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위는 태양광, 산 아래는 ‘거대 배터리’…에너지 진화 현장 가보니 [현장+]

이수민 2026. 5. 18.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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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의 폭발적인 전력 수요 속에서 안정적인 전력망 구축이 국가 경쟁력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발전량 변동성이 큰 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이를 안정적으로 뒷받침할 ‘유연성 전원’ 확보 중요성도 커지는 상황이다. 한국수력원자가 전격 공개한 경북 안동 임하댐 수상태양광과 예천양수발전소 현장은 그 해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공간이었다.

16일 방문한 경북 안동 임하댐의 잔잔한 수면 위로는 축구장 70여 개 면적(약 52.1만㎡)에 달하는 태양광 모듈 8만7480개가 태극기와 무궁화 모양을 그리며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설비 용량은 47.2MW 규모로, 연간 약 2만 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6만1670MWh의 전력을 생산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수상태양광 시설이다. 산지나 농지를 훼손하지 않아 부지 확보가 용이하고, 수면의 냉각 효과 덕분에 육상 태양광보다 발전 효율도 높다.

태극기와 무궁화 모양의 임하댐 수상태양광.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무엇보다 이곳은 전력망 포화와 지역 수용성이라는 재생에너지 확대의 고질적 난제를 동시에 풀어낸 상징적 현장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사업 초기만 해도 경북 지역의 전력계통 포화 문제로 공사가 일시 중단되기도 했지만, 새로운 운영 방식 도입으로 돌파구를 마련했다. 현장에서 만난 박종암 한국수자원공사 팀장은 “수년간 축적한 빅데이터를 분석해 낮에는 태양광 전기를 보내고 밤에는 수력발전소를 가동하는 ‘교차발전’ 방식을 국내 처음으로 도입해 송전선로 포화 없이 활용도를 극대화했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지역 사회와 환경, 최첨단 기술이 완벽히 맞물려 돌아가는 설계를 만들고자 했다. 그 결과가 경상북도와 안동시가 주도하고 한수원과 수자원공사가 시행한 ‘국내 1호 주민참여형 재생에너지 집적화 단지’다. 박 팀장은 “인근 33개 마을 주민들이 마을 법인을 세워 직접 지분에 참여했다”며 “발전 수익과 특별지원금 등을 통해 향후 20년간 약 222억 원의 혜택이 주민들에게 골고루 돌아가는 상생 모델을 구축했다”고 강조했다.

예천양수_상하부댐.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물 위에서 재생에너지의 확장 가능성을 확인한 뒤, 취재진은 간헐적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저장하고 공급할 ‘그릇’을 찾아 경북 예천으로 향했다. 은풍면 골짜기에 자리 잡은 예천양수발전소는 전력 수급이 요동칠 때 투입되는 전력망의 최후의 보루이자 거대한 물리적 배터리(ESS) 역할을 수행하는 곳이다.

임석채 예천양수발전소 발전부장은 “이곳은 국책 사업 추진 과정에서 흔히 발생하는 지역 주민들의 반대를 극복하고 주민 수용성 면에서 모범을 보인 사례”라며 “과거 낙후된 지역경제를 회복하기 위해 당시 지역 주민 16000여 명이 자발적으로 적극적인 건설 유치 서명과 경쟁에 나섰던 상생의 롤모델이기도 하다”고 소개했다.

734m 길이의 진입 터널을 지나 지표면 기준 지하 95m 깊이까지 깊숙이 내려가자, 길이 129m, 폭 26m, 아파트 13층 높이(약 53.5m)에 달하는 압도적인 위용의 지하 공동형 발전소가 나타났다. 이곳에는 단일 호기 기준 최대 규모인 400MW급 수차발전기 2기(총 800MW)가 설치돼 국가 전력망의 안정성을 책임지고 있었다. 발전기의 육중한 기계음과 진동은 마치 거대한 심장박동처럼 공간 전체를 울리고 있었다.

양수발전의 원리는 단순하지만 강력하다. 전력 수요가 적은 심야 시간이나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의 잉여 전력이 넘쳐날 때, 하부 저수지(900만 톤)의 물을 484m 낙차가 있는 상부 저수지(700만 톤)로 펌핑해 올린다. 전기를 일종의 ‘위치 에너지’ 형태로 저장해 두는 것이다. 이후 전력 수요가 급증하거나 전력 계통에 변동성이 발생하면, 저장했던 물을 거센 압력(최대 103m³/s, 초당 103톤)으로 아래로 떨어뜨려 수차를 회전시키고 즉각 전기를 생산한다.

최근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이 거대한 ‘물 배터리’의 가치는 더욱 독보적으로 변모하고 있다. 임 발전부장은 “양수발전은 단순히 전력 판매만을 위한 시설이 아니라, 전력 계통이 불안정해질 때 즉각 투입돼 전체 시스템을 안정화하는 병원의 ‘응급실’과 같다”고 비유했다. 실제로 원자력발전이 가동에 약 40시간, 화력발전이 14시간 이상 걸리는 반면, 예천양수발전소는 급전 지시 후 단 3~5분이면 100% 출력에 도달할 수 있다.

예천양수_상부댐.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대규모 광역 정전(블랙아웃) 사태 발생 시 전력망의 불씨를 다시 지피는 마중물 역할 역시 양수발전의 몫이다. 외부 전력 공급 없이 스스로 기동해 전기를 생산하고, 이 전력을 다른 대형 발전소들에 공급해 엔진을 돌려주는 ‘불쏘시개’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매년 약 9억5000만원의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 사업비와 약 6억4000만원의 지방세 세수 증가 효과를 창출하며, 지역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도 하고 있다.

에너지 전환의 거대한 파고 속에서 전통적인 발전 방식과 신기술은 조화를 이루며 진화하고 있었다. 지역 주민과의 끈끈한 상생으로 임하댐 수면 위를 수놓은 수상태양광 모듈부터, 예천의 거대 암반 아래서 분당 400RPM으로 묵묵히 돌아가는 양수발전 터빈까지. 취재 현장에서 목격한 전력 산업의 실태는 다가오는 AI 시대의 폭발적인 전력 수요와 급변하는 산업 지형 속에서 에너지 안보를 지켜내기 위한 해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수민 기자 breathmi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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