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현의 미래를 묻다] 에이전틱 AI의 시대, 국가가 고객돼 산업 키워야

2026. 5. 18.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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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현 리벨리온 대표

지난주 월스트리트가 한 기업의 상장 소식으로 들썩였다. AI 추론 반도체 설계 스타트업인 세레브라스(Cerebras)가 IPO 공모가를 연거푸 올렸기 때문이다. 처음 제시한 가격에서 두 차례 상향 조정됐고, 청약 수요는 공모 물량을 훌쩍 넘어섰다. 최종 기업가치는 564억 달러에 달했다. 상장 첫날 주가는 68% 급등했다. 지난해 9월 81억 달러로 평가받던 회사가 8개월 만에 공모가 기준 7배 가까이 몸값이 뛴 것이다. 혹자는 AI 버블의 한 장면이라 하겠지만, AI 반도체 생태계 최전선에서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시장이 AI의 다음 단계를 명확히 인식하기 시작한 신호로 읽힌다.

「 미 AI반도체 기업 세레브라스
몸값 564억 달러에 주가 급등
전력 효율이 AI칩 핵심 경쟁력
정부, 판 여는 최초의 고객 돼야

지난 14일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광장 전광판에 AI반도체 회사 세레브라스의 나스닥 상장을 알리는 내용이 떴다. [로이터=연합뉴스]

그 ‘다음 단계’는 바로 ‘에이전틱 AI(Agentic AI)’다. 지금까지 AI 서비스는 ‘질문에 답하는 기계’로, 사람이 물으면 AI가 답하는 구조였다. 그러나 에이전틱 AI는 다르다. 목표를 던져주면 스스로 계획을 짜고 필요한 도구를 호출해 판단하고 작업을 완수한다. 사람의 개입 없이도 복잡한 업무를 처리하는 AI 에이전트는 이미 산업 현장에 배치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로 코딩 에이전트는 이제 개발자의 필수품이 되어 쉴 새 없이 코드를 작성한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이 올해 초 실적 발표에서 “에이전틱 AI가 변곡점에 도달했다”고 선언한 것은 단순한 마케팅 발언을 넘어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국면을 예고한 것이었다.

수만 개 토큰 소비하는 에이전트 AI
세레브라스가 주목받은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챗봇이 질문 하나에 수백 개의 토큰을 소비한다면, 에이전트는 하나의 업무를 완수하는 동안 수만 개의 토큰을 쉬지 않고 태운다. 사람이 개입하지 않으니 멈추지도 않는다. 이 반복의 속도가 느리면 전체 작업에 병목이 발생한다. 세레브라스가 오픈AI와 대규모 추론 인프라를 구축하는 파트너십을 체결한 것도 이 병목을 해소할 수 있다는 기대에서였다. 오픈AI는 이 파트너십을 발표하며 “워크로드마다 최적화된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명시했다. 에이전트라는 새로운 작업 방식이 새로운 인프라 설계를 요구한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하나의 범용 칩이 모든 것을 담당하던 시대는 저물고, 워크로드에 특화된 설계가 경쟁력을 갖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세레브라스의 IPO 흥행은 그 전환을 자본시장이 읽기 시작했다는 단적인 사례다.

차준홍 기자

바로 이 전환이 새로운 경제의 단위를 만들어냈다. AI의 모든 연산은 ‘토큰(Token)’으로 수렴한다. 토큰이란 인공지능이 문장을 이해하고 생성하기 위해 데이터를 쪼개어 처리하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다. 여러 에이전트가 동시에 협업하는 멀티에이전트 시스템이면 소비량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AI 시대에선 토큰이 곧 화폐다. 얼마나 많은 토큰을, 얼마나 빠르고 싸게 처리하느냐가 AI 서비스의 경쟁력을 좌우한다. 추론은 더 이상 개념이 아니다. 청구서가 됐다. 이 청구서의 규모가 시장을 만들고, 시장이 자본을 불러들이고 있다. 토크노믹스(Tokenomics), 즉 토큰 경제학이 AI 인프라의 핵심 언어가 된 이유다. 구독료나 광고가 아니라 토큰 소비량이 곧 매출이 되는 시대, AI 서비스의 수익 구조 자체가 토큰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토큰 수요가 폭발하면 데이터센터를 더 많이 지으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절반만 맞다. 데이터센터 증설과 운영의 한계는 전력에서 먼저 온다. 운영 비용의 약 절반은 GPU가 아니라 전력, 냉각 등 인프라 운영에서 발생한다. 전력 확보 자체가 병목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미국에서는 이미 AI 데이터센터의 부지선정보다 전력 확보가 더 어렵다는 말이 나온 지 오래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수도권 데이터센터 집중으로 인한 전력망 과부하는 이미 산업계의 현실적 과제가 됐다. 오픈AI가 백악관에 보낸 서한에서 “전기는 새로운 석유다”라며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진짜 경쟁력은 ‘와트당 토큰’, 즉 전력 효율에서 갈린다. 같은 전기로 더 많은 토큰을 처리할 수 있는 칩이, 같은 공간에서 더 많은 AI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것은 AI 운영 비용을 넘어, 지속가능한 환경과 국가 전력망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으로 이어지는 문제다. 몇 년 전만 해도 이 지표를 꺼내면 고개를 끄덕이는 데 시간이 걸렸다. 지금은 다르다. 효율이 대화의 중심이 됐고, 후발 주자들도 앞다퉈 이를 첫 번째 경쟁력으로 내세우기 시작했다, 더 빠른 칩을 만드는 경쟁은 이제 더 적은 전기로 더 많은 토큰을 처리할 수 있는 칩을 만드는 경쟁으로 판이 바뀌었다.

국립연구소가 키운 세레브라스
세레브라스의 흥행은 단순히 한 반도체 스타트업의 성공 사례가 아니다. 에이전틱 AI의 시대는 미래가 아닌 현재고, 그 인프라를 누가 설계하느냐의 싸움은 이미 시작됐다. 이번 판의 표준은 와트당 토큰이다. 그 기준을 먼저 만들어내는 기업과 나라가 이 시대의 표준을 쥔다. AI 시대의 경쟁 문법 자체가 바뀌고 있다. 서버용 추론 칩부터 온디바이스 반도체까지, 한국에는 AI 반도체 전 영역을 아우르는 스타트업들이 실제로 존재한다. 우리 기업들처럼 양산과 실제 AI 서비스 상용화 성과를 내는 수준의 AI 반도체 스타트업을 보유한 나라는 전 세계에서 손에 꼽힌다.

세레브라스가 월스트리트의 주목을 받기 훨씬 전, 미국 에너지부 산하 아르곤 국립연구소는 세레브라스의 칩을 선제 도입했다. 민간이 검증을 꺼리던 시점에 국가가 먼저 고객이 된 것이다. 그 신뢰가 오늘의 세레브라스를 만들었다. 국민성장펀드가 AI 반도체 기업에 수천억 원대 직접투자를 집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가는 단순한 지원자가 아니다. 기술의 가능성을 믿고 시간을 함께 버티는 인내자본의 투입자이자, 혁신 기술이 실제 서비스로 검증될 수 있도록 판을 열어주는 최초의 고객이어야 한다.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나라가 AI 시대의 팔로어가 아닌 리더가 된다. 변화를 읽는 눈과 역량을 알아보는 혜안, 이를 뒷받침할 국가의 의지가 함께할 때, 이것은 한 기업의 도전이 아니라 국가의 승부가 된다.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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