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조 원을 맡길 사람, 우리는 어떻게 고르고 있는가
교육감이 쓰는 돈이 국방비보다 많다. 그런데 단독 선거를 치르면 투표율이 15%다. 숫자들을 나란히 놓으면 질문이 달라진다. <기자말>
[김영근 기자]
6월 3일 투표소에서 받아드는 용지 가운데 하나에 교육감 후보 이름들이 나란히 적힌다. 지난 5월 15일 후보 등록 마감일, 전국 16개 시도에서 45명이 이름을 올렸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은 21일부터 6월 2일까지다.
지금 이 순간, 자기 지역 교육감 후보 이름을 말할 수 있는 유권자가 얼마나 될까. 후보가 무슨 공약을 내세우는지, 교육 예산을 어떻게 쓰겠다는지 아는 사람은 더 드물 것이다. 선거는 시작됐지만 대부분에게 교육감 선거는 아직 시작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이 낯섦의 뿌리를 따라가다 보면 뜻밖의 숫자들이 기다리고 있다.
71조 원이라는 숫자
교육감이 관리하는 재원의 핵심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다. 이 돈은 내국세의 20.79%를 17개 시도 교육청에 자동으로 배분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다. 2026년 기준으로 이 교부금은 71.7조 원 규모다. 세제 개편 논란 속에서도 전년 추경보다 약 1.4조 원 늘었다. 교육부 전체 예산은 106조 원을 넘는다.
비교를 해보면 감이 잡힌다. 2026년 국방부 예산이 61조 원대이니, 전국 교육청이 쓰는 돈이 국방 예산보다 많다. 개별 시도 교육청 단위로 내려가도 규모는 결코 작지 않다. 전북교육청이 2026년 예산을 4조 4,437억 원으로 편성했는데 이는 전북도청 일반회계를 웃도는 수준이다. 도내 가장 큰 재정 주체 중 하나가 교육청인 것이다.
그 돈을 4년 동안 관할하는 사람이 교육감이다. 학교 신설과 개축을 결정하고 수만 명의 교원 인사를 좌우하며 방과후학교부터 특수교육까지 현장의 세부 예산을 배분한다. 시도지사가 도로를 놓고 병원을 짓는다면, 교육감은 교실을 짓고 선생님을 배치한다. 그런데 두 자리에 대한 유권자의 관심은 눈에 띄게 다르다.
투표율이 말하는 것
교육감 직선제가 처음 실시된 것은 2007년이었다. 그해 2월 부산에서 최초의 교육감 직선이 치러졌다. 결과는 투표율 15.3%였다. 선거 예산만 175억 원이 들었다. 낭비 논란이 일었던 것은 당연했다. 이후 2010년부터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르면서 투표율이 50%대로 올라갔다. 지방선거를 따라 투표소에 온 시민들이 함께 교육감 투표지도 받아 든 것이다.
서울의 경우를 보면 추이가 선명하다. 지방선거와 함께 치른 서울교육감 투표율은 2010년 53.9%, 2014년 58.6%, 2018년 59.9%, 2022년 53.2%였다. 그런데 2024년 10월 서울교육감 보궐선거가 단독으로 치러지자 오후 5시 기준 19%대로 떨어졌다. 지방선거와의 동반 효과가 사라지면 유권자 관심이 얼마나 빠르게 빠지는지를 보여주는 수치다.
이 숫자들이 불편한 이유는 따로 있다. 투표율 19%라는 것은 유권자 10명 중 8명이 선택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 결과 당선된 사람이 서울의 학교 행정 전체를 4년 동안 관할한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선택을 따르는데, 여기서는 소수만 선택에 참여한다. 선거가 아무리 공정하게 치러져도 낮은 참여는 대표성의 문제를 남긴다.
줄투표, 이름 순서가 당선을 좌우한 구조
교육감 선거의 또 다른 구조적 문제는 이른바 '줄투표' 현상이다.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를 때 교육감 후보 번호 배열이 다른 직위 선거와 같은 순서로 정렬되면, 유권자 일부가 진영의 기호선을 그대로 따라 교육감 표를 던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교육감은 정당 추천을 받을 수 없고 투표지에 이름만 나와 있는데도, 다른 투표지의 기호 배열을 따라가는 효과가 생긴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이버선거역사관은 이 현상을 직접 언급하며, '교육감 선거의 최대 변수는 공약도 정책도 아닌 후보자 이름이 들어가는 투표용지 자리였다'고 밝혔다. 교육 철학이 아니라 투표지 위치가 당선에 영향을 준다면 직선제의 본래 취지가 흔들린다.
이것은 후보나 진영의 문제가 아니다. 정보 없는 선거가 낳는 필연적인 결과다. 유권자가 판단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가장 손쉬운 단서인 위치나 순서에 의존하게 된다. 제도가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으면 유권자는 다른 방법을 찾는다. 그 '다른 방법'이 정책 판단이 아니라 기호 순서라면, 교육감을 뽑는 것이 아니라 진영의 부록을 뽑는 셈이다.
인공지능 교실의 책임자는 누구인가
2026년 교육부 예산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는 인공지능이다. 106조 원 규모 예산에서 'AI 디지털시대 미래인재 양성'이 주요 투자 방향으로 제시됐다. 초중고 현장에서 이 방향을 실제로 집행하는 것은 교육감이다.
AI 리터러시 교육을 어느 학년부터 어떻게 도입할지, 디지털 기기를 학교별로 어떻게 배분할지, 교사 재교육 예산을 어디에 쓸지는 교육부 방침과 각 시도 교육청 정책이 함께 작동하는 영역이다. 교육부가 방향을 제시해도 교육감이 집행 우선순위를 정하는 구조다. AI 교육이 4년 늦어지거나 4년 앞당겨질 수 있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학교에서 발생하는 학습 데이터 활용 범위, 학생 온라인 안전망, 개인정보 관리도 이제는 교육감이 해결해야 할 기술적 리스크가 됐다. 스마트 교실과 인공지능 보조 학습 플랫폼이 확대될수록 그 안에서 학생 데이터가 어떻게 다뤄지는지를 교육청 단위에서 관리해야 한다. 미래리스크 관리의 새 축이 교육감의 손으로 넘어오고 있는 것이다. 이 자리를 고르는 선거에서 후보가 AI 시대 교육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묻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임기 4년이 끊기면 무슨 일이 생기나
2024년 10월 서울교육감 보궐선거는 임기 중 공백이 현실화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줬다. 전임 교육감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자리를 떠나면서 단독 보궐선거가 치러졌고, 그 결과 19%라는 투표율이 나왔다. 선거 비용은 고스란히 쓰였고 정책 연속성은 한 번 더 끊겼다.
4년 임기 동안 교육감이 추진한 사업들은 교육감 교체와 함께 방향이 바뀌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혁신학교 확대 정책이 새 교육감 취임 후 축소되거나, 특정 보육 프로그램이 예산 삭감을 맞이하거나, 건축 중인 학교 설계 방향이 수정되기도 한다. 학생과 학부모 입장에서는 정책의 연속성이 깨지는 것이 직접적인 불편이 된다.
안전사회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도 구조적 리스크다. 좋은 제도가 중단 없이 이어지는 것이 학교 안전의 기반이다. 제도전환은 한 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4년의 임기 동안 꾸준히 쌓여야 실효가 생긴다. 처음 선거에서 잘 고르는 것이 왜 중요한지의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무게를 알고 고르는 선택
71조 원, 투표율 15%, 줄투표, AI 교실, 보궐선거. 이 숫자들과 현상들을 나란히 놓으면 교육감 선거의 무게가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이 자리는 학교장보다 높은 자리가 아니라, 광역 지방자치단체와 맞먹는 재정을 다루며 AI 시대의 교육 전략을 결정하는 자리다.
투표지에서 낯선 이름을 보고 지나치는 것은 유권자의 게으름만이 아니다. 이 자리가 얼마나 큰 책임을 지는지 알기 어렵게 만드는 정보 구조의 문제가 겹쳐 있다. 내국세의 20.79%가 자동으로 배분되는 교부금, 수만 명의 교원 인사, AI 시대의 학교 설계가 교육감의 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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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운영하는 '정책·공약마당' 누리집 화면. 71조 원에 달하는 지방교육재정을 책임질 교육감 후보의 정책과 공약을 꼼꼼히 검증하기 위해 유권자가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플랫폼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정책·공약마당(https://policy.nec.go.kr/) |
|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화면 캡처 |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영근은 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 겸 인문학과동아시아문화산업과정 교수이며, 사회재난안전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도쿄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 박사를 취득한 후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및 계명대학교 일본학과 조교수를 역임하였다. "AI시대의 안전경제학: 글로벌 불확실성 및 위기관리" 및 "북핵 리스크 관리와 국제안보레짐의 변용", 『포스트 제국주의』(공저), 『한일관계사 1965-2015. II: 경제』(공저), 『한일 관계의 긴장과 화해』(편저) 등 다수의 논문과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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