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우의 생활 속 AI] AI 동료를 세는 단위… 한 명 두 명이 맞나 한 대 두 대가 맞나

노예무역 땐 ‘인디아 조각·단위’ 쓰여
앞으로 바뀌는 건 노동의 일부일뿐
시트·세션·유닛 등 단어 바람직할 것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인공지능(AI) 에이전트 도입은 올해 들어 더 빠르게 확산되는 듯하다. 그러나 성과가 분명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지난달 발표한 조사에서 기업의 5%만이 AI 도입으로 뚜렷한 성과를 냈다고 답했다는 점은,기대와 현실 사이에 아직 큰 간극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우리는 직장동료가 AI 에이전트일 수도 있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AI 에이전트를 세는 적절한 단위는 무엇일까. 한 명, 두 명이라고 부르기에는 불편하다. 그렇다고 한 마리, 두 마리도 아니고 한 대, 두 대도 어색하다. AI 에이전트가 사람을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시계를 과거로 돌려보자. 노예무역 시대에 스페인어에 ‘피에사 데 인디아스’(pieza de Indias, 포르투갈어 peca da Indias)라는 말이 있었다. 이 단어를 직역하면 ‘인디아의 조각’ 또는 ‘인디아의 단위’ 정도가 된다. 여기서 인디아는 식민지 시대의 아메리카 대륙과 카리브 제도를 가리킨다. 이 말은 대서양 노예무역에서 쓰인 노예 환산 단위였다. 단순히 사람 한 명이 아니라, 보통 건강한 성인 노예 한 명을 기준으로 과세와 상업 계산을 하기 위한 표준 단위였다. 그 시기 끌려간 아프리카인들은 이름과 삶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거래 장부의 단위로 살아야 했다. 인간을 상품이나 노동력 단위처럼 취급한 비인간적이고 야만적 표현이다.

이처럼 단위는 인간에게조차도 새로운 사회적 지위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결국 단위는 중립적 용어가 아니라 비용과 노동, 그 노동의 의미까지 아우르는 사회적, 정치적인 언어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사회가 노동을 정의하는 방식이란 면에서 사람을 닮은 AI 에이전트를 세는 단위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AI 에이전트가 사람같이 생각하고, 말하고, 일을 한다는 측면에서 한 명, 두 명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AI 에이전트가 사람 그 자체를 대체할 수는 없다고 본다. 따라서 역설적으로 AI 에이전트는 ‘피에사 데 인디아스’와 같은 개념으로 세어야 한다. AI 에이전트는 도구일 뿐으로 그에 맞는 단위, 즉 시트(seat), 세션, 유닛 등의 단어로 세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 AI 에이전트 도입의 사회적 의미가 드러난다. AI 에이전트로 대체되는 것은 인간 그 자체가 아니라 노동의 일부여야 한다.
노예화된 아프리카인들의 강제 육체노동으로 설탕, 면화, 담배, 커피 같은 상품의 생산비를 낮춘 것처럼, AI 에이전트는 전문직 지식노동의 가격을 낮출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전 세계 고용의 약 40%가 AI에 노출되어 있고, 선진국에서는 약 60%의 일자리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미 기업들은 노동의 일부가 아닌 사람 그 자체를 AI 에이전트로 대체하고 있는 듯하다. 지난 3월에는 오라클이 3만여명을, 4월에는 메타가 전체 직원의 10%인 약 8000명을 감원했다. 또한 MS는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 내 인력 약 7%(8700명가량)를 대상으로 명예퇴직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국내에서도 이미 조짐은 보인다. 은행 콜센터와 게임업계에서는 변화가 이미 감지된다. AI 상담 증가와 콜 감소를 이유로 콜센터 인력이 해고 위기에 놓였고, 외주 상담 인력도 줄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게임업계에서는 AI를 통해 외주비와 제작비를 줄이겠다는 발언과 함께 희망퇴직, 채용 중단, 조직 축소가 나타났다. 역사에서 보듯이 기술의 진보는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지만 실업을 수반한다. 그러나 이번과 같이 사람이 하던 전문적인 노동을 도구가 대체하는 것은 처음 벌어지는 상황이다. 열심히 공부해서 전문직이 되는 것이 목표였던 세상이 흔들리며 가치체계도 교육체계도 모두 함께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미래가 반드시 암울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AI 에이전트는 의료, 법률, 교육, 행정, 번역 등 상당한 분야의 비용을 낮출 수 있다. 잘 이용된다면 전문지식 서비스의 가격이 내려가고, 중소기업과 개인도 고급 서비스를 이용하며, 노동시간 단축과 공공서비스 확대가 가능해진다. 문제는 그 생산성 향상의 이익이 어디로 가느냐이다. 이익이 소수의 플랫폼 기업, 클라우드 인프라 기업, 데이터 보유자, 자본 소유자에게만 집중되면 사회는 풍요로워져도 개인은 불안해진다. 그 이익을 복지, 공공 AI, 노동시간 단축 등에 배분하면 AI 에이전트는 일자리를 빼앗는 괴물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생산능력을 높이는 인프라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정책의 우선순위는 분명하다. AI 에이전트의 도입으로 생산성이 향상되었을 때 일정 부분은 사회에 환원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또한 사회에 첫발을 디디는 청년층과 고용이 불안해질 수 있는 장년층을 위한 다양한 형태의 교육과 고용유지 제도를 지금부터라도 논의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반도체 호황으로 이익이 급증한 일부 기업에서 벌어지고 있는 성과급 주장은 매우 불편하다. 급여는 노동자의 권리이지만 성과급은 아니다. 더구나 그 회사들의 이익은 AI의 등장으로 수요가 늘어 급증한 것뿐으로 생산성 향상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이 상황에서 자신들의 성과가 아님에도 성과급을 달라며 파업을 운운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 이익은 회사와 직원, 주주들 나아가 그 기업이 속한 사회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사용되는 것이 맞는다. AI 에이전트의 시대에 자기 손에 쥘 단기적이고 개인적인 이익만을 주장한다면 AI 에이전트가 그 사람의 노동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를 대체해도 할 말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대체된 사람에게 우리 사회가 어떤 책임이 있을까.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로마도 우리 사회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주)티티테라 대표이사·공학박사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 집 안 사고 월세 산다… 서울 초고가 월세 급증
- 10년 뒤 내 일자리 어떻게 되나…간호사 늘고 통역가 감소
- 있어도 못 쓰는 생리휴가… ‘이름’ 바꾸자 이용 늘었다[이세계도쿄]
- “회사 없애버려야”… 삼성전자 노조 부위원장 극언 시끌
- 아이유, ‘대군부인’ 역사왜곡 논란에 사과…“부끄러워”
- 5·18에 ‘탱크데이’?…스타벅스 “몰상식 마케팅” 논란
- ‘정원오 뒤 문신남’이 조폭?…“표면만 보고 인신공격”
- ‘사망자 88명’ 에볼라 발견까지 3주… 조용한 확산에 불리해진 대응
- 백악관 “트럼프·시진핑, 北 비핵화 공동 목표 확인”…이란전쟁과 함께 거론된 북핵
- 셀린 송 감독 “‘기생충’ 덕분에 한국적 영화 전세계에 받아들여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