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년 뒤에도 떠도는 망령... 미국에 이 말이 필요합니다 [윤한샘의 맥주실록]
[윤한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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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갱스 오브 뉴욕> 스틸컷 |
| ⓒ 코리아픽처스 |
신부복을 입은 남자의 이름은 '발론 프리스트'. 그는 아일랜드 이민자 갱단, '데드 레빗츠(Dead rabbits)'파의 두목이었다. 이들이 광장으로 나왔다는 건, 오늘 큰 싸움이 있다는 의미. 심상치 않은 기운을 예감한 듯, 거리는 쥐 죽은 듯 고요했고, 하얗게 변한 광장 위에는 발자국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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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갱스 오브 뉴욕> 스틸컷 |
| ⓒ 코리아픽처스 |
1846년, 미국 뉴욕. 다섯 개의 거리가 모였다고 해서 '파이프 포인츠'라 명명된 거리에서 토착민과 이민자들의 명운이 걸린 불길한 싸움이 곧 펼쳐지려 하고 있다. 과연 이 두 조직 중 누가 뉴욕을 장악하게 될 것인가.
마틴 스코세이지의 <갱스 오브 뉴욕>
2003년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 <갱스 오브 뉴욕>은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가 무려 20년 간 준비해 온 대작이다. '빌 더 부처'에게 죽음 당한 발론 프리스트의 아들, 암스테르담의 복수를 중심으로 1840년대부터 1860년대까지 이민자 도시, 뉴욕의 정체성을 묻고 있다.
1942년 뉴저지 퀸즈에서 태어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은 리틀 이탈리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조부모는 이탈리아에서 온 이민자였다. 10살 무렵 리틀 이탈리아 근처에 있는 올드 세인트 페트릭 성당에 놀러 갔을 때, 1801년이 새겨져 있는 낡은 묘비와 마차가 다녔던 자갈길, 그리고 오래된 지하실을 발견한 경험이 이 영화의 발단이 되었다.
"나는 점차 깨달았다. 이탈리아계 미국인들이 이곳에 처음 있었던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것을. 우리보다 먼저 다른 사람들이 여기 있었다는 것을. 그것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매료되었다. 나는 계속 궁금해했다. 뉴욕은 어떻게 생긴 걸까? 그 당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 퍼거스 보더위치와의 인터뷰 중, <스미스소니언 매거진> 2002년
마틴 스코세이지가 품고 있었던 이런 의문은 1970년 친구 집 서재에 꽂혀 있던 한 책을 보면서 해소되었다. 1928년 허버트 애즈베리가 쓴 <갱스 오브 뉴욕 : 지하세계의 뒷골목 이야기>에는 그동안 그가 30년 동안 궁금해 했던 모든 이야기가 들어있었다. 마틴 스코세이지는 '바워리 보이즈', '데드 레빗츠', '빌 더 부처' 등 한때 뉴욕을 살아냈던 사람들을 읽으며 영화화를 결심했고, 1979년 판권을 사들인 뒤, 23년에 걸친 준비 끝에 마침내 세상에 선보였다.
<갱스 오브 뉴욕>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실존했던 인물에서 영감을 얻었다. 영화 속 '윌리엄 커팅'은 실제 바워리 보이스의 수장이었던 윌리엄 풀이 모델이다. 뉴저지에서 태어난 윌리엄 풀은 영국계 이민자였던 부모를 이어 정육점(butcher shop)을 운영했다고 한다. '빌 더 부처'는 이런 배경 속에 붙여진 별명이었다.
풀은 1840년대 소방대원으로 일하다 주위 갱단을 모아 바워리 보이스를 결성했고, 1850년대부터는 미국 토착주의당(Native American Party)과 결탁하며 정치적 행보를 걸었다. 그는 일명 '노우 낫씽(Know Nothing)' 운동의 핵심 인물이었다.
'노우 낫씽'은 미국 땅의 주인은 백인 앵글로색슨 프로테스탄트라는 네이티비즘(Nativism)과 반가톨릭주의 그리고 반이민주의를 추구하고 전파하는 운동이었다. 이름 또한 조직 활동에 대해 질문을 받으면 '아무것도 모른다'라고 답하도록 되어 있어 붙여졌다.
실제 윌리엄 풀의 숙적이자 데드 레빗츠의 수장은 존 모리시였다. 영화에서는 발론 프리스트와 그의 아들, 발론 암스테르담을 합친 인물로 묘사된다. 아일랜드 이민자 출신이자 가톨릭 신자였던 존 모리시는 정확히 윌리엄 풀의 대척점에 서 있는 존재다.
윌리엄 풀이 '노우 나씽'의 행동 대장이었다면, 존 모리시는 이민자들을 포섭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태머니 홀'의 행동 대장이었다. 바워리 보이스처럼 데드 래빗츠 또한 정치 세력과 공생을 하는 정치 깡패 집단이었다. 뉴욕 시 민주당 배후에서 정치적 부패를 통해 이득을 챙겼던 태머니 홀은, 한편으로는 수많은 아일랜드 이민자가 정착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1850년대 들어 두 조직의 갈등은 심각할 정도로 깊어졌다. 그리고 1855년, 윌리엄 풀이 한 술집에서 데드 래빗츠의 조직원에게 총을 맞고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연히 뒤에는 존 모리시가 있었다.
결국 1857년 미국 독립기념일, 데드 래빗츠가 바워리 보이스를 습격하는 일이 벌어졌다. 약 천여 명의 조직원이 합세한 이 싸움은 뉴욕 민병대가 관여한 뒤에야 수습되었다. 영화 초반 두 조직의 대결 장면은 1857년에 벌어진 이 사건이 모티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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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갱스 오브 뉴욕> 포스터 |
| ⓒ 코리아픽처스 |
뉴욕, 원래 이곳은 원주민 레나페 족의 터전이었다. 그들은 이곳을 언덕이 많은 섬이라는 뜻의 '마나하타'(Manahatta)'라고 불렀다. 우리가 맨해튼이라 부르는 이름이 바로 여기서 유래했다.
1624년 네덜란드 서인도회사가 모피 무역을 위해 이곳에 도착해 정착지를 건설했고, 2년 뒤 네덜란드 총독이 원주민들에게 24달러 상당의 물건을 주고 땅의 소유권을 구입했다고 한다. 하지만 1664년 영국 함대가 침공하여 네덜란드의 지배권을 빼앗은 뒤, 국왕 찰스 2세의 동생, 요크 공의 이름 따, 뉴욕으로 바뀌었다.
독립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한 후, 뉴욕은 미국의 초대 수도였다. 조지 워싱턴은 월스트리트 연방홀 발코니에서 제1대 대통령 취임 선서를 했다. 하지만 약 1년 후, 필라델피아로 천도를 했고, 1800년에 워싱턴 DC가 미국의 수도가 되었다.
당시 남부 연방은 수도가 북부에 있는 것을 못마땅해 했고, 더구나 뉴욕의 경제력이 북부에 힘을 실어주는 것을 경계했다. 정치가 워싱턴 DC로 옮겨간 덕에, 뉴욕은 금융과 무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돈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모이는 법. 수많은 가난한 이민자가 기회의 땅 미국으로 밀려 들었다. 특히 1845년 아일랜드 대기근으로 수십만 명의 아일랜드인들이 뉴욕에 들어왔고, 자신들만의 공동체와 문화를 형성하며 거대한 세력으로 성장했다.
이탈리아와 독일에서도 수많은 사람이 뉴욕을 새 터전으로 삼았다. 1848년 독일 자유혁명이 실패하면서 독일 인텔리들과 기술자가 고향을 떠났고, 1861년 이탈리아 통일 이후, 소작농으로 전락한 농민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왔다.
뉴욕은 디아스포라 용광로였다. <갱스 오브 뉴욕>은 그 용광로 속에 있는 이민자들이 지금 뉴욕의 토대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토착파 '빌 더 부처', 그는 자신이 '진짜 미국인'이라고 수없이 되뇌지만, 사실 그 또한 뿌리는 이민자일 뿐이다.
이민자들끼리 내뱉는 '정체성'이란 결국 먹고살기 위해 만든 생존의 단어가 아니었을까. 야생의 뉴욕에서 나의 뿌리가 없다는 건, 곧 죽음을 의미하므로.
이 역설은 발론 암스테르담이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빌 더 부처의 수하가 되었을 때 드러난다. 끊임없이 아버지의 복수를 노리지만, 그의 오른팔로서 누리는 부와 안정감은 쉬이 떨칠 수 없는 유혹이었으리라. 마침내 발론 암스테르담은 빌 더 부처와 최후의 결투를 펼치게 된다. 아버지의 복수이자, 토착민이라 주장하는 영국 이민자에게 무너진 아이리시 공동체의 재건을 위한 마지막 기회였다.
하지만 세상은 둘의 사적 관계와 별개로 돌아갔다. 1863년 남북전쟁 강제 징집에 반대하며 뉴욕 이민자들은 폭동을 일으켰다. 20년 전 바워리 보이스와 데드 래빗츠를 중심으로 돌아갔던 뉴욕은 이제 그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폭동이 뉴욕을 삼키자 연방 정부는 군대를 파견해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포탄이 건물을 폭파하고 사람들은 죽거나 도망치는 가운데, 두 남자는 아무도 관심 없는 결투를 시작한다. 결국, 암스테르담의 칼이 빌 더 부처를 찌르고, 윌리엄 커팅, '빌 더 부처'는 "진정한 미국인으로 죽게 되어서 다행이야"라는 말을 끝으로 세상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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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갱스 오브 뉴욕> 스틸컷. |
| ⓒ 코리아픽처스 |
1837년 금융 공황으로 양조장 문을 닫자, 이곳은 이민자들의 소굴이 되었다. 5층짜리 건물로, 지하에는 기계 저장용으로 쓰이던 20개의 동굴이 있었고, 지상에는 75개의 방이 존재했다.
이곳에서 1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인종과 나이, 성별 관계없이 함께 거주했다. '도둑의 소굴', '살인자의 골목'으로 불렸던 이 공간들은 15년 간 매일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지옥 같은 공간이었다.
'올드 브루어리' 앞에 있는 광장의 이름은 '낙원의 광장', 하지만 이름과 달린 이곳에서는 매일 갱들의 싸움이 일어났다. 바워리 보이스와 데드 래빗츠의 전투가 묘사된 곳이 바로 '낙원의 광장'이다.
19세기 초 전 세계 맥주는 영국의 에일과 포터가 지배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은 영국 맥주에 더 큰 영향을 받았다. 재미있는 점은 뉴욕에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갈구하던 맥주는 기네스였다는 사실이다.
아일랜드 맥주지만 개신교 자본으로 생산된 기네스가 뉴욕 아이리시 이민자들의 향수와 정체성에 기대어 판매되었다는 사실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다. 토착민이라 주장하지만 영국의 핏줄을 담고 있는 포터와 아일랜드 이민자들의 향수를 자극해 판매하는 개신교 자본의 기네스. 자본 앞에서 정체성은 허상에 불과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빌 더 부처와 발론 암스테르담의 결투가 연방 정부의 포격 앞에서 무의미해진 것처럼, 미국 맥주의 정체성을 결정한 자들은 독일인이었다. 1860년 독일 이민자들이 가져온 라거는 포터와 스타우트를 밀어내고 진정한 미국 맥주가 되었다.
안톤 슈바르츠, 존 이발트 지벨 같은 독일 양조 학자는 옥수수 전분을 넣어 깔끔하고 청량한 느낌을 내는 아메리칸 라거 발전에 큰 공을 세웠다. 이후 버드와이저, 쿠어스, 슐리츠처럼 독일인이 세운 맥주 회사가 미국 맥주 시장을 장악하며 새로운 정체성을 세웠다. 마치 연방 정부의 대포가 다양한 정체성이 공존하던 뉴욕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미국'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세웠듯.
진짜 미국이라는 망령
"진정한 미국인으로 죽게 되어서 다행이야."
빌 더 부처의 마지막 대사는 자신의 뿌리 또한 영국 이민자였음을 끝내 인정하지 않은 자기 기만이었다. 그런데, 160년이 흐른 지금, 그 망령은 빨간 모자를 쓰고 광장에 돌아와 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외치며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세우고, 이민자들을 향해 칼을 겨누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토끼 시체를 꽂은 창 대신 행정 명령이 있고, '스토브파이프 햇' 대신 'MAGA 캡'이 있을 뿐, 문법은 정확히 같다.
역설적이게도 트럼프의 조부 또한 독일에서 건너온 이민자였다. 빌 더 부처가 적대했던 아일랜드인을 밀어내고 미국 맥주의 판도를 바꾼 바로 그 독일계 이민자의 후예가, 이제 라틴계 이민자들을 향해 '진짜 미국인'을 외친다.
어쩌면 '진짜 미국인'은 한 번도 실재한 적 없는, 매번 새롭게 만들어지는 정치적 발명품이 아닐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고 일갈한 신채호 선생의 말이 한류를 타고 미국으로 스며들기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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