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이 기다려졌다"...서울의 어느 베타테스트가 가져온 변화

이동이 2026. 5. 19.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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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서울시장에 바란다] 인간만의 도시를 넘어... 다종도시 서울로

[이동이]

서울시는 생태도시를 표방합니다. 도시 녹지를 늘리고, 옥상과 벽면을 녹화하고, 하천에 생태공원을 조성합니다. 그런데 묻고 싶습니다. 도시에 녹지가 많아지면 우리 도시는 정말 '생태적'이 될까요?

가로수를 심어놓고 열매가 떨어진다며 베어버리고, 백로가 돌아오자 악취 민원을 넣고, 멧돼지가 출몰하면 포획부터 합니다. 서울시 정책 곳곳에 '생태'라는 말이 사용되지만, 정작 우리 곁에 살아있는 존재들과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녹지를 '인프라'로, 자연을 '관리 대상'으로, 인간 너머의 존재를 '시설물'이나 '유해 동물'로 취급하는 것은 기존 생태도시 담론이 발전주의의 연장선에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도시는 누구의 공간일까요?
 아파트 옥상에서 휴식하는 어린 매
ⓒ 강성희
도시를 살아가는 것은 인간만이 아닙니다. 도시의 교각을 터전으로 삼은 비둘기, 아파트 에어컨 실외기에 둥지를 트는 황조롱이, 도심 하천에 돌아온 수달과 너구리, 보도블록 틈에서 자라는 풀꽃이 모두 도시의 구성원입니다.

그러나 서울시의 현재 정책은 이들을 도시의 주민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세훈 시장은 초고층 개발 사업을 통해 녹지축을 연결하고 도시 녹지를 늘리는 것을 생태도시라 부릅니다. 남산 곤돌라 사업은 생태 복원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한강에 수달이 돌아온 것을 개발의 정당성으로 활용합니다. 자연은 언제나 개발과의 충돌에서 지는 위치에 놓이고, '생태도시'를 표방하는 정책조차 그 구조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지난 3월 25일, 서울환경연합 주최로 진행된 다종도시포럼에서 최명애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도시 자연을 바라보는 접근을 크게 세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첫 번째는 환경 정책·관리 접근입니다. 지자체가 도시 자연을 다루는 방식으로, 자연을 생태계 서비스를 제공하는 녹색 인프라로 봅니다. 공기를 정화하고 열섬을 완화하고 탄소를 흡수하는 기능으로 가치가 측정되며, 지자체가 관리 주체가 되어 시민에게 녹색 복지를 제공하는 방식입니다. 자연을 자원으로 바라보는 기본 틀은 유지됩니다.

두 번째는 도시 정치생태학 접근입니다. 비판적 사회과학의 시각에서 도시 자연이 어떻게 불평등하게 생산되고 배분되는지를 묻습니다. 녹지 확충이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원주민이 쫓겨나는 그린 젠트리피케이션, 공원 관리 주도권이 특정 계층에게 넘어가면서 발생하는 문화적 배제 등이 주요 연구 대상입니다. 최명애 교수는 다종도시를 이야기할 때 비인간 존재뿐 아니라 도시 자연을 둘러싼 인간 사이의 불평등 문제도 함께 가져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세 번째는 포스트휴먼 접근입니다. 도시를 인간만의 공간이 아닌 비인간 존재들의 서식지로 새롭게 보는 시각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도시의 '야생성'으로, 가로수와 건물 외벽을 덮는 담쟁이, 둥지를 튼 어치 등 도시 일상 곳곳에 살아있는 야생의 감각입니다. 자연을 인식하는 도구는 데이터가 아니라 우리의 신체와 감각이며, 자연을 직접 만나며 쌓이는 경이로움과 기쁨이 동력이 됩니다.

최명애 교수는 이 세 가지 접근 중 어느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안한 것이 포스트휴먼 접근과 도시 정치생태학을 결합한 '다종도시정치생태학'입니다. 도시 자연을 인간·인프라·동식물이 끊임없이 재조합되며 만들어가는 역동적인 생태로 이해하고, 신체와 감각을 통해 자연을 만나며, 인간과 비인간 사이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보다 정의롭게 만들어지는 것을 지향합니다.

시민이 만들어가는 다종도시
 성미산공원 재정비 사업지
ⓒ 서울환경연합
다행히 변화의 조짐은 곳곳에서 감지됩니다. 가로수를 지키는 사람들, 봉산에서 딱따구리를 찾는 사람들, 아파트 단지의 새를 기록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미산공원 재정비 사업에 반대한 주민들은 '성미산의 마음'을 이야기했고, 덕수궁 돌담길 플라타너스를 외래종이라는 이유로 제거하려는 시도에 시민들은 더 이상 동의하지 않습니다.

환경보호 운동을 넘어 도시를 인간만의 공간이 아닌, 다양한 존재가 함께 살아가는 공간으로 새롭게 인식하는 감수성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멸종위기종이 아닌 동네 뒷산의 30년 된 아카시아 나무를, 희귀종이 아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딱따구리를 지키려는 이유는 그 자연이 희귀하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친근하게 생각할 수 있는 존재가 살아가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서울환경연합이 시작한 '시티트리클럽'은 이러한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시민이 직접 도시의 가로수를 맡아 기록하고 관계를 맺는 이 프로젝트의 베타테스트에는 약 750명이 참여했고 1100그루 넘는 나무가 기록되었습니다. 참여자들은 "매일 지나던 길에 자신의 나무가 있다는 사실 때문에 출근길이 기다려졌다", "나무를 관찰하다 보니 그동안 휴대폰만 보며 지나던 산책길에서 다양한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무와 친구가 된 느낌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시민이 나무와 우정을 쌓는 순간, 도시의 가로수는 더 이상 익명의 시설물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존재가 됩니다. 이처럼 시민들이 동네 하천의 왜가리, 골목길 가로수, 텃밭에서 만나는 곤충과 맺는 일상의 관계가 다종도시적 실천의 출발점입니다.
 시티트리클럽 서비스 화면
ⓒ 서울환경연합
새 서울시장에게 제안합니다

새 서울시장은 '생태도시'라는 익숙한 개념을 비판적으로 돌아보고, 도시를 인간만이 아닌 다양한 존재가 함께 살아가는 공간으로 새롭게 사유해야 합니다.

첫째, 자연을 녹색 인프라가 아닌 살아있는 생명으로 인식하는 정책 전환이 필요합니다. 서울의 거리에는 약 30만 그루의 가로수가 있습니다. 이 나무들은 미세먼지를 줄이고 여름의 열기를 식히며 도시 생물들의 서식처가 되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종종 '시설물'처럼 취급됩니다.

과도한 가지치기로 몸이 잘리고 공사와 광고물에 묶이며 관리의 대상이 되지만 생명으로서 존중받지는 못합니다. 공기를 정화하고 탄소를 흡수하는 기능으로만 자연의 가치를 측정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비인간 존재와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를 묻는 정책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아파트 숲(사유지)의 과도한 가지치기
ⓒ 서울환경연합
둘째, 비인간 존재의 권리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합니다. 최근 페루의 도시 나우타에서는 토착 무침벌에게 '존재하고 번성할 권리'를 법적으로 부여했습니다. 서울시도 '서울특별시 환경 기본 조례'에서 시민의 권리를 명시하듯 자연의 권리를 명문화하고, 시장이 특정 생태계나 생물종을 생태법인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개정해야 합니다. 서식지 변화에 치명적인 영향을 받는 철새, 시민과 상호작용하는 가로수를 시범적으로 서울형 생태법인으로 지정하는 것입니다.

나무의 권리가 실제로 작동하는 제도가 되려면 후견인 제도가 필요한데, 시민들이 가로수를 돌보는 신체적 감각이 기록으로 남는 것이 바로 그 제도의 가장 큰 기둥이 될 수 있습니다. 시티트리클럽에 참여한 시민들은 자신의 나무를 맡게 된 후 그 주변 환경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었고, 나무 주변의 쓰레기를 줍거나 훼손된 나무를 발견하면 기록을 남기고 공유하기 시작했습니다.

셋째, 그린워싱 개발 사업을 즉각 중단해야 합니다. 서울시가 추진하는 '녹지생태도심 재창조' 사업은 도심권 녹지 확충을 명분으로 민간 사업자에게 용적률을 과도하게 상향하고 높이 규제를 완화해 막대한 개발 이익을 몰아주는 초고층 난개발 정책입니다. 이는 경관을 사유화해 시민 모두가 공유해야 할 조망권을 소수의 고층 입주자가 독점하게 만듭니다.

세운지구나 용산국제업무지구 같은 주요 개발지에서는 공개공지, 저층부 정원, 옥상·벽면 녹지를 내세우면서 용적률을 최대 1500%까지 완화하는 식으로 초고층 개발을 정당화하는 정원도시라는 이름의 그린워싱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빌딩 숲 사이 대지와 단절된 녹지는 정원이 아니라 조각난 화분일 뿐입니다. 서울 도심의 역사적 맥락과 환경적 특성을 파괴하는 초고층 재개발 계획을 즉각 중단하고, 공공성과 역사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도심 관리 원칙을 수립해야 합니다.

언어를 바꾸면 도시가 바뀝니다

근대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우리는 자연을 언제나 개발과 성장의 자원으로 동원해 왔습니다. '생태도시'라는 이름조차 이 구조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언어가 바뀌어야 하고,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도 바뀌어야 합니다.

'다종도시'는 도시를 인간·인프라·동식물이 끊임없이 재조합되며 만들어가는 역동적인 생태로 이해하는 개념입니다. 이는 단순히 비인간 존재를 배려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도시 자연을 둘러싼 인간과 비인간 사이,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보다 정의롭게 만들어지는 것을 지향합니다.

새 서울시장은 추상적인 생태 담론을 삶의 언어로 번역하고, 신체와 감각으로 자연을 접촉하는 시민들의 경험이 정책과 행정에 가닿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나무를 관찰하기 시작하자 도시의 풍경이 달라 보였다는 시민들의 이야기처럼, 도시를 다종적 상호작용이 펼쳐지는 생태적 장으로 새롭게 인식하는 것, 그것이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서울을 만들기 위한 윤리적·정치적 출발점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이동이 서울환경연합 사무처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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