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죽거나, 오빠가 죽어야 하는 비극의 여자들

박홍순 2026. 5. 16. 10:38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미술로 만나는 인문학] 여성성이란? ① 연약한 여성

[박홍순 기자]

 자크 루이 다비드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1786년
ⓒ 퍼블릭 도메인
오래전부터 여성의 타고난 특성을 규정하려는 시도가 이어져 왔다. 특히 남성과 다른, 어떤 면에서는 대립적이기도 한 여성성을 강조하는 시도가 많았다. 남성이 강인한 힘과 용기를 가진 존재라면, 여성은 연약하고 감성적인 존재로 구별했다. 비록 소수이기는 하지만 당연히 이러한 대조가 부당하다는 반론도 날카롭게 제기되었다.

신고전주의 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의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에는 통념적인 남성성과 여성성 대비가 극명하게 나타난다. 신고전주의는 고대의 역사와 신화를 소재로 현실의 교훈을 끌어내는 작업을 중시했다. 이 그림도 로마 제국 건설 과정에서 나타난 개인의 영웅적인 희생을 담음으로써 신고전주의 미술 시대의 본격 개막을 알리는 작품이 되었다.

남성과 대비되는 여성의 속성

전투에 나서는 세 형제가 아버지와 칼을 앞에 두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우겠다며 선언한다. 형제들의 눈초리에서 두려움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목숨을 던져서라도 오직 승리만을 쟁취하겠다는 결의만 가득하다.

전장에 세 아들을 내보내는 아버지의 표정도 마찬가지다. 서로 죽여야 승부가 결정되는 싸움이기에 최소한 한두 명, 최악에는 세 명의 자식 모두를 다시는 못 볼 상황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눈은 자식을 향하기보다는 국가 운명이라는 이상을 향해 불타는 듯하다.

고대 로마 역사가 리비우스의 <로마 건국사>에 실린 일화를 담았다. 로마 왕국이 통일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오랜 경쟁 관계이던 알바 왕국을 굴복시켜야 했다. 하지만 두 왕국이 전면전을 치르면 설사 한쪽이 이기더라도 전력이 결정적으로 약해질 게 분명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각 왕국을 대표하는 3명씩의 전사가 전투를 벌여 최후에 살아남는 쪽이 승자가 되기로 합의했다. 알바 왕국 큐라티우스 가문의 세 형제가 출전하기로 했고, 이에 맞서 로마 왕국 호라티우스 가문의 세 형제가 나섰다.

그림은 전투를 앞둔 형제들의 맹세라는 극적인 순간을 담았다. 전투 결과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전투 과정에서 호라티우스 가문의 두 형이 먼저 죽는다. 패색이 짙어지는 순간에 막내가 기지를 발휘하여 상대 형제의 목을 차례로 자르고 승리를 거둔다. 그리하여 알바 왕국을 합병한 후 로마 제국을 향한 강력한 교두보를 마련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국가의 번영을 위해서라면 개인이 망설임 없이 목숨을 던져 희생해야 한다는 교훈을 전한다. 절대 군주인 프랑스 루이 16세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점도 그림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게 해준다. 애국적 희생이라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화가는 연극무대처럼 어두운 배경에 밝은 빛을 받는 인물로 극적인 연출을 했다.

또한 화가는 역사 이야기와 그림에 담긴 이미지를 통해 남성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근육이 터질듯한 강인한 힘을 강조했다. 이에 비해 오른편의 여인들은 오직 가족의 안위만을 걱정하며 슬픔에 잠겨 있는 모습이다. 연약하고 감성적인 존재라는 점이 뚜렷하게 대비되도록 묘사했다. 다비드의 이 그림만이 아니라 영웅적인 순간을 캔버스에 담은 화가들 그림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남성의 선택에 좌우되는 여자의 운명

우리나라의 고대 역사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백제의 계백 장군 이야기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는 백제 의자왕을 다룬 내용에서 계백이 결사대 5천 명을 거느리고 신라 군사와 싸워 처음에는 몇 차례 이겼으나, 결국 군사가 적고 힘이 모자라 패배하고 죽었다는 정도의 간략한 이야기만 나온다.

신채호의 <조선상고사>는 여러 사료를 취합해 다음처럼 비교적 상세한 이야기를 다룬다. 계백이 5천의 군사로 10배의 적을 막아야 하는 상황에서 비상한 결단을 내린다.

계백이 처자를 불러 말했다. "남의 포로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내 손에 죽어라." 그리고는 칼을 빼 그 자리에서 쳐 죽이고 군중으로 가서 병사들을 모아 세워놓고 맹세하여 말했다. (…) "우리 5천 군사가 한 사람당 10명을 당해낸다면 신라의 5만 명을 어찌 겁내겠는가."

국가 이익을 위해 자신과 가족의 생명 따위는 가볍게 여겨야 한다는, 영웅의 덕성을 강조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에 대응하는 신라 이야기에서도 유사한 교훈이 제시된다. 계백이 이끄는 백제 군사들의 결사적인 항전으로 전투에서 네 번이나 패하고 사상자가 1만여 명에 이르자 김유신도 비상한 대책을 세운다.

김유신의 동생인 흠순과 부하 품일이 나선다. "먼저 나의 자식을 죽여 남의 자식들이 죽음을 무릅쓰도록 격려하여 혈전을 벌이지 않으면 안 되겠다." 둘은 각각의 아들 반굴과 관창을 불러, "위기를 당하여 목숨을 바쳐야 충과 효를 다했다"라고 할 수 있다며 백제군을 향해 사실상의 자살 공격을 시킨다.

반굴이 백제 진영으로 돌진하여 전사한다. 이어 관창이 돌진하여 싸우다 사로잡히지만, 계백은 16세밖에 안 된 소년이라며 돌려보낸다. 하지만 곧바로 다시 말을 몰아 백제 군대에 달려드니 목을 벤 후 말꼬리에 달아 보낸다. 이에 신라의 모든 병사가 감격하여 결전의 용기를 다지며 총공격에 나서 결국 승리했다는 이야기다.

세부적인 내용에서 차이는 있지만,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로마의 호라티우스 형제 이야기와 판박이처럼 닮아있다. 국가를 위한 철두철미한 희생정신, 가족은 제물이 되어도 상관없다는 결의가 영웅으로서의 남성이 가져야 할 덕목이다. 이 과정에서 여성은 연약하거나 수동적인 존재로 비교된다.
 다비드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부분
ⓒ 퍼블릭 도메인
나는 다비드의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에서 오른편에 조연으로 등장하는 여인들이 더 눈에 들어온다. 가운데 여성은 울다 지쳐서 몸을 지탱할 힘도 남아 있지 않은 듯 두 팔을 늘어뜨리고 의자에 몸을 맡기고 있다. 몸만이 아니라 정신도 내려놓은 느낌이다.

그녀는 이 집안의 남자들이 혈전을 벌일 알바 왕국의 큐라티우스 가문에서 시집온 사비나다. 다음 날이면 남편이 죽거나 아니면 친정 오빠가 죽어야 하는 비극적 상황에서 몸과 정신을 지탱할 도리가 없다. 왼쪽으로는 그녀의 두 자녀가 두려움에 떨고 있다. 시어머니가 어린 두 손주를 달래지만 어떤 불행이 닥칠지 직감하는 눈치다.

흰옷을 입은 여인도 깊은 시름에 잠겨 있다. 옆의 여인에게 고개를 기댄 채 절망적인 표정을 짓는다. 당장이라도 소리 내어 울 듯한 표정이다. 이 여인은 또 어떤 사연이 있길래 이토록 비탄에 잠겨 있는가? 세 형제의 여동생인 카밀라인데, 이미 알바 왕국의 큐라티우스 가문 아들과 약혼을 맺은 상태다.

결투를 벌일 두 집안은 이중으로 맺어진 사돈 관계였다. 오빠가 죽든가, 사랑하는 약혼자가 죽든가, 아니면 둘 다 죽을 운명이다. 결투로 가문과 국가 간의 승패는 있을지언정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가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게 된다.

그림에서 여성들은 무력하다. 남성들이 과장된 동작으로 근육을 꿈틀거리며 도전적인 자세를 보인다면, 여성들은 그저 울거나 넋을 놓고 있을 뿐이다. 아무리 비극적인 결과가 앞에 다가올지라도 남성들의 처분에 자기 운명을 맡길 뿐이다. 국가의 존망이 걸린 결정적인 선택 앞에서 개인의 관계나 처지에만 몰두하는 허약하고 감성적인 여인의 이미지다.

여성성과 남성성의 극단적인 대비

두 왕국을 대표하는 가문 사이의 전투 이후 이어지는 사건에서도 남성성과 여성성의 극단적인 대비가 나타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두 형은 죽고, 막내가 상대 세 형제 모두의 목을 자른 후 로마 왕국이 승리한다. 영웅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 오빠에게 카밀라가 사랑하는 약혼자를 죽였다며 거칠게 비난을 퍼붓는다. 분노한 오빠는 여동생을 칼로 찔러 죽인다. 살인죄로 기소된 아들을 아버지가 변호해 목숨을 구한다.

국가의 명운을 짊어지고 두 오빠는 전투에서 죽었고, 막내 오빠가 가까스로 살아 돌아왔다. 그런데 여동생은 약혼자와의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어 오빠를 저주하는 한심스러운 존재로 그려진다. 공적인 사고보다는 사적인 감정에 머물며 징징거린다. 심지어 오빠에 의해 살해당한 후에도 여성은 사회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된다.

연약함과 감성을 여성의 고유한 특성으로 보는 견해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법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여자들의 특성은 각각의 천성이 차이가 난다는 점에 의해서 명확히 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호방함이야말로, 그리고 용기 쪽으로 쏠림은 남성적 특성이라 말해야 하지만, 단정하며 삼가는 쪽으로 더 기울어짐은 더 여성적 특성이라 말해야 합니다."

플라톤은 나라를 수호하는 일에 여성도 참여시켜야 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음에도 연약함은 어쩔 수 없는 천성이라고 본다. 대화편 <국가>에서 나라의 수호를 위해 여성에게도 체육 교육이 필요함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가벼운 것들은 여성의 연약함 때문에 남자들보다도 여자들에게 부여되어야만" 한다. 힘을 사용하지 않을 부차적인 일로 제한해야 한다.

영국 극작가 셰익스피어도 <햄릿>에서 여성을 자립이 어려운 약한 존재로 묘사한다. "그녀는 먹을수록 식욕이 더 늘어나는 것처럼 아버님께 매달렸지. 그런데 한 달도 못 되어……. 생각 말자. 약한 자여, 네 이름은 여자로다." 어머니에 대한 비난이다. 이전에는 왕이었던 남편에게 매달려 살았다. 바람이 얼굴에 드세게 스치지도 못하게 할 정도로 남자의 보호를 받았다. 남편이 죽은 후에 다시 다른 남자에게 의존하는 '약한 자'가 바로 여성이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