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살 인생에서 제일 좋은 순간" 가능케 한 스승의 한 마디
짧은 숏폼 콘텐츠가 대세인 시대에 느림에 주목합니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성공보다는 태도'를 보여주는 드라마나 예능에서 마음의 위로를 얻고 인생의 지혜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김지은의 그거 봤어?'에서 다루는 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김지은 기자]
지난 10일 <우리동네 야구대장>의 첫 장면은 리틀 타이거즈 선수들이 나지완 감독과 함께 무등산에 오르는 장면이었다. 성인도 왕복 5시간 걸리는 쉽지 않은 코스다. 올라갈수록 험하고 가파른 산길이 나왔고 어린 선수들(초등학교 3, 4학년으로 구성)은 너무 힘들어했다.
감독은 연신 '타이거즈 정신'을 키워야 한다며 지친 선수들을 격려했고, 세 시간 반 만에 모두 등반에 성공했다. 그 전날 나는 290m 높이의 안산 봉수대에 오른 뒤에도 고단함에 낮잠을 잤는데, 1100m를 오른 아이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타이거즈 정신'이 대체 뭐길래, 하고 생각하던 찰나, 한 선수가 "감독님! 타이거즈 정신이 뭐예요?" 하고 물었다. 나지완 감독의 당황한 눈빛. 그렇게 '타이거즈 정신'을 강조했는데 정작 아이들은 '타이거즈 정신'을 모른다. 감독은 한번 물면 놓지 않는 호랑이처럼 헝그리 정신으로 열심히 하는 거라고 설명했다. 아는 체하지 않는 아이의 모습에 웃음이 났다.
아이들은 패배에서도 배운다
야구 예능인데 경기 장면이 바로 나오지 않고, 각 팀의 연습 장면을 보여주는 건 경기 결과 못지않게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승패가 있는 경기이니, 누군가는 패배하겠지만, 그럼에도 그 과정은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선수들의 몸에 차곡차곡 쌓일 게 분명하다.
리틀 트윈스와 리틀 타이거즈의 경기 방송이 이어졌다. 리틀 트윈스의 장타력과 수비 실력이 놀랄만큼 늘었다. 리틀 트윈스가 계속 우위를 점하고 있을 때, 리틀 타이거즈에게 아쉬운 판정이 하나 있었다. 홈에서 태그가 된 것 같은데 심판은 태그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비디오 판정이 없는 상황에서 충분히 애매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4심 합의 후에도 원심은 그대로 유지됐고 리틀 타이거즈 선수들은 아쉬움에 입이 삐죽 나왔다. 그때 타이거즈 코치는 "지나갔지? 지나간 건 신경 쓰지 말고 할 거 하자!"라며 선수들을 다독였다. 그러고는 그다음 이닝에서 리틀 타이거즈는 역전을 했다.
그러나 바로 그다음 이닝, 리틀 트윈스의 엄청난 공격력에 리틀 타이거즈는 재역전당하고 말았다. 감독 나지완은 상대 팀 타자들의 실력에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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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라운드 경기에서 이긴 리틀 트윈스 선수 인터뷰 장면 지고 있을 때도 포기하지 않아서 이길 수 있었다고 말한다. |
| ⓒ KBS2 우리동네야구대장 |
얼마 전 본 영상 하나가 생각났다. 유튜브 <핫이슈지>의 극한직업 유치원 교사(두 번째 편)의 내용이다. 한 부모가 유치원 교사에게 민원을 제기한다.
"저희 애가 그러는데 선생님께서 애랑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기셨다면서요? 제가 애한테 그 얘기를 듣는데 막 심장이 벌렁벌렁 뛰고 손발이 벌벌 떨려가지고 잠을 한숨을 못 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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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핫이슈지 채널의 극한직업 유치원 선생님편 (2) 유치원선생님이 달린 아이들에게 모두 1등이라고 말하고 있다. 정말 1등으로 들어온 아이는 울음이 터진다. |
| ⓒ 핫이슈지 |
"우리 도윤이 일등 했네. 축하해, 우리 아린이 일등 했네, 축하해. 이서도 일등! 축하해."
이렇게 모든 아이에게 '1등'이라고 하는 이유는 유치원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정서 돌봄'이라, 정서 보호 차원에서 이렇게 말한다고 했다. 쓴웃음이 '허허허' 나왔는데, 영상 아래는 '현실보다 순한 맛'이라는 교사들의 댓글이 엄청나게 달렸다. 중학생 딸에게 물어보니 자신이 초등학생일 때도 운동회는 항상 무승부로 끝났다고 했다.
"분명히 어떤 팀이 더 잘했는데도 응원점수 더 줘서 꼭 동점으로 만들어. 완전 별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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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패배 후 인터뷰하고 있는 리틀 타이거즈 선수 이 날의 패배를 발판 삼아 더 열심히 할 것을 다짐한다. |
| ⓒ KBS2 우리동네야구대장 |
어른들이 든든한 안전 기지가 되어 줄 때
정서적 근육의 힘을 떠올리게 된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지난 4화에 방영되었던 리틀 타이거즈 포수, 나호준 선수의 이야기다.
첫 번째 경기에서 패한 후, 두 번째 리틀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나호준 선수는 3안타 4타점을 올려 팀 승리에 큰 기여를 했다. 경기후 MVP인 '야구대장'으로 선정되어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알고 보니 나호준 선수에게는 고음역 난청이라는 청력 문제가 있었다.
코치나 감독이 사인을 낼 때 하는 '취취취' 소리가 어디서 들리는지 몰라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장면이 잡혔다. 어린 선수지만 자신의 불편함을 핑계 삼지 않고 더 열심히 상대방의 움직임을 살피고 경기에 집중하는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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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동네 야구대장> 중 한 장면. |
| ⓒ KBS |
"오늘이 제가 산 인생 중에서 제일 좋은 순간 같습니다."
아이가 나아갈 수 있게 믿어주고 격려할 때, 아이의 정서적 근육은 단련되고 예상보다 더 멀리까지 나아가 인생의 가장 좋은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는 생각에 코끝이 찡해졌다. 우리 아이가, 또 내가 아는 많은 아이들이 그렇게 자신의 길을 나아가며 인생의 좋은 순간을 가득 맞이하게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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