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양당 카르텔 깨야”…‘밑바닥 개혁’ 촉구한 정치개혁 토론회
극단적 진영 갈등과 정치 교착 상태를 끝내기 위해 거대 양당의 기득권 체제와 중앙 집중형 정치를 밑바닥부터 고쳐야 한다는 학계의 긴급 처방이 나왔다. 성균관대학교 미래정책연구원, 한국정치학회, 중앙일보는 20일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한국의 정치 제도 진단과 개혁 방안’ 정책 토론회를 공동 개최했다. 토론회는 의회, 정당, 선거 제도 등 3개의 핵심 세션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성재호 미래정책연구원장은 개회사를 통해 “최근 여론조사에서 정치 불신이 해소되지 않는 건 역설적으로 국민이 깊이 있는 제도 개혁을 바란다는 증표”라며 “한국 정치에 미래 세대를 위한 개혁의 불꽃을 살려야 한다”고 했다.

특별 세션인 ‘지방의회와 지방분권’ 발제자로 나선 윤왕희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지방의회학회장)는 “1만명가량이 입후보해 4000명이 넘는 당선자가 나오는 지방선거는 아래로부터 정치를 재구성하는 본래 의미의 선거”라며 “단체장 우위의 체제를 깨기 위해 별도의 ‘지방의회법’ 제정이 시급하다. 지방 정치가 중앙 정치의 대리전이 되지 않도록 시·도 단위의 ‘지역 정당’을 허용해야 한다”고 했다.
이후 토론회는 의회 제도 논의로 이어졌다. 김진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연수원 교수는 “속기록도 남지 않는 ‘소소위’ 예산 심사가 투명성을 훼손한다”며 정부와 국회가 사전에 재정 방향을 합의하는 ‘사전예산제도’ 도입을 제안했다. 한은수 건국대 시민정치연구소 전임연구원은 14대 국회 4년간 321건에 불과하던 의원 발의 법안이 21대 국회에서 2만건 넘게 급증한 걸 거론하며 국회 법안 심사의 한계를 지적했다. 한 연구원은 그러면서 “외부 역량을 활용하는 ‘디지털 시민 입법 플랫폼’ 구축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정당 제도 세션에선 거대 양당 ‘카르텔’과 중앙집권적 공천 시스템이 도마 위에 올랐다. 조영호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당원 수는 크게 늘었지만, 의사 결정은 여전히 중앙집중적”이라며 “반복되는 전략 공천과 외부 인재 영입이 오히려 묵묵히 일해온 지역 당원 조직을 와해시키고 있다”고 했다. 이어 “정치권이 대화와 타협을 경시한 채 검찰 등을 동원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법화에 중독돼 있다”고 했다.
장한일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그간의 개혁이 청년·여성 등 겉으로 보이는 인구통계학적 안배에만 치우쳤다”며 “현실 정치에선 타협과 관용을 갖춘 인재가 배제되고, 권력 지향적 성향이나 도덕성이 낮은 인물이 유입되는 역선택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국민 참여 경선 등 단순 개방형 공천 제도가 한계에 직면했단 지적도 나왔다. 박현석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민 참여 경선이 강성 당원만 과대 대표하게 해 안전 지역구일수록 극단적 후보를 양산한다”며 “중앙당 권한을 축소하고 시·도당에 실질적 공천권을 떼어주는 지역 분권형 공천으로 전환해야 의회 양극화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고 했다.
선거 제도 세션에선 표의 등가성을 높일 다각적인 대안이 모색됐다. 손정욱 가천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는 “다당제와 합의제 민주주의로 나아가려면 중대선거구제가 아닌 비례대표제 확대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중대선거구제만으로는 표심이 왜곡되는 비비례성과 거대 양당 우위 구조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허석재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매번 반복되는 선거구 늑장 획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거구획정위원회의 권한을 강화하거나 획정 주기를 선거와 완전히 분리할 것을 제안했다. 허 조사관은 “한국은 인구 대비 국회의원 수가 적어 ‘국민과 거리가 먼 의회’가 됐다”며 “인구 밀집도에 따라 도 지역은 소선거구제, 시 지역은 중대선거구제를 적용하는 ‘단층 복합선거구제(지역구 기반 비례제)’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낡은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최재동 충북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20년째 묶여 있는 후원회 모금 한도를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며 “딥페이크·인공지능(AI) 활용을 포괄적으로 차단하는 현행 공직선거법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마지막 종합 토론에서 강우창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팬덤 정치와 여론조사에 휘둘리는 공천 시스템이 극단적 성향의 인물들에게 유리한 구조를 만들었다”며 “온건하고 합리적인 의원이 당선될 수 있도록 공천 방식을 개편해야 과반에 달하는 중도 유권자를 끌어안을 수 있다”고 했다.
최민우 중앙일보 정치외교국제 부국장은 “한국 사회는 도덕적 우월감을 확인하기 위해 끊임없이 ‘빌런(악당)’을 만들어내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습성이 정치권에서 상대를 악마화하는 극단적인 팬덤 정치와 진영 양극화를 유발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누군가를 빌런으로 만들어 비난하기를 원하는 한 극단적 진영화는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마무리 발언에서 “정당 문턱을 낮추고 개방한 결과 극단적 세력이 당내 언론과 공천을 장악하고 대표로 선출되는 악순환이 나타났다”며 “다수의 중도 유권자가 피로감을 느끼는데 현실 정치에서 작은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실천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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