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선릉에서 만난 왕사남

2026. 5. 19.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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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정식 수필가

세상이 대체 어쩌려고 이러는가? 끝을 모르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쇼킹한 베네수엘라 뉴스에 이어 늘어지는 이란전쟁으로 심란할 때 선정릉(宣靖陵)을 찾았다.

선정릉은 영원한 정(靜)의 상태로 들어간 조선 왕들이 누워있는 도심공원으로, 심신이 고단한 도시인들에게 피정(避靜)처 역할을 해왔다. 나 역시 생존과 자존의 문제로 갈팡질팡할 때면 이곳 숲길을 걸으며 냉(冷)과 정(靜)을 회복하곤 했다.

「 왕릉 자주 찾는 완도 출신 창환
고향 내력이라며 항상 웃는 표정
과거의 내 표정 왜 그리 굳었던가

선정릉 입구에서 세 개의 능까지 걷다 보면 다양한 활엽수와 봄꽃을 만난다. 입구에선 황매화가 개나리는 떠나도 봄은 여전히 노란색이라고 알려준다. 라일락 향기 속에 하얀 쌀밥을 매단 이팝나무도 만난다. 마사토 산책로 양옆엔 군데군데 철쭉이, 그 아래 풀밭에는 민들레가 삼삼오오 피어있다. 왕릉 가까이에 다다르면 가지를 늘어뜨린 소나무들과 한자 남짓한 바닥 디딤돌들이 능으로 가는 길을 인도한다.

그날은 왕릉에 쉽게 가려고 지름길을 택했다.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잰걸음으로 숲을 가로지르는가 싶더니 꿩 한 마리가 ‘꿔겅’ 단발 울음소리를 내며 일직선으로 날았다. 꿩을 의미하는 ‘치(雉)’자에 화살 시(矢) 변이 들어간 것이 순간 이해되었다.

그때 뒤에서 “야~ 꿩 오랜만에 보네” 하는 탄성이 들렸다. 그에게 물었다. “전에도 꿩을 자주 보셨어요?” “고향에서요. 봄 꿩은 울지 않는데, 오늘은 고양이 때문에 꿩이 놀란 것 같습니다. 요즘은 산란기라 꿩들이 예민하거든요.” 미소를 머금고 말하는 그는 베토벤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었다.

“제 고향은 완도의 부속 섬 고마도입니다. 완도 일대에는 꿩이 많지요.” 자신을 ‘창환’이라고 소개한 그는 ‘왕사남’이라고 불러도 좋다고 했다. “왕사남이라면 왕과 사는 남자요?” “그렇습니다. 저는 이 근처에서 사람 상대하는 일을 하는데 자주 이곳에 옵니다. 주말엔 가끔 헌인릉에도 가고요. 왕릉에 오면 역사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 듭니다. 그 맛에 자주 오곤 하지요.”

유머 섞인 몇 마디 대화로 가까워진 그와 산책을 마무리하며 헤어 스타일이 인상적이라고 하자 “제 고향 선배인 장보고의 스타일입니다”라고 답했다.

며칠 후 선정릉에서 창환을 다시 만났다. 웃음기 가득한 그에게 “뭐가 그리 좋아 늘 웃나요?”라고 묻자 그는 말했다. “완도가 고향이라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완도(莞島)의 완(莞) 자는 ‘빙그레 완’ 자입니다. 완도는 진도에 비해 바다에 생계를 맡기고 고단하게 살아가는 분들이 많았지요. 그래선지 ‘울면 더 서러워지고 웃으면 더 기뻐진다’는 말이 전해 내려옵니다. 고단한 삶의 한(恨)을 웃음으로 바꿔보라는 말이지요.”

창환에게 완도가 섬이라 꿩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하자 이렇게 답했다.

“완도에는 꿩과 관련된 해학이 전해 내려올 정도로 꿩이 많습니다. 하루는 밭일을 하던 어르신이 농작물을 보호하려고 밭 주위에 그물을 쳤는데 꿩이 걸렸답니다. 어르신은 ‘이게 웬 떡이냐’ 싶어 서둘러 꿩 털을 뽑은 후 막대기에 묶어 놓았는데, 죽은 척하던 꿩이 도망쳤대요. 꿩이 없어진 것을 알게 된 어르신은 ‘그래 봤자 꿩 저만 춥지’라며 혼잣말로 마음을 달랬다고 합니다.”

창환에게 완도와 장보고 이야기를 더 해달라고 했다.

“장보고와 완도 사람들은 사치품이었던 도자기를 팔며 바다를 누볐습니다. 그들은 고객인 중국인이나 일본인들과도 잘 지내야 했죠. 해외고객들에게 먼저 미소 지으며 마음을 샀을 겁니다.”

왕사남, 창환을 만난 후 나는 ‘지난날의 나’도 만났다. 과거의 나는 늘 샹그릴라를 꿈꾸며 이상향은 저 멀리에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가보지도 않은 피안의 땅 샹그릴라를 그리며 불만 속에 살았다. 그 무렵 사진을 보면 얼굴은 굳어있고 표정은 심각했다. ‘바로 이곳’을 천국으로 만들지 않고 피안의 땅만 찾아 헤맸던 탓이다. 내가 먼저 웃으면 이웃도 함께 웃었을 텐데. 인간관계를 동락(同樂)의 모드로 바꾸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것 그것이 곧 행복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인생은 낮은 자세로 나를 팔고 남을 사는 과정이 아니던가. 하늘도 복을 줄 때는 주변 사람을 통해 준다고 했다. 나 역시 이젠 누군가에게 복의 전달자가 되어도 좋지 않겠는가?

곽정식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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