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한국사를 가르치는 엄마가 본 스타벅스 논란
[김수나 기자]
5월 18일. 어제는 남편 생일이었다.
남편과 처음 연애할 때, 우리는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남편은 미국에, 나는 한국에 있었다. 어느 날 카카오스토리에서 남편 생일이 5월 18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 나는 이메일 말미에 이렇게 썼다. "5.18 민주화운동이 생각난 건, 제 직업병이겠죠? :) 민주주의 만세. (ㅎㅎㅎ)" 농담처럼 썼지만, 농담만은 아니었다. 나는 역사를 가르치는 사람이었고, 그날이 어떤 날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날짜였으니까.
그 남편의 생일이 어제였다. 미국 스타벅스는 생일에 무료 음료를 한 잔 준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켄터키 어느 동네 스타벅스에 갔다. 아이들은 프라푸치노를 고르느라 한참 고민했고, 나는 자리에 앉아 휴대전화를 들었다. 특별한 생각 없이 뉴스 피드를 내리다 멈췄다.
'탱크데이. 책상에 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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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벅스 탱크데이. 한국 스타벅스 앱에서 출시한 탱크데이 안내문 |
| ⓒ 스타벅스 |
나는 한국에서 역사 교육을 전공했다. 졸업 후 아이들에게 역사를 가르쳤다. 역사를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바꾸는지, 그 일을 하면서 조금씩 알아갔다. 지금은 미국에 살고 있다. 내 아이들은 학교에서 한국 역사를 배우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가르친다. 한국어를 가르치듯, 역사도 가르친다.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이 아이들이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가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5·18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일이다. 전두환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에게 계엄군을 투입했다. 공수부대원들은 시위대뿐 아니라 아무 관계없는 시민들에게도 총을 겨누고 곤봉을 휘둘렀다. 장갑차와 탱크가 광주 시내 거리를 누볐다. 탱크 앞에 맨몸으로 선 시민들이 있었다. 시민들은 스스로 시민군을 조직해 맞섰다.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이 전남도청을 최종 진압하며 열흘간의 항쟁은 끝났다. 공식 집계된 사망자만 165명, 행방불명자 65명이다. 올해로 46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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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7년 1월 19일 동아일보 1면 ?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보도 1987년 1월 14일 서울대생 박종철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으로 사망한 사건을 보도한 동아일보 1면. 헤드라인은 ‘물고문도중 질식사’이며, 사건 발생 5일 만에 물고문 사실이 공식 시인됐다. 원본게재일 : 1987년 1월 19일 동아일보 |
| ⓒ 동아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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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켄터키 집에서 아이들에게 한국 근현대사를 가르치는 교재 미국 켄터키 루이빌 자택에서 아이들에게 한국 역사를 가르치는 데 사용하는 책. 김인기,조왕호 지음 ‘청소년을 위한 한국 근현대사’. 오른쪽 페이지는 ‘6월 민주항쟁’ 단원으로 “탁 치니 억하고” 무너진 제5공화국이라는 제목 아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에 맞아 쓰러지는 사진이 실려 있다. 한국 역사 교육을 전공한 글쓴이가 미국에서 세 아이에게 직접 한국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
| ⓒ 본인 |
그러나 이미 늦었다. 소비자들은 SNS에 스타벅스 머그잔을 망치로 깨고 텀블러를 버린 사진을 올렸다. 하루 두 번씩 스타벅스를 이용했다는 충성 고객도 "고객인 게 너무 부끄럽고 제 자신이 싫어진다"며 탈퇴를 선언했다. "커피 마실 곳은 많다"는 말과 함께 앱을 삭제하고, 기프티콘을 환불하고, 카카오 선물하기에서 스타벅스를 지웠다는 글이 이어졌다.
결국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직접 나섰다. 스타벅스코리아 대표를 전격 해임하고, 행사를 기획한 담당 임원도 함께 해임했다. 정 회장은 대국민 사과문에서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이라며 "그룹 전체의 역사 인식과 감수성이 부족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5·18 단체들은 신세계 측의 직접 방문 면담을 거부했다. "보여주기식 사과"라며 "정확한 경위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이 먼저"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 말이 맞다. 이 기획은 어느 날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닐 것이다. 긴 시간 동안 실무자, 팀장, 부서장, 본부장, 대표이사가 이 기획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을 것이다. 결재란에 도장을 찍었다. 누구도 멈추지 않았다. 역사 교육을 오래 생각해온 사람으로서, 이 지점이 가장 무겁다. 한 사람의 악의가 아니라, 여러 명이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는 것. 그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의 문제다. 무엇을 가르쳤는지, 혹은 가르치지 않았는지의 결과다. 역사를 모르면 멈출 수가 없다. 뭐가 문제인지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까.
역사를 안다는 것과, 그 앎대로 산다는 것 사이에는 늘 이런 간극이 있다. 나는 그 간극을 모른 척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오늘도 아이들 앞에서 그 이야기를 꺼낸다. 내 아이들이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가 직장을 다니고, 누군가의 기획안을 검토하고, 결재란 앞에 서게 될 때. 그때 "이건 좀 이상한데"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한다. 그 말 한마디가 얼마나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는지, 역사가 이미 여러 번 보여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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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년 전 남편에게 보냈던 메일. 연애 시절 남편의 생일이 5월 18일임을 카카오스토리에서 확인하고 보낸 이메일 내용. 역사 교사였던 글쓴이가 5월 18일이라는 날짜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순간이다. |
| ⓒ 본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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