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3구 민심 ‘신중 모드’…서울시장 선거 판 흔드나 [민심 르포]

권혜진 2026. 5. 20.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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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처럼 대놓고 못 찍는다”…강남3구서 감지된 ‘조용한 표심’
재건축·공급 확대 요구 속 “집값 급등·급락 모두 부담” 목소리
청년 주거 불안·예산 효율성 화두…송파선 생활밀착형 정책 주문
정원오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왼쪽)와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강남3구 보수세야 유구하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지금은 누구 뽑겠다고 대놓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에요”

6·3 지방선거를 2주 앞두고 서울시장 선거의 최대 보수 텃밭으로 꼽히는 이른바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에 미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전통적으로 보수세가 강한 지역이지만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예전과 같은 압도적 흐름 대신 ‘조용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강남3구는 역대 서울시장 선거에서 보수 후보의 핵심 지지 기반 역할을 해왔다. 2022년 6·1 지방선거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 강남구에서 74.38%, 서초구 72.31%, 송파구 64.69%의 득표율을 올리며 당선됐다.

2021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도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오 시장은 강남구에서 73.54%를 득표해 서울 전체 득표율(57.50%)보다 16%포인트 높은 지지를 얻었다. 특히 압구정동에서는 88.30%라는 압도적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어 서초구(71.02%), 송파구(63.91%)에서도 과반 이상의 지지를 받았다.

이 때문에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번 선거 역시 강남3구가 보수 진영의 ‘안정적 텃밭’ 역할을 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는 이전과는 다소 달라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KBS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11~14일 서울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를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면접 조사 결과, 강남3구가 포함된 강남동권(강남·강동·서초·송파)에서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는 44%, 정원오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36%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오 후보가 오차범위 밖에서 소폭 우세하지만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평가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5%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위치한 신반포상가의 모습. 노유지 기자
실제 강남·서초·송파 주요 지역에서 만난 민심은 전반적으로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분위기였다. 특정 후보 지지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정치 이야기를 피하거나 말을 아끼는 모습이 두드러졌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한 대단지 아파트 인근 부동산에서 만난 공인중개사 김모(60대·여)씨는 “서초구 민심 자체야 뻔하지 않나”라면서도 “최근 국민의힘 상황을 보며 만족스럽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예전처럼 ‘무조건 찍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대놓고 하지는 못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국민의힘 내부의 당권파와 친한(친한동훈)계 간 갈등을 우회적으로 언급한 셈이다.

반포1동 주민센터 인근에서 만난 안모(70대·남)씨는 “정치 이야기는 웬만하면 피하려 한다”며 “친한 사람끼리도 정치적 의견이 다르면 괜한 언쟁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모(50대·여)씨 역시 “정치권 분위기가 워낙 시끄럽다 보니 다들 마음속으로 선호하는 후보가 있어도 쉽게 드러내지는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강남3구 주민들이 꼽은 서울시의 최우선 현안은 단연 부동산이었다. 다만 공급 확대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자산 가치 변동 가능성에는 경계심을 드러내는 분위기도 감지됐다. 과거 서울시장 선거에서 공동주택 공시가격 상승률과 투표율이 유의미한 비례 관계를 보인다는 분석 결과가 있는 만큼 자산 가치 변동에 민감한 유권자들의 심리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반포동에 거주하는 이모(70대·남)씨는 “결국 민생과 생활경제 안정이 가장 중요하다”면서도 “부동산 역시 중요한 현안이다. 너무 급등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급락해서도 안 된다”고 전했다.

문정동에 거주하는 김모(30대·남)씨는 “재건축·공급·규제 완화에 적극적인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며 “집값을 억누르기보다 공급을 늘리고 거래를 정상화하는 방향이 필요하다. 시장 원리를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실거주 세대가 서울에 계속 살 수 있도록 해주는 후보를 뽑고 싶다”고 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에 위치한 한 아파트. 권혜진 기자
청년 세대의 주거 불안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았다. 이미 삶의 기반을 다진 부모 세대는 자녀들이 과거처럼 내 집을 마련하고 안정적인 삶을 꾸리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후보가 시장이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속터미널 인근 대단지 아파트에서 만난 이모(50대·여)씨는 “집값이 너무 뛰어 젊은 세대가 결혼 자체를 상상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주거 불안이 저출산 문제로까지 이어지는 만큼 청년층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과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반포상가에서 50년 가까이 가게를 운영해왔다는 박모(80대·남)씨도 “청년들이 내 집 마련이나 자산 축적의 희망을 갖기 어려운 현실이 안타깝다”며 “청년들이 미래를 꿈꿀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이어 “과도한 부동산 규제가 오히려 임대 시장을 위축시키고 있다”며 “청년들이 자립할 수 있는 주거 사다리를 다시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0월 서울 송파구 송파나루공원 어르신놀이터에서 시민들이 여가를 즐기고 있다. 노유지 기자
송파구에서는 강남·서초와는 결이 다른 분위기도 감지됐다. 송파구는 강남3구 가운데 상대적으로 진보 성향 유권자층이 존재하는 지역으로 꼽힌다.

송파구에 40년째 거주 중이라는 채모(50대·남)씨는 “보여주기식 행정과 정책으로 인한 세금 낭비는 이제 그만했으면 한다”며 “외국 관광객이 많이 찾는 도시인 만큼 랜드마크를 세우려는 시도도 이해는 하지만 그보다 시민들이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는 녹지·교통·주거 환경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석촌역 인근에 거주하는 김모(20대·여)씨는 “예산을 효율적으로 쓰는 사람이 필요하다”며 “한강버스처럼 대규모 예산이 투입된 사업이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한다는 기사를 볼 때마다 ‘그 돈으로 생활 인프라를 더 개선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특정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주민들은 ‘정부와의 시너지’와 ‘정책 연속성’을 주요 이유로 꼽았다.

잠원동에 거주하는 고모(30대·여)씨는 “검증된 역량을 바탕으로 기존 사업을 안정감 있게 이어갈 수 있는 후보가 필요하다”며 “특히 재개발 속도를 낼 수 있는 인물에게 표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논현동에 거주하는 권모(50대·남)씨는 “지난 서울시 정책들이 피부에 와닿지 않았다. 한강버스나 광화문 구조물 같은 사업은 오히려 과시용처럼 느껴졌다”며 “결국 정부와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인물이 중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권혜진 기자 hjk@kukinews.com
노유지 기자 youjiroh@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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