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세영 특파원의 여기는 베이징] “대등한 국력 과시”… 미·중관계 재정립에 환호하는 중국

송세영 2026. 5. 20.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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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4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국빈 만찬을 앞두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UPI연합뉴스

1997년 장쩌민·클린턴 정상회담서
‘건설적 전략동반자관계’ 합의에도
美, 중국의 급부상에 경쟁자 간주
시진핑 ‘투키디데스의 함정’ 언급
이번 회담서 ‘전략안정관계’ 관철
현실 무대서 적용될지는 미지수

중국 베이징에서 지난 14~15일 열린 미·중 정상회담 성적표를 두고 양국 정상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 대해선 ‘빈손으로 돌아왔다’는 인색한 평가가 주를 이루지만, 시진핑 국가주석은 안방에서 미국과 대등한 국력을 과시했다며 후한 평가를 받고 있다.

중국 관영 언론들은 특히 시 주석이 미·중관계를 ‘건설적 전략안정관계’로 재정립한 점을 연일 부각하고 있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18일 “양국 관계 발전의 새로운 방향을 명확히 제시했다”(싱가포르국립대 구칭양 교수) “미·중 지도자의 양국 관계 재정립이 이번 회담의 역사적 의미를 보여준다”(미국 쿤 재단의 로버트 로렌스 쿤 회장) 등 해외 전문가들의 긍정적 평가를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건설적 전략안정관계’는 영어식으로 풀면 ‘전략적 안정에 기반한 건설적 관계’다. 시 주석은 이를 협력을 주축으로 한 긍정적 안정, 적절한 경쟁을 동반한 건전한 안정, 이견과 차이를 관리할 수 있는 통상적 안정, 평화를 기대할 수 있는 항구적 안정으로 정의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15일 언론 브리핑에서 새로운 양국 관계가 “안정적인 경제·무역 관계를 유지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실질적인 협력을 확대하고, 서로의 우려 사항을 적절히 해결하고, 국제 및 지역 문제에 대한 소통과 조율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중국은 미국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인 초강대국을 지향한다. 시 주석이 주창한 ‘중국몽’ 즉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 추구하는 최종 목표다. 가장 큰 걸림돌은 소련 몰락 이후 유일 패권국으로 올라선 미국이다. 미국은 중국이 미국의 패권을 넘보지 못하도록 중국의 발전과 성장을 억압하고 견제하는 전략을 펴왔다. 중국이 미국과 관계를 재설정하려는 이유는 미국의 견제와 억압을 무력화하는 데 있다.

중국과 미국이 양국 우호 관계에 의견일치를 본 적도 있다. 장쩌민 전 국가주석은 1997년 미국을 국빈 방문했을 때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뒤 공동성명을 통해 ‘건설적 전략동반자관계’를 수립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당시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로 끌어들이기 위해 우방국에만 사용하는 ‘동반자’라는 표현까지 허용했다.

중국의 국력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면서 1997년 합의는 계승되지 못했다. 미국이 중국을 패권에 도전하는 ‘전략적 경쟁자’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시 주석이 이번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언급한 ‘투키디데스의 함정’이 미국의 이 같은 시각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기존 강대국과 부상하는 신흥 강대국 간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국제정치이론이다. 시 주석은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역사적 필연이 아니고 두 강대국이 상생 공존할 수 있다며 미국을 설득해왔다.

시 주석이 2012년 취임 직후 미국에 제안한 ‘신형대국관계’가 이런 논리의 집약체다. 중국은 ‘상호존중, 평화공존, 상생협력’으로 요약되는 이 개념을 통해 미국과 중국이 초강대국으로서 공존하는 세계를 제시했다. 시 주석이 여러 차례 언급한 “태평양은 미국과 중국을 모두 품을 정도로 넓다”는 표현이 신형대국관계에 담긴 핵심 철학을 보여준다.

미국은 중국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대신 바이든 행정부 들어 ‘관리된 경쟁’ 개념을 도입했다. 군사적 충돌을 피하기 위해 ‘관리’를 도입했을 뿐, 중국의 패권 도전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목표는 바뀌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2기 첫해였던 지난해 대중국 관세전쟁을 일으키고 첨단기술 통제를 강화하면서 중국의 위기의식은 커졌다.

중국이 이번에 합의한 건설적 전략안정관계는 신형대국관계와 핵심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중국신문망은 아예 “건설적 전략안정관계는 신형대국관계의 연장선에 있다”고 단언했다. 표현은 다소 달라졌지만, 시 주석이 10년 넘게 주창해온 대미 정책이 미국의 ‘전략적 경쟁’ 담론을 넘어 관철된 셈이다.

댜오다밍 인민대 국가발전전략연구원 부원장은 17일자 인민일보에 기고한 칼럼에서 ‘전략적 경쟁’은 “중국 발전에 대한 오해이자, 중·미 관계에 대한 오판”이라며 “전략적 안정을 유지하는 전제하에, 상호 이익과 협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적절한 경쟁을 벌이며, 효과적으로 차이를 관리함으로써 양국 관계의 안정적이고 건강하며 지속 가능한 발전을 촉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CNN도 “새로운 양국 관계는 지난해의 불안정한 경쟁 관계가 아닌 협력과 관리된 경쟁에 초점을 맞춘다”고 평가했다.

시 주석은 새로운 양국관계가 ‘3년과 그 이후’까지 지침을 제공한다고 명시함으로써 트럼프 2기를 넘어 차기 미 행정부까지 염두에 두고 있음을 내비쳤다. 하지만 시 주석의 구상이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15일 “전략적 안정성에 동의한다”고 밝혔지만, 미국측 발표문에는 건설적 전략안정관계라는 표현 자체가 등장하지 않았다. 미국 외교전문지 디플로맷은 “미·중 관계는 역사적으로 말보다 행동으로 정의됐다”며 중국과 달리 미국은 이 표현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수 있다고 봤다.

송세영 특파원 sysoh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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