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지구’ 대표하는 존재… 바다얼음 줄어들면 치명적

2026. 5. 20.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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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의 과학 이야기] 지구에서 펭귄이 사라진다면
게티이미지뱅크


어느 날 남극에서 펭귄이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곧바로 실감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남극은 워낙 멀리 떨어진 곳이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한 번도 남극에 가 보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펭귄과 함께 살아왔다. 어린이 그림책 속에도 펭귄이 있고 다큐멘터리에도 펭귄이 등장한다. 냉장고 광고에도 나오고 빙과류 포장지에도 있다. 사람들은 펭귄을 보면 남극을 떠올리고 얼음과 바다를 상상한다. 어쩌면 펭귄은 인간이 머릿속에 그리는 ‘차가운 지구’의 얼굴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펭귄은 단순히 귀여운 동물이 아니다. 펭귄은 남극 생태계를 움직이는 중요한 구성원이며 지구 시스템 전체와 연결되어 있는 생명체다. 만약 펭귄이 사라진다면 남극의 풍경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바다와 얼음, 플랑크톤과 탄소의 흐름까지 함께 흔들리게 된다.

현재 지구에는 18종의 펭귄이 살고 있다. 가장 작은 쇠푸른펭귄은 키가 30㎝에 몸무게 1㎏ 남짓이지만 가장 큰 황제펭귄은 키가 1.2m에 번식기 직전에는 40㎏ 가까이 나가기도 한다. 펭귄이 남극에만 사는 것은 아니다. 뉴질랜드, 남아메리카, 남아프리카공화국 주변 바다에도 산다. 심지어 적도 근처 갈라파고스 제도에도 펭귄이 있다. 차가운 훔볼트 해류가 흐르기 때문이다. 펭귄에게 중요한 것은 위도가 아니라 바다의 온도인 셈이다.

펭귄은 원래 하늘을 날던 새의 후손이다. 하지만 약 6천만년에 걸친 진화 끝에 펭귄은 하늘 대신 바다를 선택했다. 펭귄의 날개는 더 이상 하늘을 나는 데 적합하지 않다. 대신 단단하고 납작한 지느러미처럼 변했다. 뼈 구조도 달라졌다. 대부분의 새는 몸을 가볍게 만들기 위해 속이 빈 뼈를 갖고 있지만 펭귄의 뼈는 비교적 단단하다. 덕분에 물속에서 쉽게 뜨지 않고 잠수하기에 유리하다.

펭귄은 물속에서 놀라운 능력을 보여 준다. 젠투펭귄은 시속 약 35㎞로 헤엄칠 수 있는데, 이는 현존하는 새 가운데 가장 빠른 수준이다. 황제펭귄은 500m가 넘는 깊이까지 잠수할 수 있고 최대 20분 넘게 숨을 참고 물속을 헤엄친다. 펭귄의 혈액과 근육에는 산소를 저장하는 헤모글로빈과 미오글로빈이 풍부하다. 심장 박동을 줄여 산소 소비를 최소화하는 능력도 있다. 하늘을 포기한 대신 바다를 얻은 셈이다.

펭귄은 추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몸도 특별하게 진화되었다. 황제펭귄의 몸에는 약 10만개가 넘는 깃털이 나 있다. 깃털 사이에는 공기층이 형성되는데 마치 두꺼운 단열재처럼 몸의 열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 준다. 피부 아래에는 지방층도 두껍게 발달해 있다. 남극의 겨울 바람은 시속 200㎞에 이를 때도 있고 체감온도는 영하 50도 아래로 떨어지기도 한다. 그런데도 황제펭귄은 서로 몸을 밀착한 채 거대한 무리를 이루어 버틴다. 수천 마리의 펭귄이 원을 이루고 조금씩 자리를 바꾸며 열을 나누는 모습은 생물학적으로도 매우 흥미로운 집단 행동이다.

게티이미지뱅크


펭귄이 사라지는 일이 정말 일어나겠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은 이미 한 번 ‘펭귄의 멸종’을 경험했다. 정확히 말하면 펭귄과 거의 비슷한 삶의 방식을 가진 새를 멸종시킨 적이 있다. 바로 북대서양에 살던 큰바다쇠오리다. 큰바다쇠오리는 몸집이 거위만 했고 날지 못했으며 물속에서 헤엄을 아주 잘 쳤다. 키는 약 75㎝ 정도였고 몸무게는 5㎏ 안팎이었다. 멀리서 보면 지금의 펭귄과 꽤 비슷하게 생겼다. 원래 ‘펭귄’이라는 이름은 큰바다쇠오리를 가리키던 말이었다. 나중에 남극에서 비슷하게 생긴 새를 본 사람들이 이미 사라진 동물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큰바다쇠오리는 인간을 견디지 못했다. 어부들은 고기와 기름을 얻기 위해 큰바다쇠오리를 잡았다. 특히 유럽에서 이불용 깃털 수요가 급증하자 수많은 개체가 희생되었다. 날지 못해도 바다 생존에 전혀 불리하지 않았지만 인간 앞에서는 속수무책이 되었다. 결국 마지막 큰바다쇠오리 한 쌍이 1844년 아이슬란드 근처 엘데이 섬에서 인간에게 잡혀 죽었다.

오늘날 남극의 펭귄들도 안전하지 않다. 기후변화가 펭귄에게 큰 위협이 되고 있다. 황제펭귄은 바다얼음 위에서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운다. 그런데 바다얼음이 너무 빨리 녹아 버리면 아직 방수 깃털이 충분히 자라지 않은 새끼들이 차가운 바다에 빠져 죽는다. 실제로 최근 남극 일부 지역에서는 바다얼음이 줄면서 번식에 실패한 황제펭귄 집단이 관찰되고 있다. 2023년에는 남극 일부 지역에서 새끼 펭귄 수천 마리가 집단 폐사하기도 했다.

펭귄의 위기는 단지 펭귄만의 문제가 아니다. 펭귄은 남극 생태계 전체와 연결돼 있다. 펭귄은 크릴이라는 작은 갑각류를 먹고 산다. 남극 크릴은 길이가 1~2㎝ 정도에 불과하지만 지구에서 가장 개체 수가 많은 동물 가운데 하나로 전체 생물량이 수억 톤에 이른다. 그런데 크릴은 바다얼음 아래에서 자라는 미세조류를 긁어먹고 산다. 얼음이 줄어들면 미세조류가 감소하고 크릴도 줄어든다. 크릴이 줄어들면 펭귄과 바다표범, 고래까지 영향을 받는다. 펭귄의 감소는 남극 생태계 전체의 균형이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인 셈이다.

흥미롭게도 펭귄은 지구의 탄소 순환에도 영향을 준다. 그 중심에는 펭귄의 똥이 있다. 남극의 펭귄 집단은 엄청난 양의 똥을 남긴다. 펭귄의 똥에는 질소와 인, 철 같은 영양분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 이 물질들은 바다와 육지의 미생물, 플랑크톤, 이끼 생장에 영향을 준다. 특히 남극 바다의 식물플랑크톤은 광합성을 통해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바다 생태계가 흡수하는 탄소는 지구 기후 조절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펭귄의 똥이 남극 바다의 생물 생산성을 높이고 탄소 순환에도 간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펭귄 똥에서 나온 암모니아는 대기 중에서 작은 에어로졸 입자를 만들어 구름 형성에 관여할 수 있다고 한다. 아직 연구가 더 필요하지만 과학자들은 펭귄이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남극의 공기와 기후 시스템에도 영향을 주는 존재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사람들은 뒤뚱뒤뚱 걷는 펭귄을 보면 웃음지으며 귀엽다고 말한다. 하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펭귄은 단순히 귀엽기만 한 새가 아니다. 수천만 년에 걸쳐 차가운 바다에 적응해 온 생명체이며 남극 생태계의 흐름을 이어 주는 중요한 연결고리다. 지구에서 펭귄이 사라진다면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얼음 위를 걷는 검고 흰 그림자일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는 더 큰 사실을 깨닫게 된다. 펭귄의 멸종은 단지 새 한 종류가 사라지는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것은 남극의 얼음과 바다, 생태계와 기후의 균형이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다.

오늘도 남극의 펭귄들은 바다와 얼음 사이를 오가며 살아간다. 우리는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지만 사실 그들의 삶은 우리의 삶과 연결돼 있다. 어쩌면 우리가 감사해야 할 것은 펭귄 자체보다도, 생명들이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지구의 질서인지도 모른다.

이정모 전 국립과천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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