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제의 인간사] 장엄한 문장의 세계

2026. 5. 20.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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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 소설가

글과 문자에 예민한 사람이라면 어디를 가든 마찬가지이겠지만, 나는 특히 방방곡곡 산중 사찰에 갈 때마다 새겨둘 만한 문자(글)가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씩씩하고 웅장하며 위엄있고 엄숙하다’는 의미의 ‘장엄하다’의 어원인 ‘장엄(莊嚴)’은 본래 불교 용어로, 부처의 ‘세계’나 법당을 꽃과 향 등 아름답고 훌륭한 것으로 정성스레 꾸미는 일을 의미하는데 장엄에 글(문장)을 포함시켜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세계라는 말도 불교에서 나와
세계란 말 역시 불교에서 나온 용어로 산스크리트어 ‘로카다투’의 한자 번역어라 한다. ‘세(世)’는 시간의 흐름(대략 30년)을 뜻하고 ‘계(界)’는 경계·영역을 의미한다. 곧 세계는 ‘인류가 살아가는 시공의 영역’이라는 뜻이다.

「 깨달음의 세계로 중생을 인도
선승의 난해한 게송도 인상적
딱한 현실을 서광처럼 비춘 건
초등학생의 비범한 짧은 문장

김지윤 기자

절(도량)의 입구인 문에도 그냥 ‘문’이 아닌 남다른 의미가 부여되어 있다. 예컨대 불이문(不二門)은 사찰의 일주문·천왕문을 지나 본당(대웅전·보광전·극락전 등)에 이르기 전 마지막으로 통과하는 문으로, 부처와 중생, 번뇌와 깨달음이 본질적으로 ‘둘이 아닌 하나’임을 나타내며 해탈문(解脫門)이라고도 불린다. 해탈은 탐욕·분노·무명 등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진 상태로, 불이 꺼지듯 모든 고뇌가 소멸하여 완전한 평온과 행복에 도달한 궁극의 경지를 뜻하는 열반과 함께 수행의 궁극적인 목표가 된다.

대웅전은 『법화경』에서 ‘위대한 영웅’으로 일컬어진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모시는 사찰의 중심 법당이고 석가모니불 좌우에 문수·보현보살을 모시는 경우가 많다. 대웅보전은 석가모니의 보배로운 전각이라는 뜻으로, 대웅전보다 격을 높인 표현이다. 대웅보전의 주불은 대웅전과 마찬가지로 삼세불이자 삼신불 가운데 하나인 석가모니불이며 협시불은 주로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불을 모신다.

삼신불은 진리(法身)·공덕(報身)·현현(應身)의 세 가지 몸을 갖춘 부처(비로자나불·노사나불·석가모니불)를 뜻하며, 삼세불은 과거(연등불)·현재(석가불)·미래(미륵불)의 부처를 의미한다. 이들 부처나 보살들은 깨달음·서원·공덕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손 모양(手印)을 하고 있다. 예컨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인은 석가모니불이 수행 중 악마를 물리치고 보리수 아래에서 무상정등각(최상의 깨달음을 일컫는 말로 산스크리트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을 얻은 것을 의미한다. 왼손은 무릎 위에 두고 오른손은 검지 끝으로 땅을 가리켜, 지신(地神)에게 자신의 깨달음을 최초로 증명하게 하는 모양이다.

시무외인은 모든 중생의 두려움과 우환을 없애주고 안온함을 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수인이다. 다섯 손가락을 가지런히 펴서 손바닥을 밖으로 하여 어깨높이까지 올린 모습이다.

절에는 흔히 본당인 대웅전 외에도 중생의 고통을 치유하고 소원을 들어주는 관세음보살을 모신 자비의 공간인 관음전(원통전), 망자의 극락왕생을 비는 공간인 지장전(명부전/시왕전)이 있다. 중생의 삶과 죽음을 돌보고 애통함을 어루만져 위무하는 것이 종교의 역할일진데 사찰을 찾아드는 사람들의 소원에 대응하고 돌아가신 분의 안식을 비는 전각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건물의 성격 보여주는 주련
사찰은 물론이고 궁궐이나 전각·정자 같은 건물 기둥에는 그 건물의 성격과 주제를 보여주는 주련이 걸려 있다. 주련을 말 그대로 해석하면 기둥에 연이은 시구를 세로로 새겨 걸어놓은 것을 말한다. 대웅전에는 『화엄경』에 들어 있는 ‘부처님의 법신이 법계에 충만하다(佛身充滿於法界)’, ‘부처님의 몸은 법계에 가득 차 있다(普現一切衆生前)’, ‘인연 따라 감응하여 모든 곳에 미치지 않음이 없다(隨緣赴感靡不周)’, ‘항상 이 깨달음의 자리에 앉아 계시다(而常處此菩提座)’ 등 그 건물의 성격과 주제를 보여주는 글귀들이 걸려 있는 경우가 많다.

내 기억에 가장 인상 깊게 남아 있는 주련은 경기도 양평 사나사 조사전에 걸려 있는 중국 임제종의 고승 고봉원묘(高峰原妙·1238~1295) 선사의 게송이다.

바다 밑 진흙소는 달을 머금고 달리고(海底泥牛含月走)
바위 앞 호랑이는 새끼를 안고 잠든다(巖前石虎抱兒眼)
쇠뱀이 금강역사의 눈을 꿰뚫고 들어가니(鐵蛇讚入金剛眼)
곤륜산(검은 동자)이 코끼리를 타고 그 앞을 해오라기가 끌도다(崑崙騎象鷺鶿牽)

요즘에는 어려운 한문 대신 한글로 주련을 다는 절이 늘고 있어 전각을 맴돌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시간이 좀 줄었다. 아, AI가 내장된 스마트폰 덕이구나.

절의 문장 가운데서도 절에서 밝히는 연등에 달리는 문구에 현세를 살아가는 대중의 간절한 염원이 가장 잘 드러난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우연히 들렀던 절에 즐비한 연등 아래를 지나면서 운 좋게도 수많은 사람의 공통된 바람이 어떤 것인지 눈여겨볼 수 있게 되었다. 가장 많은 경우가 가족의 건강, 행복, 소원 성취, 시험 합격, 취업, 사업 번창 등을 기원하는 것인데 ‘울 남편 돈 잘 벌게 해주세요’나 ‘로또 당첨!’, ‘용돈 5만원 인상’이라는 글귀는 구체적인 내용으로 관심을 끌었다.

수천수만의 바램과 기원, 속마음의 토로 가운데 그 무엇보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과 현실을 일깨우는 상징적이고 사실적인, 너나 할 것 없이 고해를 살아가고 있는 인간세를 비추는 서광과도 같은 비범한 문장은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계단 옆에 걸려 있었다.

초딩 인생 힘들어용.

성석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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