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을 품은 거목, 그 아래서 마주한 마음의 고향
지난 5월 10일부터 13일까지 다녀온 3박 4일 일본 여행기. <기자말>
[전갑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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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험준한 산악 역에 어울리지 않는 부드러운 지명이 인상적인 비조다이라(美女平)역사. 긴 여정의 끝, 새로운 사연을 품고 나그네를 맞이한다. |
| ⓒ 전갑남 |
산악 역에 스민 이색적인 이름
역 앞에 서서 예사롭지 않은 풍채를 자랑하는 두 그루의 아름드리나무를 바라보던 아내가 혼잣말처럼 툭 던졌다.
"정말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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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대비되는 미녀삼나무의 웅장한 자태. 알펜루트의 마지막 여정을 마무리하는 나그네들이 나무 아래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
| ⓒ 전갑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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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주의 슬픈 전설과 지명의 유래가 또렷하게 새겨진 안내판. 한글 안내판과 QR코드가 있어 나그네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
| ⓒ 전갑남 |
"아름다운 미녀산의 숲이여, 흔들리는 빛과 바람 속에서 사랑의 마음은 지금도 살아 있다."
지명에 얽힌 사연을 알고 나니, 눈앞의 거대한 삼나무가 진정 예사롭지 않게 보였다. 거칠고 단단하게 뻗은 줄기는 모진 풍파와 반대를 견뎌낸 여인의 굳은 절개 같았고,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는 여전히 산 아래 청년을 향해 간절히 손짓하는 공주의 실루엣처럼 애처롭게 겹쳐왔다. 아내와 친구도 전설의 무게를 느꼈는지 잠시 말을 잊은 채 묵묵히 거목을 올려다보았다.
빛과 바람 속에 고인 서늘한 삼나무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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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백 년 세월의 주름을 간직한 두 그루의 삼나무. 신성한 영역임을 알리는 두꺼운 금줄이 허리춤에 단단히 둘러져 있다. |
| ⓒ 전갑남 |
척박한 겨울과 폭설을 견디며 살아야 했던 산속 사람들에게 이 거목은 곧 산의 정령이자 삶의 버팀목이었으리라. 사람들은 풍년을 빌고 무사한 길을 기원하며 나무에 금줄을 치고, 돌상 앞에 꽃을 바치며 두 손 모아 절을 올렸을 것이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기도가 있기 마련인가 봐요"
삼나무 몸통을 칭칭 감은 굵은 금줄과 그 아래 나지막이 자리한 지장보살상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아내에게 말을 건넸다.
"그러게요. 간절히 바라는 마음은 국경을 넘어도 다 똑같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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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조다이라역의 상징, 미녀삼나무(美女杉) 아래 자리한 지장보살상과 누군가 가져다 놓은 화사한 꽃들이 전설 속 공주의 그리움을 애처롭게 달래고 있는 듯싶다. |
| ⓒ 전갑남 |
삼나무는 인간의 시간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흐름 속에 살아간다. 우리는 잠시 스쳐 지나가는 여행객이지만, 저 나무는 수많은 계절을 건너며 이 자리를 지키고, 공주의 눈물겨운 노래부터 나그네들의 기원까지 모든 기억을 품으며 자라왔을 것이다.
산바람이 스쳐 지나자 삼나무 가지 끝이 가볍게 흔들렸다. 여행에 지친 사람들에게 시원한 바람을 선사하며 "남은 여정 잘 지내고 가!" 인사를 하는 듯했다.
열차 시간이 가까워져 플랫폼으로 향하면서도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며 인간의 기도와 시간을 품고 서 있던, 우리네 삶과 참 닮아 있는 거목. 그 나무는 찬란한 햇살 아래 빛나던 알펜루트의 설벽만큼이나 오래도록 여행자의 마음에 가만히 뿌리를 내리고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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