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은 <모자무싸> 포옹 장면, 불편했지만 변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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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주 기자]
JTBC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을 위해 싸우고 있다>(아래 모자무싸) 9회를 보면서, 이제까지 중 가장 '헉' 하는 장면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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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자무싸 9화 논란의 그 장면 놀랍게도 내가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저렇게 하면 가디건 늘어나는데, 였다. 그리고 나서는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는 대략 스쳤다. 이 장면이 단순한 연인의 포옹이 아니라, 모성적 보호와 이성적 사랑의 경계를 일부러 흐리고 있다는 것. 그래도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 살짝 과잉적이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
| ⓒ JTBC |
"내 속에 두 놈이 날뛰어요. 데뷔한다, 신난다. 큰일 났다. 어서 도망가, 얼른 도망가. 한 놈을 죽여야 해. 어떻게 죽이지? 감독이라고 하면 '뭐 했냐'는 질문이 세상 제일 괴로웠는데, 이제 나도 할 말이 생겼다. 그러다가도 끝까지 완주 못하면 어떡하지? 줄반장도 못 한 놈이 어떻게 200명을 이끌어가. 못한다고, 개망신당하기 전에 그만두라고, 시끄러워, 할 거라고, 어마어마하게 무서울 건데 무섭다고 말하면 없어 보일까 봐. 그게 더 무서워요."
그 말을 듣던 은아가 동만의 옆자리로 옮겨 앉는다. 클리셰가 시작되는구나 했다. "걱정하지 마요, 내가 옆에 있으니까요, 내가 도와줄게요, 할 수 있어요 감독님." 이런 대사가 나올 줄 알았건만 완전 틀렸다.
"걱정하지 마요. 도망가고 싶다고 하면 내가 도망가게 해줄 거예요. 어떻게든. 두려움은 견디는 게 아니에요. 그건 견딜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런 걸 견뎌요? 그렇게 두지 않을 거예요. 어려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이유는 하나였어요.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거. 지옥스럽게 견디지 않아도 된다는 거. 가슴은 어디 붙었는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두근대는데 아무렇지 않게 학교에 가고, 혼자 먹고, 혼자 자고, 그랬던 공포 감독님이 겪게 두지 않을 거예요."
아, 내가 여기 있으니 두려움을 극복하라고 말하는 게 아니구나. 은아는 두려움의 위력을 아는 사람이구나. 두려움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 그저 인정해주며 도망가도 된다고 말해주는 것이구나. 내가 생각하는 두려움 앞에서의 '사랑'보다 한 발 더 나아간 대사였다.
여기까지만 해도 머리가 띵 한데 문제의 장면이 등장한다. 당연히 포옹을 하겠지 하고 다가갔는데 은아는 자신의 가디건 안으로 동만을 품어 안는다. 그리고 말한다. 같이 도망가자고 하면 같이 도망갈 거고, 평생 숨어 살자고 하면 같이 숨어 살 거라고.
방송 후 각종 SNS와 유튜브 댓글에 이런 댓글들이 있었다.
'이 작가 특유의 남미새 감성이 너무 킹 받음.'
'포옹 장면이 좀 역하네요. 과한 느낌.'
'여자는 연민 동정 때문에 인생 망한다던데 착실히 보여주고 있는 드라마네.'
'그냥 안아주면 되지 굳이? 몰입 박살나네. 뭐 강한 엄마 되고 싶다던 게 황동만 엄마 되고 싶다는 거임? 황당 그 자체네.'
내가 할 말을 잊었던 것도, 저 말들에 완벽히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부인할 수만도 없는, 비슷한 이유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장면은 분명 불편한 구석이 있다. 현실적인 포옹으로만 보면 이상하다. 과하다.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나 역시 처음에는 그랬다.
다만, 과연 그게 전부일까. 불편하다는 감각 하나만으로 이 장면을 실패한 장면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나는 그게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내 안을 뒤적거리고 싶어졌다. 이 장면이 왜 이토록 과한 방식으로 밀고 나갔는지, 그 과잉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생각해보고 싶었다.
구씨를 "업고 싶다"고 한 <나의 해방일지> 염미정
나는 이 장면을 액면 그대로 보기보다는 상징적으로 보기로 했다. 물론 인물을 하나의 상징으로만 가두는 것은 위험하다. 동만은 동만이고, 은아는 은아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인물들을 통해 반복해서 밀고 가는 정서의 좌표가 있다. 동만은 무가치하고 찌질한 '현실'이고, 진만은 그 현실에 치여서 이탈하고 싶어 하는 '회의', 그리고 은아는 이 모든 것 위에 우리에게 다가와줬으면 하는 희망인 '이상' 자체다.
이런 구조를 놓고 보면 내가 이전에 썼던 글처럼 황동만이 버거운 것이 이해가 된다. 이 캐릭터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의 '무가치함'을 의인화한 것이니까. 또한 '연민'과 '동정', 더 나아가 '모성'으로 보일 만큼 동만에게 '사랑'으로 다가가는 은아도 이해할 수 있다. 그게 무가치한 이들을 일으키고 살리는 '이상'이니까.
아내는 드라마를 보면서 말했다. "오빠는 꼭 황동만 같은 모습이 있어." 정확했다. 누차 말한 적 있지만, 나는 좋게 말하면 소년미를 잃지 않은 사람이고, 나쁘게 말하면 철없고, 현실감각 떨어지고, 찌질하고, 무가치하고 뭐 그런 사람이다.
실제로 황동만처럼 굴었고 살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나일 수 있었던 것은 은아처럼 아내가 내가 같이 도망가자고 하면 같이 도망가 줬고, 평생 숨어 살자고 하니 같이 숨어 살아줬기 때문이라는 걸 부인할 수가 없다.
낡아빠진 '바보 온달' 서사를 들먹이려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누군가의 찌질함을 다른 누군가의 헌신으로 미화하는 이야기는 너무 낡았고, 때로는 위험하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연민과 동정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삶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그러니 이 장면을 불편하게 보는 시선도 이해된다. 나 역시 그 불편함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았다.
다만, 이런 질문을 해보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렇게 무가치함에 시달리고 죽어가는 이들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는가? 두려움에 질식해 도망치고 싶은 사람에게 우리는 대체 무엇을 줄 수 있는가. "힘내"인가. "버텨"인가. "네가 선택한 길이잖아"인가. "어른이면 책임져야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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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살짜리 당신을 업고 싶어 한 살짜리 당신을 업고 싶어, 는 단순히 모성적인 쉰내(?) 나는 고백이 아니다. 내가 잘 모르는 당신의 과거와 순수, 연약함, 그 모든 것을 어떤 조건도 없이 존재 자체로 받아주고 싶다는 말에 가까울 것이다. 그야말로 ‘이상’을 상징하는 미정이가 보여주는 ‘추앙’이다. |
| ⓒ JTBC |
박해영 작가는 이걸 이런 상징들로 표현한 것뿐이라고 여겨진다. 이번 논란의 장면은 <나의 해방일지>에서 '이상'을 맡았던 염미정이 구씨에게 했던 추앙의 또 다른 변주처럼 보인다. 구씨는 미정과 한 번 이별을 하면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너도 웬만하면 서울 들어가 살아. 평범하게. 사람들 틈에서."
"지금도 평범해. 지겹게 평범해."
"평범은 같은 욕망을 가질 때. 그럴 때 평범하다고 하는 거야. 추앙, 해방 같은 거 말고 남들 다 갖는 욕망. 니네 오빠 말처럼. 끌어야 되는 유모차를 갖고 있는 여자들처럼."
"애는 업을 거야. 당신을 업고 싶어. 한 살짜리 당신을 업고 싶어."
한 살짜리 당신을 업고 싶어, 는 단순히 모성적인 쉰내(?) 나는 고백이 아니다. 내가 잘 모르는 당신의 과거와 순수, 연약함, 그 모든 것을 어떤 조건도 없이 존재 자체로 받아주고 싶다는 말에 가까울 것이다. 그야말로 '이상'을 상징하는 미정이가 보여주는 '추앙'이다.
불편했지만 오래 남는 이유
바로 이 "한 살짜리 당신을 업고 싶어"라는 말과 <모자무싸>에 나오는 카디건 포옹 장면은 같은 결을 가진다. '현실'을 상징하는 동만이 비로소 자신의 꿈에 도달했을 때, 오히려 지독한 '회의'와 두려움으로 빠져든다. 그 순간 '이상'인 은아는 그것을 조언하지 않는다. 가르치지 않는다. 정신 차리라고 하지 않는다. 어른이면 버티라고 하지 않는다.
그저 숨겨준다. 덮어준다. 같이 도망가겠다고 말한다. 평생 숨어 살자고 하면 같이 숨어 살겠다고 말한다. 나는 이 장면이 누군가의 엄마가 되겠다는 말이라기보다, 잠시나마 세계가 되어주겠다는 말에 가깝다고 느꼈다. 네가 도망칠 수 있는 세계. 네가 실패해도 사라지지 않는 세계. 네가 무가치하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너를 내버리지 않는 세계.
물론 이것은 위험한 사랑이다. 현실에서 이런 사랑은 쉽게 자기희생으로 타락할 수 있고, 누군가의 인생을 갉아먹는 구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 장면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정당하다. 나도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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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갇혔을 때 돌파하세요 은아와 동만이 만나는 기찻길목에서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은 ‘갇혔을 때 돌파하세요’라는 문구지만, 그보다 앞에는 ‘정지’라고 쓰여 있다. 대부분의 ‘사랑’이 거기서 막혀서 돌아간다. 하지만 은아를 통해 작가가 보여준 이상적 사랑인 추앙은 정지하지 않고, 그걸 뚫고 들어가 끝내 돌파해낸다. |
| ⓒ JTBC |
이 장면이 완벽하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불편하지 않았다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불편했다. 과했다. 그런데 인간을 살리는 사랑은 원래 조금 과하다. 무너지는 사람을 붙드는 일은 늘 적정선을 넘나든다. 무가치함에 갇힌 인간을 꺼내는 사랑은 교양 있는 표정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때로는 카디건이 늘어날 만큼, 품이 망가질 만큼, 보는 사람이 움찔할 만큼 이상적인 사랑이 필요하다.
그 사랑이 현실에서 늘 옳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드라마는 말할 수 있다. 인간은 그런 사랑을 꿈꾸며 겨우 살아간다고. 그러니 나는 이 장면을 끝내 변호하고 싶다. 불편했지만, 오래 남았다. 과했지만, 부인할 수 없었다. 이상했지만, 이상하게도 사람을 살리는 방식처럼 보였다. 어쩌면 사랑은 원래 그런 방식으로 우리를 붙잡는지도 모르겠다. 조금 민망하고, 조금 과하고, 조금 낡아 보이는데, 끝내 부인할 수 없는 방식으로.
아무래도 나는 끝내 이런 박해영식 추앙의 파워를 믿고 싶은 사람인가 보다. 그래서 나는 그 장면을 변호할 수밖에 없다. 드라마에서라도 좋으니 그놈의 사랑은 절대 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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