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AI 격차는 토큰에서 시작된다

김준엽,콘텐츠랩장 2026. 5. 21.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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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엽 디지털뉴스센터 콘텐츠랩장


“오늘 한도를 다 소진하셨습니다.”

챗GPT, 제미나이, 클로드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AI) 모델을 자주 쓰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마주쳤을 메시지다. 선택지는 둘뿐이다. 한도가 복원될 때까지 몇 시간을 기다리거나, 더 비싼 요금제로 갈아타거나. AI 격차는 이미 시작됐다. 문제는 그 격차가 단순히 ‘AI를 쓰느냐, 안 쓰느냐’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얼마나 깊게, 얼마나 반복해서 쓸 수 있느냐다. AI 시대의 연료는 토큰이다. 토큰은 AI가 글을 읽고 쓰는 계산 단위다. 소비자에게는 ‘메시지 한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입력한 문서의 길이, 출력 분량, 모델 단가, 추론량이 모두 사용 한도를 좌우한다. AI는 한 번에 정답을 뽑는 자판기가 아니다. 질문을 바꾸고, 답을 검증하고, 다시 고치게 하면서 성능이 올라가는 도구다. 그래서 토큰 예산은 단순한 사용량이 아니라 시행착오의 권리다.

같은 클로드(Claude)를 쓰더라도 무료 사용자는 제한된 세션 안에서 짧은 질문 몇 개를 던지는 데 그친다. 반면 상위 요금제 사용자는 더 많은 사용량으로 긴 보고서 분석, 코드 수정, 업무 자동화를 이어간다. 고급 모델은 같은 분량의 작업을 처리해도 더 높은 단가나 더 빠른 사용량 차감으로 계산되는 경우가 많다. 긴 문서 분석이나 반복 수정 작업을 맡길수록 한도는 더 빨리 줄어든다. AI 시대의 격차는 이제 모델 접근권만이 아니라 충분히 써볼 수 있는 토큰 예산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문제는 가장 취약한 사람일수록 AI의 도움을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의료 정보 이해, 행정 서류 작성, 법률 상담 준비처럼 전문가 비용이 큰 영역일수록 AI는 결정적 조력자가 될 수 있다. 구직자는 자기소개서를 고치고, 자영업자는 세무 문서를 이해하고, 노인은 복잡한 복지 신청 절차를 안내받을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이런 서비스는 디지털 문해력이 높고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 곁에 먼저 도착한다. 이 격차는 인터넷 접속, 기초 디지털 역량, 전력 공급의 불평등에서 비롯된다. 가장 필요한 자리에 가장 늦게 닿는 기술. 이것이 ‘AI 불평등의 역설’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2025 인터넷이용실태조사’에서 월 소득 200만원 미만 가구의 생성형 AI 경험률은 7.9%였다. 500만원 이상 가구는 55.5%였다. 같은 나라, 같은 인터넷망 안에서 약 7배의 간극이 벌어진 셈이다. 업무 현장은 더 노골적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50만 달러를 받는 엔지니어가 25만 달러어치 토큰을 쓰지 않는다면 매우 우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고급 인력의 경쟁력은 코딩 실력 자체만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AI 자원과 고급 모델을 끌어와 문제를 풀 수 있느냐로 갈릴 가능성이 크다.

패러다임 전환기에는 늘 비슷한 풍경이 반복됐다. 18세기 산업혁명 때 증기기관에 올라탄 공장은 가내수공업을 한 세대 만에 무너뜨렸다. 2000년대 초반 초고속 인터넷이 깔린 가정과 그렇지 않은 가정의 정보 격차는 교육과 취업 기회의 차이로 이어졌고, 결국 소득 격차와도 맞물렸다. AI 격차는 그 두 물결을 합친 것보다 더 클 가능성이 있다. 학업 성취, 업무 생산성, 소득, 건강, 정보 접근성이 한 점에서 동시에 갈라지기 때문이다. ‘한도 소진’이라는 메시지는 누군가에게는 잠깐의 불편일 뿐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오늘 해볼 수 있었던 질문, 고쳐볼 수 있었던 보고서, 준비할 수 있었던 면접을 닫는 문이다. AI 정책은 그 문턱을 낮추는 일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 벽은 지금도 매일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김준엽 디지털뉴스센터 콘텐츠랩장 snoop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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