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됐으니 입 닫으라? 513명 무투표 당선의 역설

여성국 2026. 5. 18.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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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6·3 지방선거에서 제도 도입(2010년) 이후 무투표 당선자가 역대 최대 규모로 나타날 전망이다. 선관위가 지난 14~15일 후보 등록을 접수한 결과 이번 지선의 무투표 선거구는 307곳, 후보자는 513명이며 이 중 504명이 당선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17일 밝혔다. 직전 최다였던 4년 전 기록(후보자 508명, 당선자 490명)을 넘어선 수치다. 임병택 더불어민주당 경기 시흥시장 후보를 포함한 기초단체장 3명과 광역의원 108명, 기초의원 305명이 투표 없이 의석을 확보할 전망이다.

현행 공직선거법상 경쟁이 없는 무투표 선거구에 출마한 후보자들은 후보자 등록이 완료되면 선거 운동이 금지된다. 거리 유세와 선거공보물 발송, 전화·온라인 홍보 등을 할 수 없는 것은 물론, 기존에 게시했던 현수막도 모두 철거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임병택 후보는 본지 통화에서 “본선 상대 후보가 남성인지, 여성인지, 청년인지에 따라 맞춤형으로 배포하려고 선거 공보물 디자인을 여럿 준비해놨다”며“당선은 감사하지만, 주민들에게 성과와 공약을 선거기간에 알릴 수 없는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임 시장은 “국민의힘이 후보를 냈어야 한다”며 “민주당도 영남에서, 국민의힘도 호남에서 최대한 후보를 내는 게 도리 아니겠냐”고도 했다.

6·3 지방선거에서 단독 후보자 등록으로 사실상 무투표 3선에 성공한 임병택 더불어민주당 경기 시흥시장 후보. 사진 후보 캠프


무투표 당선자가 늘어난 배경에는 영·호남을 중심으로 굳어진 거대 양당의 독과점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제로 이번 선거에서 전남광주 지역의 무투표 후보자는 4년 전보다 17명 늘어난 80명에 달했다. 대구·경북 역시 지난 지선보다 5명 감소하긴 했으나 여전히 70명의 후보가 투표 없는 당선의 길로 들어섰다. 이선우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양당 독과점 체제하에서 국민의힘은 호남, 민주당은 영남에 후보를 안 내면서 공당의 책임정치가 약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22년 지방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5월 27일 오전 전북 전주시 완산구 효자3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 무투표 실시 안내문이 붙어있다. 사진 연합뉴스


양당 구도에서 날로 커지는 무투표 당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는 ‘지역정당’ 허용 등이 거론되고 있다. 장승진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현행 정당법은 전국정당만을 인정하고 있다”며 “대선, 총선이 아닌, 지방선거에서 지역 현안에 집중해 거대 양당을 견제할 수 있는 ‘호남민주당’, ‘영남보수당’ 같은 정당이 허용되면 가치보다 정책으로 경쟁하며 지역 독과점 문제를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회에서도 관련 움직임이 진행 중이다. 이광희 민주당 의원 등이 지방선거에 한해 지역정당을 허용하는 법안 발의를 준비 중이다. 이 의원은 “2인 선거구가 무투표 당선의 출발점이 되고 거대 양당 구조가 지역주의를 강화한다”며 “일본, 영국에서 성공한 사례가 있는 만큼 지역정당이 자리 잡을 토대는 우리도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17일 오후 경기 파주시 한 인쇄소에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가 제작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정당법과 관련해 2023년 10월 헌법재판소는 ‘5개 이상 시·도당’ 요건이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4년 전 지선을 앞두고 과천시민정치당 등이 선관위에 정당 등록이 반려된 후 제기한 헌법소원에 따른 것이다. 당시 참여연대는 “헌법재판관 과반수(5명)가 위헌성을 인정했지만, 위헌 결정 요건(6명)에 미치지 못했다”며 “지역 목소리를 담을 지역정당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정당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고 요구했다.

선거 현장에서는 무투표 당선에서도 유권자의 알 권리를 보장해 ‘깜깜이 상황’을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선관위 관계자는 “무투표 당선의 경우 유권자는 투표용지에서도 당선자의 이름을 보지 못한다”며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지역 일꾼으로 맞는 일이 반복되는 것은 큰 문제”라고 우려했다. 이선우 교수는 “선거법 개정과 찬반투표제, 중대선거구제 확대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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