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은 '안정'을 말했지만, 한국은 '위험'을 읽었다
미국 언론은 중국의 대만 경고와 백악관 발표문의 침묵을 봤다. 일본 언론은 희토류 기대와 대만 불안을 함께 읽었다. 한국 언론은 ‘안정’이라는 말과 ‘구체적 성과 없음’ 사이의 간격을 짚었다. 세 나라 언론의 독법은 서로 달랐지만 결론은 하나로 만난다. 미중의 전략적 안정은 한국의 안전을 자동으로 보장하지 않는다. <기자말>
[김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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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년 5월 14일 베이징 톈탄공원에서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오른쪽)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
| ⓒ 로이터/연합뉴스 |
한국 입장에서 이 회담의 첫 장면은 베이징이 아니라 인천공항일 수 있다. 회담 전날인 5월 13일,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과 허리펑 중국 부총리는 인천국제공항 귀빈실에서 비공개 무역 협상을 했다. <연합뉴스>와 <로이터>는 두 사람이 트럼프·시진핑 정상회담 의제를 조율하기 위해 만났다고 보도했다. 양측은 한국 땅에서 사전 협상을 했지만, 최종 문장은 워싱턴과 베이징이 썼다.
이 장면은 한국의 위치를 압축한다. 한국은 회담장이 아니었지만 회담 의제가 지나간 통로였다. 그리고 그 의제는 한국의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 에너지 가격, 해상 물류와 직접 맞닿아 있다. 그래서 이번 회담은 "미중 정상이 만났다"는 외교 뉴스로만 읽어서는 부족하다. 일본·미국·한국 언론의 서로 다른 시선을 겹쳐 읽어야 한국의 위험 지도가 보인다.
일본 언론은 희토류와 대만을 같은 문장으로 읽었다
일본 언론의 초점은 단순한 기대가 아니었다. <로이터> 일본어판은 일본 정부 내부에서 미중 경제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가 있으나, 동시에 안보 우려도 크다고 전했다. 중국의 희토류 대일 수출 규제가 완화될 수 있다는 기대가 있지만, 그 이익이 일본 기업까지 이어질지는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불안은 대만 문제였다. 미중이 경제 거래를 앞세워 대만 문제에서 예상 밖의 접근을 보일 수 있다는 경계가 일본 정부와 전문가 사회에 깔려 있었다.
TV아사히도 비슷한 구도를 짚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간선거를 앞두고 경제와 무역 성과를 원하고 있으며, 중국산 희토류와 관세를 둘러싼 임시 휴전의 연장을 기대하고 있다. 동시에 미국은 이란과 호르무즈 해협 문제에서 중국의 협조를 얻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 대가로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나 미국의 대만 관여에서 중국에 어떤 "배려"를 보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고 일본 언론은 보도했다.
일본이 이렇게 민감한 것은 과잉 반응만은 아니다. 일본 제조업에서 희토류는 외교 용어가 아니라 공장의 언어다. 전기차 모터, 전자부품, 방산 장비, 고성능 자석, 반도체 소재가 모두 핵심 광물 공급망에 걸려 있다.
대만해협은 지도 위의 해협이 아니라 일본 안보 전략의 전방이다. 미중 갈등이 완화되면 경제에는 숨통이 트일 수 있지만, 그 완화가 미국의 동아시아 안보 관여 후퇴로 이어질 경우 일본은 더 큰 계산서를 받게 된다.
이것은 일본식 실패학의 현재형이다. 위험은 어느 날 갑자기 폭발하지 않는다. 이미 보이는 불편한 신호를 '이번만은 괜찮겠지' 하고 넘길 때 커진다. 일본 언론이 이번 회담에서 본 것은 미중의 화해가 아니라 '화해라는 이름 아래 대만과 희토류가 같은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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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일 오전 베이징 인민대회당 앞에서 열린 환영식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걷는 뒤로 미국 관료들과 팀 쿡 애플 CEO,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CEO, 젠슨 황 엔비디아 CEO 등의 모습이 보인다. |
| ⓒ AP=연합 |
<로이터> 보도도 같은 흐름을 보여준다. <로이터>는 시 주석이 '건설적이고 전략적으로 안정적인 관계'라는 새 표현을 제시하면서도, 미국이 대만 문제를 극도로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대만 정부의 반응을 전한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백악관은 발표문에서 대만을 언급하지 않았고, 트럼프 대통령 역시 사진 촬영 중 대만 관련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반면 미국이 공개적으로 앞세운 의제는 호르무즈 해협, 이란 문제, 무역, 펜타닐, 시장 접근 등이었다. <로이터>는 미국 무역대표부 제이미슨 그리어 대표가 중국이 호르무즈 해협의 재개방, 통행료 없는 통항, 군사 통제 없는 흐름을 원한다는 점이 회담에서 분명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미국은 중국의 이란 영향력을 필요로 했고, 중국은 그 필요를 알고 있었다.
이 장면을 단순히 "미국이 대만을 포기했다"고 해석하는 것은 성급하다. 미국의 공식 대만 정책이 바뀌었다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주변국이 긴장할 이유는 충분하다. 중국은 대만을 전면에 두고 발언했고, 미국은 호르무즈와 경제 성과를 더 크게 말했다. 전략적 안정이라는 표현이 등장한 바로 그 자리에서, 가장 민감한 안보 의제는 백악관 발표문의 중심 문장이 되지 못했다.
한국 언론은 안정 메시지와 빈손 회담 사이를 봤다
한국 언론의 독법은 일본이나 미국과 조금 달랐다. <연합뉴스>는 이번 회담을 9년 전 트럼프 1기 시기 베이징 회담과 비교하며 '달라진 위상'을 강조했다. 2017년 중국이 미국 대통령에게 대규모 선물 보따리를 안겨주던 장면과 달리, 이번에는 공동 기자회견 없이 양측이 짤막한 발표문으로 결과를 대신했다는 것이다.
<뉴시스>도 "안정이 핵심 단어"였지만, 구체적 성과는 아직이라고 평가했다. 대만, 희토류, 이란 협력 등 핵심 현안의 이견은 여전히 남아 있고, 양국이 환대와 덕담으로 분위기를 관리했을 뿐 실제 합의는 제한적이라는 분석이다. 한국 언론이 본 핵심은 바로 이 간극이다. 미중은 충돌을 피하겠다고 말했지만, 그 말만으로 한국의 공급망과 에너지 불안이 해소되지는 않는다.
<매일경제> 기사는 같은 문제를 다른 언어로 보여준다. 보도에 따르면 한국은 희토류의 산업적 중요성이 매우 큰 나라지만, 희토류 수입의 91.2%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방산, 배터리 등 국가 전략산업이 모두 희토류 공급망에 연결돼 있다. 또한 희토류 가공 기술이 중국의 독점 구조 안에 놓여 있다는 지적은 한국이 단순한 구매자가 아니라 구조적 취약성을 가진 국가임을 보여준다.
인천공항의 사전 협상, 베이징의 정상회담, 호르무즈 해협의 에너지 통항, 대만해협의 군사 긴장, 중국의 희토류 통제는 따로 떨어진 뉴스가 아니다. 한국 경제 안에서는 이 모든 요소가 하나의 위험망으로 연결된다. 관세가 완화되면 수출 기업은 숨을 돌릴 수 있고, 희토류 공급이 안정되면 배터리와 자동차, 방산 기업도 안도할 수 있다.
호르무즈 해협이 열리면 유가와 물류비 부담은 줄어든다. 그러나 대만 문제가 불안정하게 봉합되거나 기술 통제와 공급망이 강대국 간 양자 거래의 부속물이 되면 한국은 또 다른 형태의 비용을 치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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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년 5월 15일 베이징 중난하이 정원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 ⓒ AP/연합뉴스 |
중국이 말한 전략적 안정은 대만 문제에서 미국이 중국의 '선을 넘지 않는 상태'에 가까운 안정이다. 미국이 말한 안정은 호르무즈 해협의 에너지 흐름 유지와 무역 성과, 국내 정치 부담 완화에 가까워 보인다. 일본이 두려워한 것은 이 두 안정이 맞물리는 순간이다. 미국은 경제와 에너지 성과를 얻고, 중국은 대만 문제에서 더 큰 발언권을 확보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물어야 할 질문도 여기에 있다. 미중의 전략적 안정이 한국의 안전을 보장하는가. 대만해협의 긴장은 반도체 공급망과 안보 문제로 이어진다. 희토류는 자동차, 배터리, 방산, 전자산업의 원가와 납기 문제다. 호르무즈는 유가, 전기요금, 물류비, 소비자 물가의 문제다. 이 세 가지는 외교부 발표문 안에서만 움직이지 않는다. 공장 가동률과 기업 투자, 청년 일자리와 가계부로 내려온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미국이냐 중국이냐'라는 단순한 선택 구호가 아니다. 물론 동맹과 가치, 국익의 우선순위는 분명해야 한다. 그러나 복합위기의 시대에는 외교 구호만으로 안전을 만들 수없다. 한국이 해야 할 일은 강대국의 선의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충격이 와도 버틸 수 있는 위험관리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첫째, 대만해협·호르무즈·희토류·반도체·배터리·금융시장·물류비를 하나의 국가복합위기 지도로묶어야 한다. 지금처럼 부처별로 위험을 따로 계산하면 위기가 겹칠 때 대응이 늦어진다. 외교안보 부처는 대만을, 산업 부처는 희토류를, 에너지 부처는 호르무즈를, 금융당국은 환율과 유가를 각각 따로 보는 방식으로는 복합충격을 설명할 수 없다.
둘째, 핵심광물 비축과 가공기술 확보를 산업정책의 주변 과제가 아니라 안보정책의 중심 과제로올려야 한다. 희토류는 단순한 원자재가 아니다. 가공기술, 환경 규제, 숙련 인력, 대체 공급망, 재활용 기술이 한 묶음으로 움직인다. 한국이 중국 의존도를 낮추려면 구매처 다변화만으로는 부족하다. 국내 가공기술 확보, 동맹국과 공동 비축, 기업별 비상 생산계획을 동시에 설계해야 한다.
셋째, 에너지 안보를 유가 전망이 아니라 해상수송로 리스크로 봐야 한다. 호르무즈 해협의 불안은중동 뉴스가 아니라 한국 물가 뉴스다. 유조선 통항, 보험료, 항만 물류, 전략비축유, LNG 조달, 전력요금이 모두 연결돼 있다. 정부는 위기 때마다 가격 안정 대책만 발표할 것이 아니라 주요 해상로 차질 시나리오와 산업별 충격 완화 방안을 미리 공개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넷째, 국민에게 위험을 숨기지 않는 공적 언어가 필요하다. 국제정세를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포장하면 단기적으로는 시장을 안심시킬 수 있다. 그러나 위기가 실제로 닥쳤을 때 신뢰는 더 크게 무너진다. 안전사회란 위험이 없는 사회가 아니다. 위험을 미리 보이게 만들고, 충격이 와도 무너지지않도록 제도를 설계한 사회다.
베이징의 악수 뒤에 남은 한국의 질문
중국은 대만을 말했다. 미국은 호르무즈를 말했다. 일본은 그 사이에서 희토류와 대만을 같은 문장으로 읽었다. 한국 언론은 안정이라는 말 뒤에 남은 빈칸을 봤다. 그 빈칸이 바로 한국의 숙제다.
미중이 충돌하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미중의 안정이 한국의 안전과 같은 말은 아니다. 강대국의 안정은 때때로 주변국의 침묵을 요구한다. 대만 문제에서 그 침묵이 시작되고, 희토류와 에너지에서 그 비용이 청구될 수 있다.
그래서 이번 회담의 핵심은 시진핑의 미소나 트럼프의 찬사가 아니다. 한국이 확인해야 할 것은 그미소와 찬사 사이에서 우리의 공급망과 에너지 안보를 누가, 어떤 제도로 지킬 것인가다. 미중의 전략적 안정이 한국의 안전을 대신해주지 않는다면, 한국은 이제 자신의 안전을 스스로 설계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영근은 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 겸 인문학과동아시아문화산업과정 교수이다. 도쿄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 박사를 취득했으며,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및 계명대 일본학과 조교수를 역임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동아시아 국제관계, 재난·안전학, 미래리스크 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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