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반도체 공급 불안,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2026. 5. 18.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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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서울대 명예교수·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 단장

대한민국 경제의 거대 함선, 삼성전자가 노사분규라는 빙산에 부딪혔다. 삼성전자 반도체 팹 내부에서는 서너달 동안 공정에 있던 수만 장의 웨이퍼가 생산라인 밖 질소탱크로 옮겨지는 뱅킹(Banking) 작업이 긴박하게 진행되고 있다. 파업 시 인력 공백으로 인해 웨이퍼 전량이 한순간에 산업 폐기물로 변하는 참사를 막기 위한 절박한 비상조치다.

「 삼성전자 파업손실 최대 100조원
글로벌 공급망 영구탈락 위험도
파국 막기 위한 정부 결단 필요

최근 삼성전자는 경쟁력을 완전히 회복하고 있다. 수율 1% 개선이 연간 수조원의 이익을 좌우하는 반도체 산업에서 사실상 ‘기적적 반등’이다. 이는 세계 1등 삼성 반도체의 자존심을 회복하려는 임직원들의 피나는 노력과 희생의 결과물일 것이다. 그러나 만약 최악의 시나리오대로 18일간의 파업으로 제조라인이 전면 중단된다면, 공정 안정성이 무너지고 수율 회복에만 수개월이 소요된다. 업계는 직·간접 손실이 최대 100조원에 달하고 파업 종료 후 정상화까지 추가로 2~3주가 걸릴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1700여 개에 이르는 협력업체의 피해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삼성전자 측은 파업이 벌어져도 생산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비상체제를 통해 대응하겠다고 했지만, 7만3000명에 달하는 조합원을 보유한 초기업노조의 파업규모는 2024년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이 주도한 파업과는 비교 할 수 없는 수준이다.

반도체 제조는 일반 제조업의 조립 라인과는 차원이 다르다. 생산라인 하나를 구축하는 데 수십 조원의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며, 기술변화가 매우 빨라 멈추면 도태되므로 끊임없는 투자가 필수적이다. 2023년 최악의 불황이 닥치면서 삼성전자는 반도체 부문에서 15조원이나 적자를 냈다. 그 어려운 여건에서도 이를 악물고 버틴 투자가 있었기에 폭발적인 실적 반등을 이뤄낼 수 있었다.

반도체 패권을 둘러싼 역사는 누구도 영원한 승자가 될 수 없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1980년대 세계 반도체 시장을 호령하던 일본은 기술개발과 투자지연의 악순환으로 한국과 대만에 주도권을 빼앗겼다. 미국의 인텔도 모바일과 인공지능(AI) 전환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주도권을 놓쳤다. 기술패권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잠깐의 수익성에 취해 연구개발이나 시설 투자에 쓸 수 있는 재원을 과도한 임금 인상과 성과급에 탕진한다면 그 미래는 충분히 예견할 수 있다.

가장 두려운 것은 글로벌 공급망에서 영구 탈락할 가능성이다. 엔비디아와 애플 등 빅테크 고객사들에게 삼성은 ‘무결점 적기 공급’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파업이라는 변수가 상존하는 공급처는 1순위 파트너가 될 수 없다. 고객사들이 리스크 분산을 위해 주문을 해외 경쟁사로 돌리는 순간, 그 손실은 파업이 끝난 뒤에도 회복할 수 없는 기회상실이 될 것이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까지 이번 총파업에 우려를 표명했다는 것은 이 사태가 한국의 대외투자 신뢰도 전반을 흔드는 사안으로 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미 시작된 웨이퍼 보관 작업은 대한민국 경제엔진에 빨간불이 들어왔음을 알리는 경고등이다. 정부와 사측의 절박한 대화 제의도 노조는 거절하고 있다. 이제 정부가 응답할 차례다. 파업이 실제 강행돼 팹의 가동률이 급락하기 전에 정부는 긴급조정권 발동을 포함한 적극적인 중재에 나서야 한다. 반도체가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 당연한 결정이다. 반도체는 대한민국 전체 수출의 35%(올 1분기 기준)를 차지하는 최대품목이기 때문이다.

노사 자율이라는 원칙이 대한민국 경제의 공멸을 방조하는 도구가 되면 안된다. 노동조합법 제76조에 명시된 긴급조정권은 이와 같은 국가적 비상사태를 막기 위해 법이 부여한 최후의 안전판이다. 반도체는 이제 한 기업의 상품을 넘어 대한민국 경제를 지키는 ‘실리콘 방패’이자 국가안보 자산이다.

노동의 가치는 존중받아야 마땅하지만, 460만 주주와 전 국민의 경제적 명줄을 쥐고 흔드는 투쟁은 그 정당성을 잃었다. 파국을 막기 위한 정부의 단호한 결단만이 우리 반도체 산업의 골든타임을 지켜낼 길이다. 경쟁국들이 우리의 내부 갈등을 비웃으며 뒤에서 박수치는 광경을 묵과해선 안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형준 서울대 명예교수·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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