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올해 ‘탄소크레딧 거래소’ 가동…한은 “감축 뻥튀기 막아야”

박세환 2026. 5. 18.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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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보(왼쪽 다섯번째부터) 한국거래소 이사장과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한국형 자발적 탄소시장 얼라이언스 출범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거래소 제공

정부가 올해 말 한국거래소 안에 ‘탄소크레딧 거래소’를 신설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시장 활성화에 앞서 감축 실적의 신뢰성을 확보할 제도적 장치를 먼저 갖춰야 한다는 한국은행의 제언이 나왔다. 온실가스를 줄였다는 실적이 실제보다 부풀려지거나 같은 감축분이 여러 차례 사용되는 일을 막지 못하면 이제 막 출범하는 시장의 신뢰부터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18일 한국은행이 발간한 ‘자발적 탄소시장 현황 및 국내 도입·활성화를 위한 주요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형 자발적 탄소시장(VCM·Voluntary Carbon Market)은 민간의 탄소감축 투자를 끌어내고 관련 금융시장도 키울 수 있는 수단으로 평가됐다. 다만 한은은 탄소크레딧의 품질관리, 가격평가, 거래·등록 인프라 구축, 중복계상 방지, 공시·검증체계 정비가 시장 조성에 앞서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발적 탄소시장은 기업이나 기관이 법적 의무와 별개로 스스로 줄인 온실가스 감축 실적을 ‘탄소크레딧’ 형태로 사고파는 시장이다. 일반적으로 탄소크레딧 1단위는 온실가스 1t 감축 실적을 뜻한다. 공장이 고효율 설비로 바꿔 전력 사용을 줄이거나 메탄가스를 포집해 배출량을 낮춘 경우 그 성과가 거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를 다른 기업이 사들여 자체 탄소중립 목표 이행에 활용하는 구조다.

정부가 이 시장을 키우려는 이유는 탄소감축에 민간 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감축 실적을 거래할 수 있게 되면 기업 입장에서는 친환경 설비나 감축기술에 투자한 비용을 일부 회수할 길이 생긴다. 금융기관도 감축사업자와 투자자, 크레딧 구매기업을 연결하는 역할을 맡을 수 있다. 한은은 한국형 VCM이 정책금융 중심이던 국내 녹색·전환금융 시장에 민간자금이 유입되는 새로운 통로가 될 수 있다고 봤다.

문제는 이 시장의 핵심 상품인 탄소크레딧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느냐는 점이다. 자발적 탄소시장은 민간 인증기관이 감축 실적을 평가하는 구조라 크레딧마다 품질 차이가 클 수 있다. 실제 감축 효과가 불분명한 사업이 과도한 실적으로 인정되거나 어차피 진행됐을 사업이 ‘추가 감축’으로 포장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기준선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감축량이 과대평가될 수 있다는 점도 한은이 지적한 리스크다.

기업이 직접 배출을 줄이기보다 크레딧 구매에만 의존하면서 탄소중립을 내세울 경우 실제보다 친환경적인 기업인 것처럼 포장하는 이른바 ‘그린워싱’ 논란도 불거질 수 있다. 한은은 기업이 탄소크레딧을 활용한 외부상쇄에 과도하게 기대거나 크레딧의 품질과 제3자 검증 요건이 제대로 충족되지 않으면 감축 주장 자체의 신뢰도가 낮아질 수 있다고 봤다.

같은 감축 실적이 여러 번 쓰이는 문제도 경계 대상이다. 하나의 탄소크레딧이 여러 기업의 감축 성과로 중복 활용되거나, 기업의 탄소중립 실적과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달성분으로 이중 계산되면 시장 회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한은이 크레딧의 발행·이전·사용·소각 이력을 추적할 수 있는 등록체계 구축을 강조한 이유다.

해외 시장은 이미 이런 신뢰성 논란을 겪었다. 글로벌 자발적 탄소크레딧 발행량은 2021년 3억4500만t에서 2025년 2억2900만t으로 줄었다. 일부 산림 기반 크레딧을 두고 감축 효과가 부풀려졌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시장이 위축된 영향이다.

이후 시장은 발행량 확대보다 검증 가능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다. 실제로 농업·임업 관련 크레딧 비중은 2019년 54.0%에서 2025년 24.9%로 낮아진 반면 감축 성과를 상대적으로 명확히 측정할 수 있는 에너지 효율 개선과 제조업·산업 부문 비중은 각각 27.5%, 17.5%까지 커졌다.

결국 한국형 자발적 탄소시장의 성패는 거래소를 얼마나 빨리 여느냐보다 그 안에서 거래되는 감축 실적을 얼마나 엄격하게 가려내느냐에 달려 있다는 게 한은의 판단이다. 한은 관계자는 “VCM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탄소크레딧의 품질관리, 가격평가, 거래·등록 인프라, 중복계상 방지, 공시·검증체계 정비 등 시장 신뢰 확보를 위한 제도적 기반 정비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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