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이 무너진 날, 1929년 [신간]

조동현 매경이코노미 기자(cho.donghyun@mk.co.kr) 2026. 5. 15.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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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

주가가 폭등한다. 2026년 대한민국만의 풍경일까. 아니다. 1929년 10월 뉴욕 증시 대폭락 직전 월스트리트도 그랬다. 인공지능(AI)과 반도체, 가상화폐를 둘러싼 낙관론이 세계 자산 시장을 달구는 지금, 100년 전 월스트리트의 광기가 섬뜩한 거울처럼 되살아난다. 미국 뉴욕타임스 금융 전문 저널리스트 앤드루 로스 소킨이 쓴 ‘1929’는 대공황의 도화선이 된 주가 대폭락의 전말을 추적한 금융 논픽션이다. 저자는 8년에 걸친 취재와 사료 조사를 바탕으로 주가 대폭락의 전말인 1929년 2월부터 1933년 6월까지 52개월을 복원한다.

1920년대 미국은 찬란했다. 자동차와 세탁기, 라디오가 일상을 바꿨고 소비 경제가 열렸다. 사람들은 기술이 풍요를 보장한다고 믿었다. 그 믿음을 가능하게 한 것은 ‘신용’이었다. 투자자들은 주식값의 10%만 내고 나머지는 빚으로 충당했다. 주가가 오를 때 빚은 미래의 부를 앞당겨주는 마법처럼 보였다. 상승이 멈추자 그 마법은 채무의 족쇄로 바뀌었다.

책이 주목하는 것은 숫자보다 사람이다. 저자는 공격적인 투기를 주도한 내셔널 시티 은행의 찰스 미첼, J.P.모건의 토머스 러몬트, 무모한 공매도를 시도하던 전설적인 투기꾼 제시 리버모어, 허버트 후버 대통령 등을 불러낸다. 이들은 위기를 만든 인물이자 위기 앞에서 서로를 믿지 못했던 내부자들이었다.

이처럼 저자는 1929년의 붕괴가 갑자기 찾아온 자연재해가 아니었다고 설명한다. 과도한 레버리지, 느슨한 감독, 정치권과 금융권의 유착, 중앙은행의 우유부단함이 이미 시장을 약하게 만들고 있었다. 뉴욕증권거래소 소장 리처드 휘트니는 겉으로는 시장의 건전성을 말했지만 뒤로는 고객 자산을 빼돌려 투기했다. 거대 은행들은 정계 유력자들에게 특혜성 주식을 제공하며 규제를 피했다. 연방준비제도와 후버 행정부도 신뢰를 회복할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앤드루 로스 소킨 지음/ 조용빈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3만2000원
빚으로 떠받친 번영의 민낯

필요한 것은 의심보다 겸손

시장이 무너진 건 1929년 10월이다. 매도 주문이 쏟아지고 증권사들은 증거금을 채우지 못한 계좌를 강제 청산했다. 가격은 더 떨어졌고, 추가 매도는 다시 가격 하락을 불렀다. 패닉은 순식간에 번졌다. 1932년까지 주가는 정점 대비 80% 이상 폭락했고, 은행 1만1000곳이 문을 닫았다. 주식 시장의 실패는 금융권 안에 머물지 않았다. 산업과 고용, 가계의 삶을 무너뜨렸다. 저자는 “주식 시장의 하락이 가져온 폐해는 폭락 당시뿐만 아니라 이후 10여년간 수백만명의 미국인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줬다”고 전한다.

책은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풍경과 1929년의 모습을 겹쳐 읽게 한다. 1920년대의 라디오는 오늘날 AI와 비슷하다. 당시 사람들은 라디오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믿었고, 지금 투자자들은 AI가 생산성과 산업 지형을 뒤집을 것이라고 믿는다.

저자는 1929년의 가장 큰 교훈으로 “인간이 위기의 기억을 너무 쉽게 잊는다는 점”을 꼽는다. 저자는 “비이성적 과열에 대한 치료제는 규제도 아니고 의심도 아니며, 바로 겸손이다”라며 “어떤 시스템도 완벽하지 않으며, 어떤 시장도 완전히 합리적이지 않고, 어떤 세대도 예외일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겸손이다”라고 강조한다.

[조동현 기자 cho.donghyu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60호(2026.05.20~05.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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