와 데이터 송수신기 등 여러 장비를 사용하기에 팀원을 꾸려 살목지로 향한다는 영화적 개연성을 위해서도 좋은 선택이라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감독의 장면] 수장된 무덤들 전경... "영화의 가장 큰 동력"
 영화 <살목지>를 연출한 이상민 감독.
ⓒ 쇼박스
영화의 후반부. 수인의 옛 연인이었던 기태(이종원)는 촬영팀이 위기에 빠진 걸 직감하고 살목지로 향한다. 이 과정에서 살목지 주변에 쌓아 올려진 돌탑이 저주와 관련 있다는 단서를 얻는다. 살목지 주변에 사는 노파(전소현)가 수인 피디 일행에게 돌탑을 쌓으라 권한 것도 일종의 저주를 위한 의식이었던 것. 살목지에 기태가 도착했을 무렵엔 이미 5명 중 두 명이 희생당한 상태였고, 이후 수인을 제외한 나머지 두 명 또한 귀신에 홀려 자동차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기태는 수인과 함께 살목지를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필사적이지만, 수인 또한 교식으로 분한 귀신에 홀려 물에 빠지고 만다. 수인을 구하기 위해 망설임 없이 물속으로 뛰어든 기태. 순간 그의 눈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진다. 수의를 입힌 듯한 시신들과 봉분들이 저수지 바닥을 빽빽하게 채우고 있는 장면이다. 이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드는 데 가장 큰 동력이 된 장면"이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초반에 대사로 살목지를 설명하기도 했지만, 이 장면 하나로 영화의 세계관을 딱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너희는 이곳을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다'라는 압도적인 위압감과 공포감을 주고 싶었다. 동시에 '코스믹 호러'(광활한 우주의 느낌) 같은 장면을 보이고픈 욕심도 있었다. 기획 때부터 <살목지>라는 영화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을 만들겠다고 되뇌었던 기억이 있다."

이 감독은 "체험형 영화"임을 강조했다. 그는 관객이 닫힌 공간의 큰 스크린에서 온전한 공포감을 느끼도록 "다양한 시점숏과 좁은 화각을 사용했다"며 "조명 사용을 최소화해 먹색을 표현하려 했다"고 강조했다. 검은색에 가까운 먹색 또한 일반 LED 화면이나 TV 모니터로는 완벽하게 구현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해당 수중 촬영은 모두 실제 크기에 준하는 세트장에서 진행됐다고 한다. 이 감독은 "총 41회차 촬영 중 2회차를 거기에 투자했는데 리허설도 많이 해야 했고, 이종원 배우께서 너무 고생하셨다"며 말을 이었다.

"동선과 수중 액션을 미리 정해놓고 딱 필요한 컷만 찍고 수면 위로 올라오는 식으로 진행했다. 다른 장면을 찍는 동안 종원 배우님이 세트장에서 촬영한 영상을 틈틈이 보내왔고, 그걸 확인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아꼈던 것 같다. 영화에 나오는 시체 모형도 다 1대1의 크기다.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게 중요했다. 후반 작업 색 보정에서도 최대한 어둡고 까맣게 해달라 요청했지."

"공포영화 장르? 제약이 적고 자유롭다는 게 매력"
 영화 <살목지>를 연출한 이상민 감독.
ⓒ 쇼박스
이 감독에겐 이런 공포 장르가 낯설지 않다. 지난 2월 개봉한 옴니버스 영화 <귀신 부르는 앱: 영>, 서울독립영화제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영된 단편 <함진아비>(2023) 등 최근 그의 작품이 모두 공포영화에 속한다. 1995년생인 그를 두고 '한국 공포영화의 기대주'라 표현할 수 있을 법하다. 여기에 대해 "사실 제가 겁이 엄청 많다"는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지금까지도 머리 감을 때 절대 눈을 감지 않는다. 자꾸 귀신이 상상되거든. 샤워할 때도 꼭 문을 닫은 채로 한다. 아주 더운 여름이 아니라면 방문도 꼭 닫고 다닌다. 의자도 절대 빼놓지 않고, 노트북 모니터도 무조건 닫고 잔다. 혹시나 귀신이 볼까 무섭다. 겁이 있다 보니까 무서운 심리를 더 잘 알고, 그만큼 공포 장르에 특화된 게 아닐까 싶다(웃음).

표현의 제약이 사라진다는 게 공포 장르의 매력 같다. 좀 더 자유로울 수 있더라. 기괴한 상상을 담기에도 좋고, 인물의 감정과 심리를 표현할 때도 훨씬 편하더라. 그리고 제가 무서운 꿈을 많이 꾸기도 하고. 최근엔 침착맨(웹툰 작가 이말년의 유튜브 활동명-기자 주)과 함께 아파트 뒷산에 오르는 꿈을 꿨다. 거기에 분지가 있는데 그곳에 흰옷 입은 사람들이 모여있더라. 본능적으로 절대 그들에게 걸리면 안 되겠다 싶었는데 침착맨이 소리를 내는 바람에 한참을 도망 다녔다."

인터뷰 중 이 감독은 실제 지명을 영화 제목으로 삼은 데에 대한 부담감을 털어놨다. 한국 공포영화 흥행 3위인 정범식 감독의 <곤지암>, 그리고 공포로 분류되진 않지만 기괴한 에너지가 가득한 나홍진 감독의 <곡성> 등의 선례 때문이었다.

"살목지 인근 주민분들에게 피해가 갈까 걱정이 있었다. 그래서 개봉 후에도 언급을 최대한 자제했다. 그리고 살목지라는 지명 유래가 화살나무라는 등 여러 설이 있는데, 우린 아예 다른 한자인 '죽일 살(殺)'과 '나무 목(木)' 자를 썼다. 생사를 넘나드는 일종의 가상의 공간으로 접근한 것이다."

끝으로 이상민 감독은 "수중 촬영 경험이 없는 신인 감독 입장에서 김성안 촬영감독님의 존재는 큰 힘이었다"며 "세트에 물을 넣기 전 결정해야 하는 것들과 예상되는 변수들을 알려주셨다. 다른 촬영에서도 감독님 덕에 시간을 많이 아낄 수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 '그 장면, 이 사람 - 영화 살목지②'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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