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언론은 왜 안동에서 '에너지전환'을 먼저 보았나

김영근 2026. 5. 20.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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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9-20 한일정상회담] '고향 외교'의 낭만 뒤에 놓인 원유·LNG·공급망 안전망

[김영근 기자]

 2026년 5월 19일 안동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회담 전 악수하고 있다. 자료=일본 외무성 웹사이트 / 사진제공=내각홍보실. URL: https://www.mofa.go.jp/mofaj/a_o/na/kr/pageit_000001_02969.html
ⓒ 일본 내각홍보실
2026년 5월 20일, 일본 현지 보도의 첫 문장은 대체로 비슷했다. 안동, 하회마을, 고향, 만찬보다 앞에 놓인 단어는 원유와 LNG였다. 한국 독자에게 안동 한일 정상회담은 이재명 대통령의 고향에서 열린 셔틀외교, 두 정상이 서로의 고향을 오간 첫 장면으로 기억될 수 있다. 그러나 일본 언론은 그 사진을 조금 다르게 읽었다. 정서의 무대 뒤에 위기관리의 계산서가 놓여 있었다.

일본 외무성은 19일 오후 2시 30분부터 약 105분 동안 열린 회담에서 중동 정세, 인도·태평양 지역 정세, 공급망, 에너지 안보, 조직적 사기 범죄, 북핵 문제 등이 논의됐다고 밝혔다. 특히 중요한 대목은 원유·석유제품·LNG의 상호 융통과 스와프 거래, 인도·태평양 지역 비축 강화를 두 축으로 하는 한일 협력의 출범이다. 정상회담의 성과가 '좋은 분위기'가 아니라 '위기 때 서로 무엇을 빌려줄 수 있는가'라는 문장으로 정리된 셈이다.

하회마을보다 호르무즈를 먼저 본 일본

로이터 일본판은 이번 회담을 '에너지 협력 확대와 안보 관계 강화'로 요약했다. 블룸버그 일본판도 일본은 원유 수입의 약 90% 이상을, 한국은 약 70%를 중동에 의존한다는 점을 짚으며 원유·석유제품·LNG 상호 융통 검토를 앞세웠다. 안동의 전통 가옥보다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 불안이 먼저 보였다는 뜻이다.
'에너지전환(EX)'이란

에너지전환(EX: Energy Transformation)이란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체계를 태양광·풍력·수소 등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구조적 전환을 말한다. 단순한 '친환경 정책'이 아니라, 에너지 생산·저장·소비 전 과정을 동시에 바꾸는 문명사적 전환이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기 이후,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90%를 웃도는 일본에게 EX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됐다. 중앙 집중형 대규모 발전 대신, 지역 분산형 에너지 자립이 안보의 핵심 축으로 떠오른 것이다.

일본 언론이 안동에 주목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안동은 낙후 내륙도시라는 한계를 역전시켜, 햇빛·바람·바이오매스를 지역 자원으로 연결한 분산형 EX 모델을 현실에서 구현해냈다. '과제선진국' 일본이 찾던 답이 교과서가 아닌, 경북의 한 고을에 먼저 와 있었던 셈이다.
TV아사히(テレビ朝日)도 20일 오전 보도에서 두 정상이 호르무즈 해협을 포함한 중동 정세의 진정을 위해 노력하고, 석유제품과 LNG 상호 융통 및 관계 부처의 정책대화 출범에 합의했다고 전했다. 같은 방송은 두 정상이 30초 가까이 굳게 악수한 장면을 보여주면서도, 보도의 무게를 '두 정상의 친밀함'보다 '에너지 공급망의 강인화'에 두었다. 일본 언론이 그렇게 본 것은 당연하다. 일본은 섬나라이고, 한국도 에너지 수급 면에서는 사실상 섬에 가깝다. 원유와 가스가 멈추면 공장은 서고, 물가는 뛰고, 주유소 가격표와 가계 난방비가 함께 흔들린다.
이것이 안동 회담의 첫 번째 결실이다. 양국이 서로 좋아졌다는 말보다, 같은 취약성을 가진 두 나라가 같은 병목을 함께 관리하겠다고 한 점이 더 무겁다. 안전혁명은 재난 뒤에 복구비를 쓰는 일이 아니라, 충격이 오기 전에 막힐 길을 미리 찾는 일이다. 이번 회담의 원유·LNG 협력은 바로 그 미래리스크 관리의 첫 단추로 읽을 수 있다.

정상회담의 성패는 '정책대화'에 달렸다

좋은 정상회담은 박수로 끝나지 않는다. 발표문이 긴 회담도 아니다. 어느 부처가 책임을 맡는지, 어떤 정보가 공유되는지, 위기 때 어느 저장시설과 항만과 선박을 활용할지 정해져야 한다. 일본 경제산업성(経済産業省)은 5월 18일 아카자와 경제산업상(赤澤経済産業大臣)과 한국 산업통상부 김정관 장관이 온라인 회담을 열었고, 이튿날 안동 정상회담의 성과로 에너지 안보와 공급망 강인화에 관한 공동 보도자료를 냈다고 밝혔다. 담당 분야도 원유·석유제품, LNG, 아시아 전체 협력, 공급망 강인화로 나뉘어 있었다.

여기서 일본의 실패학이 보인다. 일본은 위기가 올 때마다 매뉴얼을 다시 썼다.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센카쿠 갈등 국면의 희토류 불안, 그리고 미중 갈등 속 반도체 공급망 재편을 거치며 배운 것은 하나였다. '정신력'으로는 공급망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이다. 비축, 보험, 금융, 항만, 정련·가공, 민관 협의체가 묶여야 위기가 왔을 때 움직인다.

일본 정부가 4월 발표한 '파워 아시아(Power Asia)'도 같은 맥락이다. 경제산업성 자료에 따르면 이 구상은 아시아의 원유·석유제품 조달과 공급망 유지를 위한 긴급 대응, 원유 비축일수 확대, 저장탱크 건설·이용, 핵심광물 확보 등을 포함하며 총 100억 달러 규모의 금융 협력을 내세운다. 안동 회담은 이 일본식 아시아 에너지 구상에 한국을 단순 참여자가 아니라 공동 설계 파트너로 끌어들이는 장면이었다.

일본 전문가가 던진 불편한 질문

20일 오전 일본 문화방송(文化放送) '오하요 데라짱(おはよう寺ちゃん)'에서는 경제분석가 모리나가 고헤이(森永康平)가 이번 합의를 전략적으로 타당하다고 평가하면서도 한 가지 불안을 꺼냈다. 한국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일 기조가 흔들릴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어렵게 만든 틀의 지속성이 약해진다는 지적이었다. 일본 보수층의 오래된 의심이 섞인 말이지만, 한국이 그냥 흘려들을 문제는 아니다.

모리나가는 양국이 같은 약점을 가지고 있으므로 협력 자체는 평가할 만하다고 했다. 동시에 먼저 해야 할 일은 각자 수입원을 다각화하고, 필요하면 노하우와 네트워크를 공유해 양쪽의 강인성을 높인 뒤 상호 융통 체계를 만드는 것이라고 봤다. 맞는 말이다. 서로 부족한 물자를 막연히 나누겠다는 약속만으로는 부족하다. 누가 얼마를, 어떤 가격과 절차로, 어느 시점에, 어떤 법적 근거로 제공할 것인지까지 내려가야 한다.

정상의 합의가 장관급 대화로, 장관급 대화가 기업 계약으로, 기업 계약이 비축·운송·보험·통관 절차로 이어져야 한다. 그래야 다음 정부가 들어서도 쉽게 끊기 어려운 안전사회 인프라가 된다. 제도전환은 선언이 아니라 끊기 어려운 연결망을 만드는 일이다.

희미해지는 미중 'G2' 그림자 속의 오월동주

TV아사히(テレビ朝日) 보도에서 더 눈에 띈 대목은 전문가의 해석이었다. 국제경영학·국제관계학을 전공하며 한일 경제관계를 연구하는 김미덕(金美徳) 다마대학교(多摩大学) 교수는 미중 정상회담 이후 한일 접근은 지금까지의 외교와 질적으로 달라질 수 있으며, 북동아시아에서 한일의 존재감 자체가 미중에 대한 견제가 될 수 있다고 봤다. 또 한일 관계를 '오월동주'에 비유했다. 서로 완전히 같은 생각을 해서가 아니라, 경제적 이익과 국익을 위해 같은 배에 탄다는 뜻이다.

이 표현은 안동 회담을 설명하는 데 꽤 정확하다. 한일은 역사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독도, 강제동원, 오염수, 수출규제의 기억도 남아 있다. 그럼에도 중동 에너지 불안, 미중 거래 질서, 중국발 공급망 압력, 북핵 문제 앞에서 두 나라는 같은 배에 올라타고 있다. 배가 흔들리면 서로를 탓하기 전에 물이 새는 곳부터 막아야 한다.

다만 한국이 조심해야 할 지점도 있다. 일본 보도는 자연스럽게 한미일 협력과 대중 견제의 구도로 회담을 읽는다. 그러나 한국 산업은 중국과 훨씬 촘촘하게 얽혀 있다. 배터리 소재, 반도체 장비와 부품, 디스플레이, 소비재 시장, 물류망까지 중국 변수는 한국 경제의 일상에 들어와 있다. 따라서 한국의 전략은 단순한 탈중국 구호가 아니라 중국 의존 리스크를 줄이는 복수의 선택지 확보여야 한다. 한일 협력은 반중 전선이 아니라 위기 때 선택지를 넓히는 장치로 설계되어야 한다.

작은 의제가 더 오래 간다

이번 회담의 일본 외무성 발표에는 조직적 사기 범죄 대응을 위한 한일 협력 문서도 포함됐다. 보이스피싱, 온라인 투자사기, 개인정보 탈취는 더 이상 경찰서 안의 사건이 아니다. 국경을 넘어 자금이 이동하고, 서버가 숨고, 피해자는 휴대전화 화면 앞에서 무너진다. 외교가 시민의 삶과 만나는 지점이 바로 이런 곳이다. 국민 보호는 거창한 단어가 아니라 통장 잔고와 신분증, 휴대전화 알림을 지키는 일이다.
 2026년 5월 19일 안동 한일 정상회담 확대 회담 장면. 원유·LNG 협력, 공급망 강인화, 조직적 사기 범죄 대응, 조세이 탄광 DNA 감정 등이 논의됐다. 자료=일본 외무성 웹사이트 URL: https://www.mofa.go.jp/mofaj/a_o/na/kr/pageit_000001_02969.html
ⓒ 일본 내각홍보실
인상 깊은 사진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속가능한 제도

안동 '지방(고향)외교'의 결실을 묻는다면 답은 단순하다. 두 정상이 다정했는가가 아니라, 위기 때 작동할 절차를 남겼는가다. 일본 언론은 안동의 풍경보다 그 절차를 먼저 보았다. 원유를 서로 융통할 수 있는가. LNG 수급 정보를 나눌 수 있는가. 아시아 자원 공급망이 흔들릴 때 함께 대응할 수 있는가 등.

안동의 밤은 하루짜리 뉴스다. 그러나 원유 탱크와 LNG 계약, 핵심광물 조달, 공동 비축, 사기 범죄 대응망 등은 오래 남는 절차다. '협력 의제 논의, 결실 기대'라는 말이 빈 문장이 되지 않으려면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산업부와 경제산업성의 실무표, 기업의 장기계약, 금융·보험 장치, 담당자의 이름, 예산과 일정이 나와야 한다.

뉴스의 생명은 현재성에 있다. 일본 언론이 보여준 현재성은 분명했다. 안동은 더 이상 전통의 공간만이 아니었다. 그곳은 한일이 석유와 가스, 공급망과 안보, 과거사와 국민 보호를 한 테이블에 올려놓은 시험대였다. 안전혁명은 결국 이런 장면에서 시작된다. 사진이 지나간 뒤에도 작동하는 제도를 남기는 것, 그것이 이번 안동 셔틀외교가 결실로 가는 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파인에도 실립니다.글쓴이 김영근은 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 겸 인문학과동아시아문화산업과정 교수이며, 사회재난안전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도쿄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 박사를 취득한 후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및 계명대학교 일본학과 조교수를 역임하였다. "AI시대의 안전경제학: 글로벌 불확실성 및 위기관리" 및 "북핵 리스크 관리와 국제안보레짐의 변용", 『포스트 제국주의』(공저), 『한일관계사 1965-2015. II: 경제』(공저), 『한일 관계의 긴장과 화해』(편저) 등 다수의 논문과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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