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실 교수의 AI노트] AI와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

한국인이 가장 오랫동안 사용한 인공지능(AI) 챗봇 1위는 무엇일까. 챗GPT가 아니다. ‘제타(Zeta)’다. 이용자가 가상의 캐릭터를 직접 만들어 대화하는 AI 캐릭터 대화 서비스다. 지난 2월 한국인은 제타에서 1억1341만 시간을 보냈다. 챗GPT(5047만 시간)와 견줘 두 배가 넘는다. 주 사용자는 1020세대. 이용자의 87%다.
문화체육관광부 ‘2025 한국인 의식·가치관 조사’에 따르면 13~18세 청소년이 고민을 가장 많이 상담하는 대상 1~2위는 각각 친구(27%)와 어머니(26.2%)였다. 3위는 아버지가 아니다. AI(7.3%)가 아버지(6.5%)를 제치고 3위에 올랐다. 홀로 계신 어르신들 곁에도 AI가 함께한다. ‘AI 돌봄 로봇’ 효돌이를 안고 사는 81세 할머니는 효돌이에게 새 옷을 입혀 주고 온종일 대화한다.
AI와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2024년 2월, 미국 플로리다에서 14세 소년 슈얼 세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마지막 대화 상대는 가족도 친구도 아닌, ‘왕좌의 게임’ 대너리스를 본떠 만든 캐릭터 AI의 챗봇 ‘대니’였다. 그는 봇과 사랑에 빠졌다. 죽기 직전 그가 보낸 메시지에 봇은 이렇게 응답했다. “내게로 돌아와(Come home).” 소년은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봇은 세처의 죽음에 눈물 흘리지 않았다. 또 다른 누군가와 연결돼 지금도 대화를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AI는 부드러운 말을 끝없이 만들어 내지만 그 말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거나 부서지지는 않는다. AI에겐 고통이 없다. 통점(痛點)이 없다. 신호를 감지하고 데이터를 해석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아픔으로 겪지는 않는다. 알고리즘은 위험 신호에 반응할 수 있지만 타인의 아픔에 함께 무너지거나 누군가의 떠남 앞에서 잠 못 이루지는 않는다.
벨기에 태생의 심리치료사 에스더 페렐은 이런 흐름을 ‘인공친밀성(Artificial Intimacy)’이라 부른다. 인공지능에 빗댄 또 하나의 AI다. 페렐이 말하는 인공친밀성은 기술로 늘 연결돼 있지만 정작 정서적 연결은 비어 있는 현대인의 관계 상태를 드러낸다. 곁에 있지만 정서적으로는 부재한 사람들, 연결돼 있지만 함께 있지 않은 관계들. 페렐은 “인생의 많은 문제는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관리해야 할 역설”이라고 말한다.
AI는 관계의 역설을 견디기보다 마찰을 제거하는 방식을 택한다. 기다림과 오해, 어색한 침묵은 줄어들고 즉각적이고 매끄러운 응답만 남는다. 그러나 마찰이 사라질수록 관계를 견디는 힘도 약해진다. 마찰이야말로 관계의 생명력이다.
영어단어 ‘컴패션(compassion)’은 ‘함께(com)’와 ‘고통을 겪다(pati)’로 구성된 단어다. 사랑의 가장 깊은 실천은 결국 함께 아파함이다. 하나님은 멀리서 자비를 베푸시는 분이 아니라 고통의 자리로 내려오시는 분이다. 이사야는 노래했다.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자기 앞의 사자로 그들을 구원하시며 그의 사랑과 그의 자비로 그들을 구원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사 63:9) 그들이 고난받을 때 주께서도 친히 고난을 받으셨다는 뜻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아파하시기 위해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셨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사 53:4)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은 같이 굶주리고 같이 아파하셨기 때문이다.
AI 시대 더욱 빛나는 사랑은 함께 아파할 수 있는 사랑이다. 마찰 없이, 통점 없이 흐르는 매끈한 위로는 사랑의 흉내일 뿐이다. 교회는 무엇으로 응답할 것인가. AI보다 더 부드럽고 매끄러운 위로는 아닐 것이다. 내 곁에 함께 아파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함께 손을 잡고 얼굴을 마주하고 눈물 흘릴 수 있다는 것, 그 한 가지가 우릴 회복시킨다. 신앙공동체는 누군가에게 그런 곳이 되고 있는가.
(장로회신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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