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옥금의 한국에 산다는 것] 우리들의 목소리를 담을 정치

2026. 5. 1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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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옥금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이주민센터 동행 대표

따스한 봄볕이 내리쬐는 요즘, 길가에는 화려한 현수막들이 걸려있다. 6·3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일상의 풍경이겠지만, 나처럼 이 땅을 제2의 고향으로 삼은 이주민에게는 그 현수막 속 구호들이 조금은 다르게 다가온다. “주민의 삶을 바꾸겠습니다”라는 약속 속에, 과연 우리 이주민들의 얼굴도 포함되어 있을까 하는 기대 섞인 의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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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민 많이 사는 지역 지방선거
당사자의 정치 참여 너무도 당연
다문화 후보 별도 트랙 고려를
」

김지윤 기자

지방선거는 대선이나 총선과는 또 다른 의미를 가진다. 우리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의 급식 문제, 매일 걷는 골목길의 가로등 불빛, 이웃과 나누는 사소한 인사 같은 삶에 밀착된 부분을 다루기 때문이다. 특히 일정 자격을 갖춘 외국인에게도 투표권이 주어지는 지방선거는, 이주민들이 진정한 이웃이자 시민으로서 자기 목소리를 낼 소중한 기회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이주민은 투표소로 향하는 발걸음조차 낯설어하며, 정치가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6년 전, 나에게는 잊지 못할 기억이 하나 있다. ‘이주여성 1호’라는 이름표를 달고 한 정당에 영입되어 총선 비례대표 경선에 나섰던 일이다. 당시 나는 이주민들의 아픔을 세상 밖으로 꺼내놓을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생각보다 높고 견고했다. 정치적 경험도, 탄탄한 지지 기반도 없던 이주여성에게 기존 정치인들과 똑같은 잣대의 무한 경쟁은 사실상 탈락이 예견된 시험지와 같았다. 정당의 화려한 환영사가 끝나고 난 뒤, 거친 들판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었다. 준비되지 않은 열정은 쉽게 상처 입었고, 이주민들의 기대를 현실로 바꾸기엔 내 손에 쥐어진 도구가 너무나 부족했다. 그때의 고배는 개인의 아픔을 넘어, 우리 이주민 정치가 처한 현실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선거철만 되면 각 정당은 다양성을 말하며 이주민을 찾는다. 하지만 그 자리가 그저 당의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한 들러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세금을 내고 의무를 다하는 시민으로서 우리는 당당한 피선거권을 가진 주체다. 이제는 누군가 차려놓은 밥상에 초대받기만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밥상을 차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이주여성들이 스스로 세력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력화라고 하니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실은 우리의 소박한 요구들을 한데 모으고 서로의 손을 맞잡는 일이다. 우리가 조직적으로 뭉쳐 목소리를 낼 때, 정치권도 우리를 일회성 소모품이 아닌 실질적인 파트너로 대우할 것이다. 우리 중 누군가가 용기를 내어 출마했을 때, 그가 비바람에 쓰러지지 않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공동체의 힘이 절실하다.

물론 이주민들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한국이라는 낯선 땅에서 정치를 시작하는 이주여성들에게는 정당 차원의 전략적 배려가 필요하다. 이는 단순히 자리를 하나 내어주는 시혜가 아니다. 경험이 부족한 이주민 정치 신인들이 한국 정치의 메커니즘을 익히고 성장할 수 있도록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마련해주고, 비례대표 선출 과정에서도 이들의 특수성을 고려한 별도의 트랙을 고민해야 한다. 다문화 사회로 진입한 대한민국의 품격은 사회적 약자인 이주민들이 얼마나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지방의회는 우리 동네의 문제를 논의하는 곳이다. 그 동네에 이주민이 살고 있다면, 그들의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이주민 당사자가 의회에 참가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언어가 서툴러 복지 혜택을 놓치는 이웃의 손을 잡아주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다문화라는 이유로 소외되지 않도록 법안을 살피는 일. 그것이 바로 우리가 꿈꾸는 생활 정치의 모습이다.

나는 믿는다. 이주여성이 단지 도움받는 대상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주역으로 우뚝 서는 날이 올 것이라고. 이번 6·3 지방선거가 그 희망의 씨앗을 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우리는 더는 낯선 이방인이 아니다. 당신의 곁에서 함께 울고 웃으며 더 나은 대한민국을 꿈꾸는 당신의 다정한 이웃이다. 다름이 틀림이 아닌 다양성이 되는 사회, 그것이 우리가 꿈꾸는 진정한 대한민국의 품격이다. 그 변화의 시작이 바로 지금, 우리 앞에 와 있다.

원옥금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이주민센터 동행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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