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크 마니아들이 기억하는 토종 드라이에이징의 시작 [쿠킹]

김광중 2026. 5. 19. 08: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매달 한 곳의 스테이크하우스를 찾아 그 집만의 고기 철학과 조리 방식, 공간의 결을 차분히 기록하는 〈스테이크의 정석〉을 시작합니다. 스테이크 전문가 김광중 셰프가 화제성보다 완성도에 주목해 스테이크 한 접시에 담긴 디테일을 짚어봅니다. 3회는 ‘구 스테이크(GOO STEAK)’입니다.

③ 구 스테이크(GOO STEAK)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 특유의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식감을 위해 팬 시어링 과정을 거친다. 팬과 열, 그리고 시간만으로 완성되는 정통 조리 방식이다. 사진 김광중

한국에서 스테이크의 ‘숙성’을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한 시기는 언제였을까요? 지금은 드라이에이징과 육향, 굽기와 페어링까지 자연스럽게 이야기하지만,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국내에서 스테이크는 ‘특별한 날 분위기 좋은 곳에서 먹는 서양식 메뉴’ 정도의 인식에 가까웠습니다.

제가 외식업에 종사하며 정통 스테이크와 해외 식문화를 관심 있게 보기 시작한 게 2010년대 초반입니다.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유튜브나 SNS에 미식 콘텐트가 다양하지 않았고, 대부분의 정보는 일부 커뮤니티나 TV 프로그램을 통해 접하던 시절이었죠. 스테이크는 한국식 직화구이와 다른 방식으로 고기를 썰어 먹는 경험 자체가 특별하게 받아들여지던 시절이었습니다. 고기의 품종이나 숙성 방식, 굽기와 향미를 깊이 있게 설명하는 공간도 드물었고, 소비자는 아직 그 차이를 체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만드는 사람들의 진심과 소비자의 이해 사이에도 분명한 간격이 있었죠.

GOO STEAK의 입구. 매장 앞에 놓인 와인병과 빈티지한 분위기에서는 오랜 시간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추억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사진 김광중

그런 분위기 속에서 등장해 스테이크에 대한 인식을 조금씩 바꿔놓은 공간이 바로 압구정의 ‘구 스테이크(GOO STEAK)’였습니다. 이곳은 단순히 유명한 스테이크 레스토랑이라기보다, 국내 외식 시장에서 드라이에이징이라는 개념을 보다 대중적으로 알린 상징적인 공간에 가까웠습니다. 2009년, 국내에서는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드라이에이징 방식을 전면에 내세우며 차별화를 시도했고, 스테이크를 단순한 메뉴가 아닌 ‘경험’으로 소비하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소비자 반응은 분명하게 갈렸습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깊고 진한 육향으로 기억됐고, 또 다른 이들에게는 낯설고 강한 숙성 향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실제로 지금도 리뷰를 보면 호불호가 꽤 뚜렷하게 나뉘는 편입니다. 저 역시 그런 궁금증 속에서 이 공간을 다시 경험하게 됐습니다.

다른 곳들이 굽기나 토핑, 가니시의 변화에 집중할 때, 이곳은 오픈 초기부터 드라이에이징이라는 방식 자체에 집중했습니다. 건조 숙성 방식인 드라이에이징은 일정한 온도와 습도, 바람의 조건 속에서 고기를 장시간 숙성시키는 방식입니다. 수분이 빠져나가는 대신 풍미가 응축되고 육향이 짙어지는 것이 특징이죠. 습식 숙성인 웻에이징(Wet-aging)에 비해 손실률이 높고 관리도 까다롭지만, 제대로 숙성되었을 때의 깊은 풍미 때문에 지금도 스테이크 애호가들이 선호하는 방식 중 하나입니다. 미국의 오래된 스테이크하우스들 역시 지금까지 드라이에이징을 브랜드의 정체성처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배경을 이해하는 사람들에게는 가격이 어느 정도 납득되겠지만,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는 여전히 “비싼 스테이크집”이라는 인식도 강했습니다. 실제로 지금도 대중적인 레스토랑이라기보다는 마니아층 중심의 공간에 가깝습니다.

스테이크를 가장 맛있게 즐기기 위한 굽기로는 미디엄 레어(MR)를 추천한다. 막 퍼지기 시작하는 육즙과 부드러운 식감, 드라이에이징 특유의 풍미를 가장 선명하게 느낄 수 있다. 사진 김광중

대표 메뉴는 포터하우스와 티본 스테이크입니다. 안심과 채끝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부위로, 안심의 크기에 따라 명칭이 달라지는데 GOO STEAK는 이를 비교적 정교하게 다루는 편입니다. 두툼한 고기를 강하게 시어링해 육즙을 가두고 표면에 크러스트를 만드는 방식 역시 이곳 스타일의 특징입니다. 드라이에이징 특성상 자칫 퍽퍽해질 수 있지만, 안정적인 온도 조절과 조리 기술을 통해 클래식한 미국식 스테이크 스타일을 구현해냅니다. 리뷰에서 자주 언급되는 견과류 같은 숙성 향이나 진한 육향 역시 이런 과정에서 비롯됩니다.

또 GOO STEAK가 기억되는 이유는 단순히 맛 때문만은 아닙니다. 미국식 스테이크하우스 분위기를 서울 한복판에 구현하려 했던 공간적 연출 역시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두운 조명과 와인 중심의 테이블 세팅, 붉은 톤의 인테리어와 묵직한 분위기는 당시 기준으로는 꽤 선명한 콘셉트였습니다. 미국 출장 경험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뉴욕 스타일 스테이크하우스를 떠올리게 하는 공간으로 이야기되기도 했습니다. 다만 시간이 흐르며 빈티지한 분위기가 다소 노후한 인상으로 이어지는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스테이크는 결국 음식뿐 아니라 공간과 분위기까지 함께 소비하는 장르이기 때문입니다.

서비스 역시 비교적 좋은 편입니다. 직원들이 숙성 상태나 부위 특징, 추천 굽기 정도를 설명해주고 와인 페어링까지 제안하는 방식은 단순한 주문 응대를 넘어서는 경험으로 느껴집니다. 테이블에서 직접 커팅해주는 퍼포먼스도 여전히 이곳을 상징하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와 묵직한 레드 와인의 조합 역시 이곳이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덕분에 이곳은 단순한 식사 공간이라기보다 기념일이나 비즈니스 미팅처럼 ‘경험 소비’를 위한 다이닝 공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매장 위쪽에 자리한 프라이빗 룸. 스테이크와 와인, 그리고 함께한 사람들과의 대화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다. 사진 김광중

과거 데이트 메뉴 정도로 소비되던 스테이크를 보다 전문적인 미식 문화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점도 의미가 있습니다. 〈수요미식회〉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알려진 이후에는 드라이에이징 입문 공간처럼 언급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높은 가격과 무게 단위 주문 방식은 여전히 진입장벽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숙성 과정의 손실과 관리, 그리고 풍미의 차이를 이해하는 사람들에게는 지금도 충분히 매력적인 공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이곳 이름에 들어간 ‘GOO’가 대표나 셰프의 성씨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입 구(口)’ 자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합니다.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 순간까지 완벽하길 바란다는 의미를 담았다는 이야기가 꽤 인상적으로 남았습니다.

직접 만든 티라미스는 식사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제격이다. 기념일이나 특별한 날을 위한 작은 디저트 서비스도 이곳의 오랜 특징 중 하나다. 사진 김광중

결국 GOO STEAK는 단순히 고기를 판매하는 레스토랑이라기보다, 숙성과 조리, 공간과 서비스까지 하나의 경험으로 설계하려 했던 브랜드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한국의 스테이크 문화 역시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지금도 가로수길 한편에서는 묵직한 숙성 향과 함께 스테이크가 구워지고 있습니다. GOO STEAK가 지금도 누군가에게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의 기준점처럼 남아 있는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겁니다.

김광중 셰프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