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없이 돌아간 미국, 미국에 아쉬울 것 없는 중국
[임선영 기자]
2026년 5월 15일 오후 에어포스원이 베이징 수도국제공항을 이륙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16인의 CEO팀의 36시간 방중(訪中)이 공식 종료된 순간입니다. 그는 에어포스원에서 기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많은 다른 문제들이 해결됐다(A lot of different problems were settled)."
그러나 미국 주류 언론이 일제히 내린 평가는 냉혹합니다. 블룸버그는 "트럼프는 원하던 화려한 의전을 얻었다. 그러나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악시오스(Axios)는 이번 회담의 산물을 "소박한 성과물 패키지와 연출된 우정"이라고 보도했습니다.
36시간의 의전 일정은 화려했습니다. 14일 오전 인민대회당 21발 예포 환영식과 3군 사열, 레드카펫, 중국 인민해방군 군악대의 빌리지 피플(Village People) 'YMCA' 연주. 공산당 의전 행사장에서 이 곡이 울려 퍼진 것은 역사상 최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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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년 5월 15일 베이징 중난하이 정원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 ⓒ AP/연합뉴스 |
CSIS(전략국제문제연구소) 중국경제비즈니스 선임 고문 스콧 케네디는 회담 2주 전 베이징을 직접 방문하여 중국 관리·기업인·외국 정부 관계자들을 인터뷰한 뒤, 5월 7일 CSIS 공개 기자 브리핑에서 이번 회담의 의제 구조를 '5B·3T+AI'로 명명했습니다.
미국이 강조하는 5B는 보잉(Boeing), 소고기(Beef), 대두(Beans), 무역위원회(Board of Trade), 투자위원회(Board of Investment)입니다. 중국이 강조하는 3T는 대만(Taiwan), 관세(Tariffs), 기술(Technology)입니다. 그리고 양측 모두에 해당하는 AI 거버넌스(AI Governance)가 추가 의제로 부상했습니다.
이 프레임은 회담이 끝난 지금 돌아보면 매우 정확했습니다. 미국은 5B를 얻으러 갔지만 보잉 200대는 구두 약속에 그쳤고, 중국은 3T를 지켰습니다. 대만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변화 없이 유지됐고, 관세 문제는 트럼프 본인이 "논의하지 않았다"고 밝혔으며, 기술 — H200 반도체 수출 통제 — 은 양자 회담에서 아예 의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케네디가 별도로 강조한 AI 거버넌스는 공동성명이 아닌 베센트 재무장관의 CNBC 인터뷰 발언 수준에서 그쳤습니다.
1. 반도체... 미국은 허용했고, 중국은 굳이 사지 않는다
이번 회담에서 시장이 가장 주목한 의제는 엔비디아 H200의 대중국 수출 허가 프레임워크였습니다. 로이터는 회담 개막 당일인 14일 단독 보도를 통해 미국 상무부가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트댄스, JD닷컴 등 약 10개 중국 기업을 화이트리스트로 지정하고 기업당 연간 최대 75,000개의 H200 구매를 조건부 허용했다고 전했습니다.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은 트럼프 대통령의 전화를 받고 알래스카에서 에어포스원에 막판 합류하며 이번 의제의 무게를 상징적으로 보여줬습니다.
그러나 결말은 시장의 기대와 정반대였습니다. 트럼프는 에어포스원에서 직접 인정했습니다. "중국은 (H200 칩을) 사지 않기로 선택했다. 그들은 자국 기술을 개발하려 한다." 그리어 무역대표부 대표는 "칩 수출 통제 문제는 양자 회담에서 전혀 논의되지 않았다"라고 확인했습니다.
중국 내 반응은 더욱 흥미롭습니다. 15일 오전 신랑재경(新浪财经), 차이롄사(财联社), 퉁화순(同花顺) 등 다수의 중국 미디어가 H200 허가 관련 보도를 게재했다가 수 시간 만에 일제히 삭제했습니다. SNS에서는 "당국이 전면 삭제를 지시했다"는 내용이 급속도로 퍼졌습니다. 중국 당국은 H200 담론 자체를 공개 영역에서 제거하고 있습니다. 중국 내 AI 자주화 정책과 H200 구매가 구조적으로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관차자왕(观察者网)의 분석은 핵심을 찌릅니다. "예전에는 중국이 엔비디아에게 칩을 팔아달라고 했지만, 이제는 미국이 중국에게 칩을 사달라고 하는 구조로 역전됐다." H200 1세트(8카드 모듈)의 중국 판매가는 140만 위안(약 2억 8,000만 원)에 달하며 여기에 25% 수익 귀속 조건까지 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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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일 오전 베이징 인민대회당 앞에서 열린 환영식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걷는 뒤로 미국 관료들과 팀 쿡 애플 CEO,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CEO, 젠슨 황 엔비디아 CEO 등의 모습이 보인다. |
| ⓒ AP=연합 |
트럼프는 14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중국이 보잉 200대 구매에 합의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성명 같은 것이지만, 나는 이것이 약속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중국이 보잉으로부터 항공기를 발주하는 것은 2017년 트럼프 1기 방중 당시 300대 계약 이후 약 9년 만의 일입니다.
그러나 이 발표는 미중 양측의 공식 문서 어디에서도 확인되지 않습니다. 중국 외교부 궈자쿤(郭嘉昆) 대변인은 15일 정례 브리핑에서 뉴욕타임스, 블룸버그 기자들의 보잉 발주 관련 질의에 "경제무역 관계 안정, 각 분야 실질 협력 확대에 관한 중요 공감대를 달성했다. 구체적 문제는 담당 부처에 문의하라(具体问题建议向中方主管部门询问)"고만 답했습니다.
보잉도 공식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신화사(新华社)·인민일보(人民日报)·외교부 공식 성명 어디에도 보잉은 단 한 줄도 없습니다. CFR 조 리우(Zoe Liu) 연구원은 "시장의 구매 공약 반응도 매우 모호하다. 보잉뿐 아니라 대두 구매 공약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습니다. 이것이 트럼프가 말한 "환상적인 무역 거래"의 실체입니다.
3. 금융 자본은 연다... 상징이자 레버리지
금융 분야는 이번 회담에서 중국이 미국에 제공한 가장 가시적인 개방 신호로 기능했습니다. 씨티그룹은 4년여를 대기한 중국 내 100% 단독 소유(WFOE, Wholly Foreign-Owned Enterprise) 증권 브로커리지 라이선스(Securities Brokerage License) 심사가 트럼프 방중 시점에 맞춰 완료 처리됐습니다. 증권 중개, 투자은행(IB), 자산운용(AM), 자기매매(Proprietary Trading) 등 외자계 투자은행으로서는 전례 없는 업무 범위를 확보한 것입니다.
골드만삭스는 교차 국경 투자(Cross-border Investment) 채널 확대를 협의했고, 블랙록의 래리 핑크 CEO는 CK 허치슨(長和集團) 글로벌 43개 항구 운영권 인수(230억 달러 규모) 봉쇄 해소를 위해 미중 공동 인프라 펀드 창설을 대안으로 제시했으나 공식 합의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비자는 단독 소유 결제 청산 라이선스에 대한 원칙적 합의에 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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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년 5월 14일 베이징 톈탄공원에서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오른쪽)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
| ⓒ 로이터/연합뉴스 |
회담 전 시장이 기대한 또 하나의 의제는 AI 거버넌스 공동성명이었습니다.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은 회담 당일 CNBC에서 "미중 두 AI 강대국(Two AI Superpowers)이 AI 안전 프로토콜(AI Safety Protocol) 수립을 위한 공식 논의를 시작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AI 거버넌스에 관한 서명된 문건은 공동성명도, 양자 협약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타임지는 이번 회담에서 AI가 '방의 코끼리(Elephant in the Room)'였다고 평가했습니다. 젠슨 황, 팀 쿡, 일론 머스크로 구성된 CEO 수행단의 면면이 AI를 회담의 중심에 놓을 것처럼 보였지만, 정상 간 담판에서는 무역이 먼저였고 AI 의제는 배경으로 밀려났습니다. 베선트의 발언은 AI 안전 대화의 개시를 알리는 의미이자 세계 AI 개발 주체인 G2가 첫발을 내디뎠다는 역사적 의미는 인정하더라도 이번 베이징의 합의는 진행 중인 협의의 선언이지 체결된 협약이 아닌 한계를 지닙니다.
5. 같은 회담, 다른 평론... 미중 언론 보도 비교
이번 회담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은 협상 테이블이 아니라 두 나라 언론 보도의 극명한 대조입니다. 같은 회담을 두고 두 나라 미디어가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① 미중관계 전략적 안정 프레임
• 미국: 선언적 성격에 불과하다고 지적
• 중국: "건설적 안정성" 14번 반복 강조 — 이번 회담의 가장 중요한 성과로 규정
② 보잉 200대
• 미국: 트럼프의 폭스뉴스 구두 발표를 그대로 보도
• 중국: 외교부·신화사·인민일보 공식 성명에 단 한 줄도 없음
③ H200 반도체
• 미국: 납품 0건·교착 구조 집중 보도
• 중국: 관련 보도 수 시간 만에 전면 삭제 지시, 공식 침묵 유지
④ AI 거버넌스
• 미국: 서명 문건 없음, 선언 수준에 그쳤다고 비판
• 중국: 공식 발표에 미포함, 의제 자체를 공식화하지 않음
⑤ 대만
• 미국: "미국 대만 정책 불변" 확인, 전략적 모호성 유지 보도
• 중국: 시진핑 "잘못 처리하면 충돌" 경고를 전면 부각, 최우선 의제로 강조
⑥ 이란·호르무즈
• 미국: 양측 원칙 합의 보도, 이란 무기 제공 금지 확인에 방점
• 중국: 중국이 평화 이니셔티브를 주도하는 책임 대국 이미지 강조
중국 신화사 평론원 사설은 "건설적 전략 안정(建设性战略稳定)"이라는 단어를 14번 반복했습니다. 이 하나의 외교 언어로 중국은 향후 3년 미중 관계의 서사 주도권을 가져갔습니다. 반면 미국이 기대했던 경제적 성과물—H200 납품, 보잉 서명, 희토류 정상화—은 단 하나도 공식화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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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년 5월 1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
| ⓒ AFP/연합뉴스 |
이번 미중 정상회담이 진정으로 시사하는 것은 기술 의제의 미완이나 보잉 발주의 미확인이 아닙니다. 그것은 협상 구조 자체의 역전입니다.
2017년 트럼프의 첫 방중에서 중국은 2,535억 달러 규모의 대형 계약을 미국에 제공했습니다. 그것은 시장이 아쉬웠던 중국이 미국에 내민 손이었습니다. 2026년의 베이징은 다릅니다. H200을 허가해도 사지 않고, 보잉 구매를 약속해도 서명하지 않으며, 금융을 열어도 레버리지를 손에 쥔 채로 열었습니다. 관차자왕(观察者网)의 분석이 이것을 가장 날카롭게 정리합니다. "예전에는 중국이 엔비디아에게 칩을 팔아달라고 했지만, 이제는 미국이 중국에게 칩을 사달라고 하는 구조로 역전됐다."
CSIS는 중국이 많은 핵심 이슈에서 미국에 맞설 충분한 자신감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애틀랜틱 카운슬(Atlantic Council)은 "큰 쇼였다, 보여줄 것은 거의 없이(A big show, with little to show for it)"라고 총평했습니다. 미국 방문단이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 중국측에서 받은 모든 선물을 버리고 가는 사진은 양국이 서로 신뢰하지 못하는 앞날을 시사하는 듯 합니다.
그러나 이 회담의 특징은 미국은 통제된 기술 허가라는 카드를 제시했고, 중국은 자본 시장 개방이라는 상징을 내줬습니다. 둘 다 실질 없이 교환한 셈입니다.
우리에게 이번 회담이 남긴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영구적 동맹도 영원한 적도 없는 국제 정치에서 오직 영구적 국익만이 협상 테이블 위에 놓였습니다. 그리고 그 국익의 언어는 이제 관세율이 아닌 수출 통제 프레임워크와 AI 생태계 자주화의 속도로 쓰입니다.
미중 시소게임에서 무게 중심이 움직이는 이 시대에 우리가 꺼낼 수 있는 유일한 카드는 어느 쪽도 우리 없이는 기술 공급망을 완성할 수 없다는 기술적 불가결성(Technological Indispensability)의 구조를 만드는 것뿐입니다. 감상이 아닌 팩트, 구호가 아닌 기술로 승부해야 할 시간입니다.
덧붙이는 글 | 임선영씨는 중국전문가로 <중국경제미래지도>의 저자입니다. 이 글은 본인의 페이스북에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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