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전쟁 재확전 초읽기...사우디·UAE 공격 받자 트럼프는 강한 경고
한 달 넘게 가까스로 눌러놓은 이란 전쟁의 불씨가 미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이란 모두 군사적 선택지를 꺼내 들면서 사실상 재확전의 문턱으로 들어섰다. 17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가 이란 소행으로 추정되는 공격을 받은 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란을 향해 무력 행사를 예고했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전화로 상황을 공유하며 공격 재개 가능성을 논의했다.
UAE 원전 주변 첫 타격…사우디도 이라크발 드론 요격
전운 고조의 직접적인 도화선은 중동 내 미국의 핵심 동맹국들을 겨냥한 연쇄 타격이다. UAE 정부는 이날 서쪽 국경 방향에서 자국 영공으로 진입한 드론 3기 가운데 2기를 요격했고, 나머지 1기가 아부다비 알다프라 지역 바라카 원자력발전소 외곽의 전력 발전기를 타격해 화재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인명 피해나 방사성 물질 유출은 없었고, 피해를 입은 설비는 비상 전력으로 가동되고 있다.

바라카 원전은 한국전력이 자체 기술로 수출해 건설한 아랍권 최초의 상업용 원전으로 현재 한국 직원 300여 명이 체류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AP통신은 “이란 전쟁 발발 이후 바라카 원전이 공격 대상이 된 첫 사례”라고 전했다. 한전 측은 “우리가 관리·운영하는 원전에 직접적인 공격이 있었던 게 아니라 외곽의 다른 전력 설비에 화재가 난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날 사우디 국방부도 이라크 영공에서 자국으로 들어온 드론 3대를 요격했다고 발표했다. 사우디는 “주권과 안보를 침해하려는 어떤 시도에도 필요한 작전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UAE와 사우디를 겨냥한 타격의 배후는 아직 공식 발표된 건 없지만 이란 또는 이란의 지원을 받는 이라크 내 친이란 민병대 같은 대리 세력의 소행일 가능성이 거론된다. 특히 방사능 유출 등 대형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는 원전 타격이 현실화됐다는 점에서 전쟁이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시각도 있다. 그간 호르무즈해협과 정유시설, 항만을 겨냥해온 위협과는 차원이 다른 만큼 미국과 동맹국들의 강력한 군사적 보복 명분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트럼프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네타냐후도 재공격론
이들 공격 소식이 전해진 뒤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이란을 향한 압박 메시지를 내놨다. 트럼프 대통령은 17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이란의 시계는 째깍거리고 있다”면서 “서둘러 움직이는 것이 좋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들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마치자마자 미국의 요구에 부응하는 종전안을 이란에 독촉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미 군함이 이란 전투기를 격추하는 인공지능(AI) 생성 영상을 게시하며 무력 행사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는 미 매체 악시오스와의 인터뷰에서도 “더 나은 협상안을 가져오지 않으면 이전보다 강력하게 이란을 공격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군사적 선택지를 다시 꺼내 드는 움직임도 구체화하고 있다. 악시오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19일 백악관 상황실에서 안보 관계자들과 대이란 군사옵션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지난 16일 워싱턴 인근 자신의 골프장에서 JD 밴스 부통령,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존 랫클리프 중앙정보국(CIA) 국장, 스티브 위트코프 중동 특사 등 핵심 참모들과 이란 문제를 논의했다고 한다.
미 국방부도 군사작전 재개에 대비한 준비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NYT)는 익명을 요구한 중동 지역 당국자 2명을 인용해 “미국과 이스라엘이 공격 재개를 염두에 두고 집중적인 준비 태세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 역시 보조를 맞췄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네타냐후 총리는 17일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로 이란 공격 재개 가능성을 논의한 데 이어 각료회의를 소집해 전투 상황을 점검했다.
해저 케이블 통제권 꺼내든 이란…글로벌 디지털 재앙 맞불
미국과 이스라엘의 전방위적인 압박에 대비해 이란은 새로운 대응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전 세계 인터넷망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해저 통신 케이블이 지렛대로 등장한 것이다. 이란군을 통합 지휘하는 하탐 알안비야 중앙군사본부의 에브라힘 졸파가리 대변인은 지난주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우리는 (호르무즈 해협) 인터넷 케이블에 요금을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글·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호르무즈해협 해저 케이블 이용료를 내고 케이블 수리와 유지보수 권한도 이란 기업에 맡겨야 한다는 논리다. 이란혁명수비대(IRGC)와 연계된 매체들도 비슷한 방안을 언급했다.

호르무즈해협 해저에는 유럽과 아시아, 페르시아만을 잇는 주요 대륙 간 통신망이 지나간다. 이란이 소형 잠수함이나 수중 드론 등을 동원해 케이블을 파손할 경우 금융망·군사 통신·AI 클라우드 인프라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는 그래서 나온다. UAE 훕투르 연구소의 무스타파 아흐메드 수석 연구원은 “어떤 공격이라도 여러 대륙에 걸쳐 연쇄적인 ‘디지털 재앙’을 촉발할 수 있다”고 CNN에 말했다. 실제 2024년 홍해에서는 후티 반군의 공격을 받은 선박이 표류·침몰하는 과정에서 해저 통신 케이블 여러 개가 손상돼 관련 데이터 트래픽의 약 25%가 영향을 받은 전례도 있다.
이스라엘, 이라크 내 비밀기지 운용…새로운 확전 뇌관
이스라엘이 적대국인 이라크 영토 내에서 이란에 대한 공습용 비밀 군사기지를 운용해왔다는 보도도 재확전 관측에 힘을 싣는다. 17일 NYT는 이라크 정부가 의회에 낸 비공개 보고서를 인용해 이스라엘이 기존에 알려진 서부 알누카이브 인근 비밀 기지 외에도 또 다른 비밀 기지를 이라크 내에 추가로 운영해왔다고 보도했다. 앞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9일 이스라엘이 이란 전쟁 발발 직전 이라크 서부 사막에 구축한 비밀 기지를 특수부대 전진 기지로 활용했다고 전했다.

관련 보도는 이란의 반발을 더 키울 가능성이 크다. 이란 입장에선 이라크가 이스라엘의 공격 통로로 활용됐다는 주장을 펼칠 명분이 생겼다. 이라크 내 친이란 민병대가 무장 해제를 거부한 채 공세를 위한 구실로 활용할 여지도 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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