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지원으론 부족"… 법인세 감면 등 '파격 투자 유인책' 절실 [한국 영화, 돈이 마른다②]

류지윤 2026. 5. 16.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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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연대 "영화시장 새로운 자금 들어올 수 있는 구조 필요"

"지원 사업에 선정됐는데도 투자를 못 받아 제작을 포기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박관수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부대표가 지난 4월 9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2026년 한국영화산업의 위기와 대책'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문제는 단순히 관객 감소가 아니다. 기획이 있고 정부 지원 사업에도 선정됐지만, 시장에서 나머지 제작비를 끌어오지 못해 영화 제작 자체가 무산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몇 년 전만 해도 상황은 달랐다. 박 부대표에 따르면 영화 '원더랜드'에는 영화 계정뿐 아니라 문화 계정 등 다양한 펀드 자금이 20개 가까이 부분 투자 형태로 들어왔다. 영화 수익성이 높았던 시기에는 영화 전용 펀드가 아니더라도 수익을 기대한 자금이 자연스럽게 영화시장으로 유입됐다는 의미다. 그러나 지금은 그 자금들이 대부분 빠져나갔다. 박 부대표는 "다른 계정 펀드들도 영화 수익성이 있으니까 들어왔던 건데 지금은 그런 자금들이 다 빠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영화계는 현재 위기를 단순한 흥행 부진보다 "투자 시장 자체가 무너지고 있는 상황"으로 보고 있다. 특히 문제로 지목되는 건 재무적 투자자(FI·Financial Investor)의 이탈이다. 재무적 투자자는 영화 제작 자체보다 수익률을 목적으로 투자하는 벤처캐피털이나 금융권 자금을 뜻한다. 한국 상업영화 평균수익률은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10.9%였지만 2020년 –30.3%, 2023년 –31%까지 추락했고, 천만 관객 영화가 두 편이나 나온 2024년에도 –16.4%에 그쳤다. 수익이 나지 않는 시장에 재무적 투자자가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다.

김승범 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 대표는 "펀드는 전략적 투자자(SI·Strategic Investor)와 재무적 투자자(FI)로 나뉘는데, FI들이 원하는 건 결국 수익률"이라며 "한국 영화 수익률이 좋았을 때는 재무적 투자자들이 몰렸지만 지금처럼 어려울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영화 투자 시장에서는 펀드 결성 자체가 어려워지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김 대표는 "재작년과 작년에는 모태펀드 출자를 받았음에도 LP(Limited Partner·펀드 출자자)를 모집하지 못해 조성 자체가 무산된 펀드들이 꽤 있었다"며 "LP들에게 출자금의 2배 이상 투자를 약속하는 이면 합의를 통해 간신히 펀드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영화 투자 시장에서는 이제 펀드 결성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과거에는 영화 수익률을 기대한 벤처캐피털과 금융권 자금이 자연스럽게 유입됐지만, 코로나19 이후 투자 손실이 커지면서 재무적 투자자(FI)들이 빠르게 이탈했다. 여기에 상업영화 평균 제작비까지 100억원 안팎으로 커지면서 기존 규모의 영화 펀드로는 현재 시장을 감당하기 어려워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화인연대는 현재 시장 규모를 유지하려면 최소 500억원 이상 규모 펀드 여러 개, 혹은 1000억원대 펀드 두세 개가 동시에 움직여야 한다고 보고 있다.

영화계는 특히 현재 모태펀드 구조가 시장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금 구조는 정부가 일정 금액을 먼저 출자하면 민간 투자자들이 나머지 자금을 채워 펀드를 완성하는 방식인데, 민간 투자 자체가 급감하면서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은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회장은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만들어진 모태펀드가 지금은 사실상 대기업 중심 구조로 흘러가고 있다"며 "그렇게 해서라도 한국 영화를 살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결과적으로 정부도, 대기업도 뚜렷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배급사와 벤처투자자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정부 모태펀드만 남았지만, 영화계는 이 역시 한계에 도달했다고 본다. 김승범 대표는 "지금처럼 기존 대기업들이 펀드를 결성하고 다시 그 돈을 사용하는 구조만 반복해서는 시장이 살아나기 어렵다"며 "결국 새로운 자금이 영화시장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영화인연대는 '규모의 전환'을 핵심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정부가 앵커 투자자로 직접 참여해 1000억원 이상 규모의 대형 전략 펀드를 조성하고, 이를 통해 2~3년간 제작 편수를 빠르게 회복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영화인연대 측은 2025년 개봉 한국 영화 총 제작비가 2024년 대비 약 40% 급감한 3000~35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100억원대 영화들의 제작비 합계만 약 2000~2500억원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영화인연대 측은 "2000억원 이상의 펀드가 조성돼 2~3년간 의무 투자 비율을 맞춰 투자한다면 빠른 시간 안에 제작 편수를 회복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업계는 2025년 출범한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에 주목하고 있다. 미디어·콘텐츠 분야에 향후 5년간 5조원 규모 투자가 예정된 만큼, 이 가운데 일부를 영화·영상 콘텐츠 펀드에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영화계는 단순한 정부 출자 확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현재 구조에서는 민간 자금 유입 자체를 다시 활성화할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영화인연대는 일반 기업과 금융권 자금이 영화 투자에 참여할 수 있도록 세제 혜택 도입 필요성도 함께 주장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두 트랙으로 나뉜다. 대형 펀드에는 영화·배급·상영업 관련 기업의 출자를 배제한 채 한류 수혜 업종 기업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법인세 감면 혜택을 부여하자는 것이다. 중규모 펀드에는 개인 투자자가 LP로 참여할 경우 소득공제 혜택을 주는 방식이 제안됐다. 박관수 부대표는 스타트업 지원 플랫폼 '디캠프'(D.CAMP) 사례를 언급하며 "당시 은행권에 법인세 혜택이 있었기 때문에 민간 자금 유입이 가능했고, 결과적으로 토스·당근마켓 같은 성공 사례가 나올 수 있었다"며 "영화산업 역시 일반 기업 자금이 들어올 수 있는 구조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소 규모 영화 보호를 위한 별도 구조도 제안됐다. 영화인연대는 제작자들이 직접 유한책임회사(LLC)를 설립해 펀드를 운영하고 모태펀드 출자 비율을 70% 이상으로 높이는 방안을 내놓았다. 상대적으로 투자 유치가 어려운 중저예산 영화와 신인 감독 프로젝트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이 구조에서 개인 투자자가 소득공제 혜택을 받으며 LP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면 대기업 배급사 영향력에서 벗어난 독립적 투자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는 논리다.

이은 회장은 "한두 편의 천만영화를 더 만드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며 "많은 영화들이 공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정부가 과감하게 펀드를 조성해 다양한 영화들이 제작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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