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천국’ 유럽도 안 봐준다…대통령 직접 등판한 순간들

삼성전자 노동조합(노조)의 파업을 막기 위해 정부가 언급하는 ‘긴급조정권(30일 파업 중지, 정부 중재)’은 과한 대응일까. 글로벌 주요국 사례를 분석한 결과 핵심 산업의 파업 국면에서 정부의 강제 개입은 ‘선택’이 아닌 ‘필수 조치’였던 경우가 다수였다.
18일 월스트리트저널(WSJ)·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노조 활동이 활발한 서구권 국가에서조차 노사 자율 해결이 어려울 경우 정부가 국가 경제를 이유로 들어 개입해왔다. 2022년 미국 철도노조 파업 사태가 대표적이다. 물류가 마비될 위기에 처하자 당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철도 및 항공 분규 해결을 위해 1926년 제정한 ‘철도 노동법(Railway Labor Act)’을 발동해 노조 파업을 강제로 중단시켰다. 의회에는 정부가 마련한 합의안을 노조에 강제하는 조치를 담은 ‘노사 합의 강제법안’을 통과시켜 달라고 촉구했다.
‘유니언(Union·노조) 조’라고 불릴 만큼 대표적인 친(親)노조 성향의 바이든이 “배신자”라는 비판을 받으면서까지 강하게 밀어붙인 결과 가까스로 파업을 막아낼 수 있었다. WSJ은 “철도 파업의 결과는 이념을 무너뜨릴 만큼 치명적이었다. 바이든은 옳은 선택을 했다”고 짚었다.
바이든은 2023년 전미자동차노조(UAW) 파업 당시에도 중재를 시도했지만 결국 파업을 막지 못했다. 당시 노조가 큰 폭의 임금 인상안을 받아들었지만, 결국 경쟁력 저하로 대규모 구조조정이란 후폭풍을 맞아야 했다.

2002년에는 미국 서부 29개 항만이 노사 분규로 폐쇄됐다. 하루 피해액이 20억 달러(약 3조원)에 달했다. 사태가 2주째로 접어들자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1947년 제정한 ‘태프트-하틀리 법(Taft-Hartley Act)’을 꺼내 들었다. 파업이 국가 안보와 경제를 위협할 경우 정부가 80일간 냉각기와 업무 복귀를 명령할 수 있도록 한 법이다.

강성 노조의 파업이 격렬한 유럽에서도 국가 공급망과 직결한 기간 산업이나 핵심 제조업이 마비될 땐 여지없이 정부가 등판했다. 프랑스 정부는 2022년 토탈에너지 등 정유사 노조가 10%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자 공공질서와 에너지 공급 안정을 이유로 ‘업무복귀 명령(Requisition)’을 발동했다. 명령을 거부한 핵심 인력은 행정력을 동원해 강제로 일터로 복귀시켰다. 노조가 반발해 소송을 제기했지만, 프랑스 최고행정법원은 “공공질서 유지에 필요한 최소 범위의 업무복귀 명령은 적법하다”며 정부 손을 들어줬다. 로이터 통신은 “파업은 헌법상 권리지만, 규제받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스페인도 비슷한 시기 자국 최대 에너지 기업 렙솔 노조가 파업을 예고하자 헌법 28조 2항(공동체 필수 서비스 유지를 위한 보장 조치)을 근거로 파업 기간에도 최소 20%에서 최대 100%에 달하는 인력을 강제 근무하도록 하는 ‘필수서비스 유지 명령(ServiciosMinimos)’을 발동했다. 스페인 정부는 “산업 생태계 파괴와 안보 위기를 막기 위해 필요한 조치”라며 조기 타협을 압박했다.
철저하게 시장을 통제하는 중국 정부도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2022년 애플 아이폰을 만드는 폭스콘 정저우 공장 파업 사태가 대표적이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봉쇄와 임금 문제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지만, 지방정부가 행정력을 동원해 방역 규정을 완화하고, 신규 인력 확보를 지원해 공장 운영을 정상화했다. 당시 중국 공산당 기관지 환구시보는 “정부가 기업을 돕고 글로벌 공급망의 안정성을 증진하기 위해 바통을 잡아야 한다”고 보도했다.
세계 각국 정부의 개입이 주로 철도·에너지 등 인프라 중심으로 이뤄진 만큼, 반도체 산업을 동격으로 놓을 수 있을지 따져봐야 한다. 국내 노동법상 쟁의가 발생하더라도 반드시 유지해야 하는 ‘필수유지업무’ 제도 범위에는 철도·항공·수도·전기·가스·병원 등만 포함된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삼성전자 반도체는 국가 수출과 공급망,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커 긴급조정권 발동 요건을 충족한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다만 긴급조정권이 정부가 가진 가장 강력한 카드더라도, 파업을 일시적으로 멈추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특히 파업을 시작해야 발동할 수 있기 때문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기 전 노사가 자율 조정하는 게 최선이다.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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