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전력 심장부, 신한울 원전을 가다 [르포]
신한울1호기서만 연간 8821GWh 생산…서울 전력수요 18% 담당
신한울3·4호기는 공정률 29.8%
"안전은 타협 불가"…3중·4중 안전설계 갖춘 한국형 원전

경북 울진군 북면으로 향하는 길 끝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바다보다 거대한 회색 돔이었다. 동해를 마주한 신한울 원전. 잔잔한 봄바다 옆으로 크레인이 움직이고, 덤프트럭이 흙먼지를 일으켰다. 원자로는 쉼 없이 돌아가고 있었고, 그 옆에서는 또 다른 원전이 세워지고 있었다.
정부세종청사에서 버스로 3시간 30분. 원전이 들어선 작은 어촌 마을은 지금 거대한 산업 현장이 돼 있었다. 한울1~6호기와 신한울1·2호기가 가동 중이고, 신한울3·4호기 건설도 동시에 진행 중이다. 계획예방정비에 들어간 한울5호기 정비 인력까지 몰리면서 식당과 숙소, 편의점마다 작업복 차림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지난 14일 AI와 데이터센터, 반도체 공장이 폭증하는 시대. 대한민국 전력 시스템의 핵심 기지인 신한울 원전 내부를 직접 들어가 봤다.
원전은 입구부터 분위기가 달랐다. 출입 절차는 공항 검색보다 더 엄격했다. 사전에 제출한 신원 정보로 출입 허가를 받아야 했고, 현장에서는 다시 신분 확인을 거쳤다. 스마트폰과 노트북 등 전자기기는 모두 외부에 맡겨야 했다.
두꺼운 방호문을 지나자 거대한 원자로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둥근 돔 형태의 격납건물은 높이만 76.66m. 아파트 27층 규모다. 가까이서 본 건물은 단순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요새에 가까웠다.
신한울1·2호기에 들어간 철근은 총 10만3000t. 63빌딩 건설에 쓰인 양의 13배 수준이다. 격납건물 외벽 두께는 최대 1.22m에 달한다. 내부 압력을 외부보다 낮게 유지해 만약 문제가 생겨도 방사성 물질이 외부로 빠져나가기보다 외부 공기가 안으로 빨려 들어오도록 설계됐다.
원전 곳곳에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강화된 안전 개념이 녹아 있었다. 비상발전기 같은 핵심 설비는 지상에 배치했고, 방수문도 별도로 설치했다. 동일본 대지진 당시 후쿠시마 원전은 지진보다 뒤이은 쓰나미 침수 피해가 더 치명적이었다. 신한울은 그 사고 이후를 기준으로 설계 철학 자체가 달라졌다는 설명이다.
신한울1·2호기는 한국형 신형 원전(APR1400) 노형이다. 기존 원전보다 출력은 약 40% 커졌고 설계수명도 40년에서 60년으로 늘어났다. 내진 성능 역시 기존 0.2g에서 0.3g 수준으로 강화됐다. UAE 바라카 원전에 수출된 모델과 같은 노형이다.
원전의 심장부인 주제어실(MCR)은 예상과 달리 조용했다. 문이 열리자 어두운 공간 안으로 수십 개 모니터 불빛이 펼쳐졌다. 대형 화면에는 발전소 상태가 실시간으로 표시되고 있었고, 운전원들은 거의 말을 하지 않은 채 계기와 수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3교대로 근무하는 운전원들은 발전소 상태를 24시간 감시한다. 자리를 오래 비울 수 없어 식사도 배달된 도시락으로 해결한다고 했다. 디지털 제어 시스템 옆에는 아날로그 패널도 남아 있었다. 디지털 시스템이 고장났을 경우를 대비한 백업 장치다. 황민호 주제어실 운영실장은 "운전원들은 근무 시간 내내 긴장 상태를 유지한다"며 "퇴근 후 회사 전화만 와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는 말을 많이 한다"고 했다.
터빈 건물로 이동하자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굉음과 열기가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원자로에서 만들어진 열은 증기발생기를 거쳐 초고온·고압 증기가 되고, 이 증기가 터빈 날개를 분당 약 1800회 회전시킨다. 터빈과 연결된 발전기가 전기를 생산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만들어지는 전기는 수도권 산업단지와 데이터센터, 반도체 공장으로 이어진다. 신한울1호기 한 기가 지난해 생산한 전력은 약 8821GWh. 서울시 연간 전력 사용량의 약 18% 수준이다.
원전 내부에서 가장 낯선 공간은 사용후핵연료저장조였다. 어둠 속 물(붕산수)이 가득 찬 거대한 수조 안에는 사용을 마친 핵연료가 보관돼 있었다. 물 자체가 강력한 방사선 차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원전은 약 18개월마다 계획예방정비를 실시하는데, 이 과정에서 사용후핵연료 일부를 저장조로 옮기고 새 연료로 교체한다.

원전 밖으로 나오자 다시 거대한 공사 현장이 펼쳐졌다. 신한울3·4호기 건설 현장이다. 끝없이 이어진 부지 위로 크레인과 중장비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약 41만평 규모 부지에서는 3호기 원자로 건물 철판(CLP) 설치 작업이 진행 중이었고, 4호기는 기초 콘크리트 타설 준비가 한창이었다.
2026년 4월 말 기준 신한울3·4호기 종합공정률은 29.8%다. 3호기는 원자로 건물과 터빈 건물, 해수 취수설비, 송전 계통 등 주요 구조물이 동시에 올라가며 본격적인 골격을 갖춰가고 있었다. 바다 쪽에서는 냉각 효율을 높이기 위한 해저 취수 터널 공사도 한창 진행 중이었다. 반면 4호기는 약 1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뒤따라가고 있었다. 이달 중 최초 콘크리트 타설을 앞두고 기초 지반을 다지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현장에서는 수백 대의 장비와 수천 명의 인력이 동시에 움직였지만 공사는 의외로 정돈돼 있었다. 작업 구간마다 안전 표지판과 통제선이 촘촘히 설치돼 있었고, 작업자들은 이동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안전 점검 절차를 거쳤다. 원전 건설 현장 특유의 긴장감이었다.
2033년 신한울4호기 준공까지 이곳에 투입되는 누적 인원은 약 720만명, 총사업비는 12조3000억원 규모다. 황희진 공사관리부장은 "단순히 발전소 두 기를 짓는 사업이 아니다. 철강과 시멘트, 기계·전기 설비, 케이블, 제어 시스템까지 수백 개 기업이 연결된 초대형 산업 프로젝트"라며 "원전 한 기를 짓는 것은 작은 도시 하나를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현장에서 반복해서 들린 단어는 '안전'이었다. 원전은 단 한 번의 실수도 허용되지 않는 산업이다. 그래서 공정 속도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도 결국 안전과 품질이라고 했다.
AI와 데이터센터가 폭증하며 전력 수요가 급격히 커지는 시대. 신한울 원전은 단순한 발전소를 넘어 한국 산업과 에너지 안보를 떠받치는 기반 시설로 자리 잡고 있었다. 울진 바닷가에서 돌아가는 거대한 터빈 소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 산업의 심장 박동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경북(울진)=강나훔 기자 nah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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