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늙을결심] 황혼이혼 고민했던 부모님의 결혼 50주년을 보며 든 생각
잘 사는 것은 웰빙, 잘 죽는 것은 웰다잉, 잘 늙어가는 것은 웰에이징이다. 100세 시대, 삶에서 가장 긴 구간을 웰에이징하기 위한 마음은 모두에게 중요하다. 인생의 중반부에 들어선 지금, 후반부를 웰에이징하기 위한 결심들을 소개한다. <편집자말>
[송유정 기자]
"정 하나로 살아온 세월, 꿈같이 흘러간 지금. 당신의 곱던 얼굴 고운 눈매엔, 어느새 주름이 늘고 ~."
1994년에 발매된 <부부>라는 이 노래 가사에 공감하는 부부가 얼마나 될까, 문득 궁금해진다. 정 하나로 모든 풍파를 견디기에는 구조적으로 어려운 세상이 된 것인지, 사람들의 인내심이 부족해진 탓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2025년 기준 24만 쌍의 부부가 탄생하고 8만 8천 쌍의 부부가 이별한 것을 보면 혼인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이 녹록지 않은 것임은 분명하다.
얼마 전, 어버이날을 앞두고 부모님을 위한 깜짝 파티를 열어드렸다. 두 분의 결혼 5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Since 1976년 5월 2일. 50년을 함께 한 우리. 대단하다, 대단해! 우리 앞으로도 오늘처럼만 살자~"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준비했다. 동생은 "50년째 사랑하는 중, 꽁냥꽁냥"이라는 문구가 들어있는 꽃다발과 케이크를 준비했다. 대부분 둘만의 날이었던 결혼기념일에 딸들의 깜짝 파티가 더해지자 부모님은 기쁨과 감동으로 말을 잇지 못하셨다.
50년을 함께 산 부모님
국가데이터처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25년 전체 이혼의 17.7%가 '혼인지속기간 30년 이상인 부부'로 1위였다. 오랜 결혼 생활을 유지한 60대 이상의 '황혼 이혼'이 크게 늘어난 요즘, 부모님이 50년 동안 혼인관계를 유지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결혼 50주년을 맞이한 비결이 뭐냐는 질문에 아버지는 "한쪽 목소리가 높아지면 다른 쪽이 목소리 낮추면 되는 거야"라고 했고, 어머니는 "미운 정, 고운 정이지 뭐"라고 답했다. 답변이 무색하게도, '사랑' 하나로 퉁치기엔 자식 입장에서 보았던 둘의 관계는 늘 위태로웠다. '배려, 정'으로 포장하기에는 어색한 장면이 많이 담겨있었다. 둘은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웠다.
외식을 나가거나 여행을 가도 마냥 즐거웠던 기억보다는 싸늘했던 공기가 더 많이 떠오른다. 어머니가 집을 나가 며칠 만에 다시 돌아왔던 날, 딸들만 보면 아버지 때문에 힘들다고 하소연하던 어머니, 엄마 기분 안 좋으니 거슬리지 않게 잘 하자던 아버지의 한숨. 부부의 불안함은 자녀에게 고스란히 전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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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머니의 결혼기념일 자랑 사진 결혼기념일마다 아버지가 챙겨주는 선물을 어머니는 매번 자랑한다. |
| ⓒ 송유정 |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낳아 기른다는 공동의 과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갈등과 반목, 화해와 협력의 파도를 끊임없이 타야 한다. 좋았다가 싫었다가, 이해했다가 경멸하기를 반복하면서 부모가 되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는 과정을 함께 걸어간다. 공동경험과 기억이 오래 켜켜이 쌓이고 그것이 또 그들을 함께 가게 한다.
"싸움으로 점철되어 온 관계를 회복하려면 갈등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협력 경험들이 필요하며, 그래야 부부가 다시 함께하는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조 피에르의 <집단망상>에 나오는 이 문장대로, 우리 부모님에게도 협력의 경험과 공동의 기억이 많을 것이다. 건설업을 하는 아버지가 손수 지었던 첫 집에서 지냈던 첫날밤이라든가, IMF로 사업이 실패해 가세가 기울고 우울했던 시기에 만난 첫 손주라든지, 꼬물꼬물 했던 손주들이 자라 대학에 입학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같은 것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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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혼 30주년 기념 파티 결혼 30주년에, 큰딸 집에서 했던 파티에 한복과 양복을 차려 입고 참석한 부모님. |
| ⓒ 송유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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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부부의 공동 경험 사고로 입원했던 아버지의 병실을 지키느라 고단해 보였던 어머니. |
| ⓒ 송유정 |
손발이 불편한 아버지의 수족이 되어 먹이고 씻기고 병원을 쫓아다니느라 고단해진 어머니의 표정이 유난히 밝아 보였던 것은 기분 탓만은 아니었다. 어머니는 잠자리가 불편하다면서도 한사코 집에 가기를 거부하면서 아버지 곁을 지켰다. 그 안에서도 사소한 문제로 투닥거렸지만 "이러다 마흔에 동생 생기는 거 아닌지 몰라?"라는 나의 농담에 즐겁게 웃을 정도로 애틋해 보였다. 그때의 기억이 또 그들을 추동해 50년에 이르게 했을 것이다.
특별하게 보내지 않는 기념일
같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60세 이상의 '황혼 이혼'은 1990년 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다 수준이며 계속 증가하는 추세란다. 노부부가 헤어지는 이유는 뭘까? 인구 고령화와 기대 여명의 증가, 재산 분할로 인한 여성 경제력의 확대, 자녀와 사회의 인식 변화 등 표면적인 이유 말고 그들을 헤어지게 만든 배경은 뭘까?
반대로, 노부부가 헤어지지 않고 계속 함께하는 비결은 뭘까? 헤어지고 싶은 마음보다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단 1%라도 많은 이유, 사랑, 정, 책임감, 자식에 대한 미안함 같은 것 말고 헤어지지 못하는 진짜 원인. 나는 '관계의 창의성'에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싶다.
부부는 그들만의 창의성을 발휘해 행복을 발견하고 불행을 피하기 위해 노력한다. 열정적인 붉은색에서 시작해 따스한 주황을 거쳐 기쁨의 노랑, 편안함의 초록, 신뢰의 파랑, 깊이의 남색, 신비로운 보라 모두를 간직한 무지갯빛이 사랑이라고 한다. 하지만 무지개는 모진 비를 뿌리던 잿빛 먹구름이 지나간 하늘에 비로소 뜬다. 사랑은 시련과 상처를 겪은 후, 그것을 어떻게 우리만의 방식으로 극복할 것인가에 달려있지 않을까.
5월 21일은 부부의 날이다. 남편과 나는 창의적인 방식으로 부부의 날과 결혼기념일을 보낸다. 특별한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이 그것이다. 꽃이나 선물을 전한다거나 외식을 하지도 않는다. 그저 마음속으로 되뇐다. '이날 하루를 기념하기보다는 평소에 잘하자. 365일을 결혼기념일이다, 부부의 날이다 생각하자. 내내 관계에 정성을 다하자'라고.
나와 남편이 우리만의 창의성을 발휘하여 24년을 더 살게 된다면, '결혼 50주년 기념일'은 꼭 챙겨야겠다. 그렇게 열심히 '함께' 나이 들어갈 결심을 해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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