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소는 어디에 서 있는가? 20년 만에 돌아온 숙제 [소셜 코리아]

김새롬 2026. 5. 21.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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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코리아] 영국과 다른 하류 접근의 한국

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당대의 지성과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말>

[김새롬]

 3월 5일 이스란 보건복지부 1차관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지역사회 통합돌봄 추진 로드맵을 발표하고 있다.
ⓒ 보건복지부
작년 가을, 통합돌봄 정책 시행을 앞두고 보건의 역할을 묻는 인터뷰에서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지금의 고민과 우려가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 시행을 앞두었던 때와 무척 닮았다"는 이야기였다.
장기요양보험은 노인의 요양과 돌봄을 지원해 존엄하게 늙어가는 일을 돕는 제도로 도입됐다. 도입 당시 보건소는 장기요양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야 할 조직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서비스 공급은 민간기관이, 장기요양등급 판정은 건강보험공단이 맡게 되면서 보건소는 결과적으로 장기요양과 별로 상관없는 기관이 되었다. 올해 3월 통합돌봄이 전국적으로 시작된 지금, 이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요양·돌봄 제도의 확장에도 보건소의 역할이 별달리 늘어날 것 같지 않다는 우려가 많다.
 2026년 지역사회 통합돌봄 추진 로드맵에서 제시한 서비스의 목록. 보건소는 보건의료와 건강관리에 영역에 포함된 서비스 일부를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 보건복지부
지난 3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지역사회 통합돌봄 추진 로드맵'을 살펴보면, 통합돌봄에서 보건소의 역할은 결코 가볍지 않다. 방문건강관리와 퇴원환자 지원처럼 보건소가 제공해 온 서비스가 통합돌봄의 핵심 구성요소로 포함되어 있고, 주로 민간에 의존하는 의료서비스를 엮어낼 책임도 보건소에 있기 때문이다.

새로 추가된 것도 있다. 정부는 재택의료를 담당할 민간의료기관에 간호사·사회복지사 등의 인력을 지원하는 '협업형 모형'을 만들고, 지자체별로 재택의료센터를 1개 이상 지정하도록 밀어 붙였다. 그 결과 전국 229개 시군구에 총 422개소의 장기요양 재택의료센터가 확대됐고, 그 중에 19개 보건소와 12개 보건의료원이 재택의료서비스를 직접 제공하게 되었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지 않다. 보건복지부는 올해부터 사업 성과지표를 재택의료센터 이용자 수에서 센터 수로 바꾼다고 한다. 재택의료가 실제로 얼마나 확산될지는 더 두고 볼 일이지만, 재택의료가 실질적으로 개선되길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역필수에는 무려 1조 1000억 원 넘는 돈이 움직이는데 반해, 통합돌봄 예산은 그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이라는 점도 의구심을 키운다.

하류 접근의 한국과 상류 접근의 영국 돌봄

통합돌봄이 지나치게 개인에 초점을 맞춘다는 비판도 있다. 보건 전문가들은 현재의 통합돌봄이 요양병원 입원 가능성이 크거나 의료서비스가 많이 필요한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는 '하류 접근'(downstream approach)에 머문다고 지적한다. 이미 문제가 발생한 개인에게 자원을 투입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미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내는' 사후적인 일에 그친다는 것이다. 현재의 통합돌봄이 장기요양 수급자와 퇴원환자, 장애인 등 고위험군 중심으로 짜여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비판은 근거가 있다.

반면 보건이 오랫동안 강조해 온 것은 '상류 접근'(upstream approach)이다. 입원하기 전에 왜 입원하게 되는지를 묻고, 그 이유를 만든 조건을 바꾸려는 일이다. 돌봄이 필요해진 뒤가 아니라, 돌봄이 덜 필요하도록 지역사회의 조건을 조성하는 일이 보건의 목표다. 이를 위해 통합돌봄에서 말하는 영양이나 주거를 넘어 노동, 관계, 환경에 이르는 건강을 결정짓는 더 넓은 층위에 개입해 지역사회 전체의 건강을 바꾸는 걸 목표로 삼아야 한다.

하지만 보건소 역시 상류 접근을 취해왔다고 보기 어렵다. 보건소는 다양한 사업을 수행하지만, 보건소 사업에 참여하는 주민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 지역사회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상호돌봄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주민참여형 사업을 확대해야 한다는 오래 묵은 고민이 있다. 그러나 이를 실제로 가능하게 할 자원과 역량이 충분치 않다.
 영국의 사회적 처방 연계 담당자, 케어 코디네이터, 건강 및 웰빙 코치가 한 사람을 중심으로 팀으로 협력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 영국 국민건강서비스(NHS)
반면, 영국의 사례는 이 방향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국의 일차의료기관은 경제적 박탈과 사회적 고립으로 건강을 해친 사람들에게 약을 처방하듯 동네 합창단이나 공동체 텃밭, 자원봉사 모임을 처방하는 '사회적 처방'(social prescribing)을 내린다. 주민과 지역사회 자원을 이어주는 링크워커(link worker)가 같이 일하면서 환자의 사정을 듣고 적절한 사람과 모임에 연결한다. 의료·복지·지역자원이 각각의 담당부서로 흩어지지 않고 한 사람의 삶을 중심으로 엮이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문제는 이런 역할을 맡을 역량과 전문성을 갖춘 주체가 한국에는 없다는 사실이다. 지금의 보건소는 중앙정부가 내려주는 사업을 수행하기에도 버겁다. 이런 보건소가 상호돌봄의 공동체를 키우고 지지하는 역할을 맡을 수 있을까.

20년 만에 돌아온 숙제를 할 시간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 시행을 앞두고 보건의 역할 논의에 두 가지 제안이 있었다. 하나는 제도의 내실 있는 정착을 위해 지역사회 거주 고령자의 건강 상태에 따라 적합한 보건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구상이었고, 다른 하나는 농어촌 재가서비스를 확충하기 위해 보건지소와 보건진료소를 활용해 포괄적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것이었다. 당시 미완으로 남았던 보건의료와 요양·돌봄의 연계 과제가 20년이 지난 지금, 통합돌봄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우리 앞에 놓였다.

이제는 모든 주체가 책임 있는 역할을 다해야 할 때다. 중앙정부는 충분한 재정과 제도적 기반을 확립하고, 지자체는 통합돌봄을 위한 지역 인프라를 구축하며, 보건소는 지역주민의 건강을 책임지고 돌봐야 한다. 아직 의료가 필요하지 않은 노인과 장애인의 건강한 일상을 지키는 보건 사업이 확대되어야 하고, 공중보건의사조차 없어진 농어촌 의료취약지에는 더 큰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지역의사제 인력이 본격적으로 배출되기까지 고난의 10년 동안 일차의료가 작동하고 재택의료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지자체와 보건소가 적극 움직여야 한다.

20년 만에 돌아온 숙제를 이번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면, 우리는 통합돌봄의 안착이 아니라 '70세 사망법안, 가결'의 세계를 부러워하게 될지도 모른다.
 김새롬 인제대 의대 교수
ⓒ 본인
필자 소개 : 김새롬은 예방의학 전문의로서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일하고 있으며 소셜 코리아 편집위원입니다. 관심 영역은 건강과 보건의료에서 시민참여와 공공성, 젠더와 건강, 건강 불평등입니다. <우리의 상처가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 <몸은 사회를 기록한다>의 공저에 참여했고, 팀 블로그 'Health Socialist Club'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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