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재의 인사이트] 왜곡된 '성과주의'에 발목잡힌 삼성
[이충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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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외 출장을 마치고 귀국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6일 서울 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SGBAC)에서 입장문을 읽고 있다. 2026.5.16 |
| ⓒ 연합뉴스 |
삼성은 오랫동안 철저한 성과주의 문화를 유지해온 기업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삼성의 독특한 성과주의는 80년 동안 계속됐던 '무노조 경영'을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이병철 창업주는 '노조가 없는 대신 높은 연봉과 복지를 준다'는 원칙을 세웠고, 이는 2020년 무노조 경영 폐기 선언 후에도 저변에 남아있습니다. 보상 기준은 회사가 정하고 직원은 결과를 신뢰하면 된다는 암묵적 계약입니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초과이익성과급(OPI) 제도는 그 대표적 산물입니다.
OPI는 사업부가 연초 목표를 초과 달성했을 때 초과 이익을 배분하는 성과급으로 연봉의 최대 50%까지 지급됩니다. 하지만 OPI는 임금 체계에서 사실상 연봉으로 받아들여져 성과급이 기대에 못 미치는 해일 경우 실질 연봉이 크게 줄어드는 것으로 인식됩니다. 사업부별 실적에 따라 지급되다 보니 부서 간 격차가 커 노동자 간에 상대적 박탈감도 큽니다. 더 큰 논란은 회사가 구체적인 산출 방식을 공개한 적이 없다는 점입니다. 이런 불투명한 성과급 기준으로 객관성과 공정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회사와 노동계에서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2022년 금속노조가 삼성전자와 삼성SDI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10명 중 7명이 사측·관리자가 성과급 등 고과평가를 객관적 기준에 따라 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삼성의 성과주의가 생산성 향상과 동기 부여 목적 달성에 적절한 수단이 아니라는 연구 결과도 여럿 있습니다. 고과를 평가하는 중간 관리자는 주어진 것 이상의 권한을 행사하고, 노동자와 가족은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는 내용이 공통적입니다. 동료 사이에 협력보다 견제와 경계가 심화하는 부작용도 거론됩니다. 그럼에도 삼성이 성과 중심의 고과·임금제도를 계속 유지하는 배경에는 사측이 고과 제도를 노무관리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노동계에서 나옵니다. 중간 관리자의 권력을 통해 작업장 통제를 강화하고 노조 가입 등 다른 목소리의 분출을 막는 도구로 활용해왔다는 겁니다.
기형적 성과주의, 사회적 연대보다 조합원 실리 치중하는 초기업노조 등장 배경
삼성의 비정상적 노무관리는 삼성전자 사상 첫 과반 노조인 삼성그룹 초기업노조의 등장에서 확인됩니다. 삼성전자는 2019년 전국삼성전자노조(전삼노) 출범 이후에도 기존 노사협의회와 임금 인상률을 우선 합의하는 방식으로 노조를 무력화했습니다. 이에 대한 불만이 응축돼 사회적 연대보다 경제적 실리를 내세워 조합원을 결집한 초기업노조가 탄생했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입니다. 삼성전자 노사갈등은 이전의 전삼노 중심의 교섭국면을 지나 한국노총도 민주노총도 아닌 독립 노조인 초기업노조가 주도하는 전혀 다른 단계로 들어섰습니다.
노동계에서는 삼성전자의 성과급을 둘러싼 극한 대립은 이미 예견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수천 명에 불과했던 초기업노조가 반년 남짓한 기간에 7만 5000명으로 커진 이유를 삼성전자 경영진은 외면해왔습니다. 성과급제에 대한 불만이 쌓이고 회사측의 노조 무력화 시도에 반감이 커지는 위기 신호에 손을 놓고 있었습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지금의 노사 갈등은 반도체 호황이 도화선이 됐지만 근본적으로는 삼성의 성과주의와 후진적 노사문화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는 시각이 많습니다.
삼성전자 파업 예고 사태는 정부와 노동계에도 큰 과제를 던졌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노동운동의 개념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시각에서입니다. 노조의 사회적 약자성과 도덕적 정당성, 생산성에 비례하는 보상 등 기존의 패러다임이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노조가 사회경제적 취약계층 노동자를 대변하는 조직이 아니라 조합원들의 실리를 추구하는 기구로 위상이 축소됐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그동안의 노동가치라는 전통적 이념으로는 AI 시대에 더욱 심화될 사회적 불평등과 분열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교훈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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